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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대입 정책 돌고돌아 제자리 "선택과목 경우의 수만 816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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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돌아 제자리 입시안
"현재 입시안과 비슷...수험생 부담만 늘어"
공론화 과정에서 들인 국가 예산 20억원
김상곤 "공론화 과정 큰 의미...앞으로도 할 것"

현재 중학교 3학년이 치를 2022학년도 대입 개편안을 접한 일선 교육현장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교육부가 이번 대입 개편안을 마련하기 위해 1년간 공론화위, 국가교육회의, 시민참여단에 ‘하청’을 맡겼지만, 결과는 예전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애초에 교육부가 결정해야 할 대입제도 재편을 시간·예산 들여가며 외부에 맡긴 것이 잘못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이날 "공론화 과정은 큰 의미 가 있었고, 앞으로도 필요하다면 또 의견수렴을 하겠다"고 반박했다.

◇"어정쩡한 개편안" 수능위주 모집비율 24%→30%
2022학년도 대입개편안에서 핵심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으로 뽑는 비중을 30% 이상으로 하겠다는 점이다. 현재 대입에서 수능위주의 정시모집 비율은 23.8% 수준이다. 서울 시내 주요대학의 정시모집 비율은 25.1%로 이보다 더 높다. 이날 교육부의 결정은 지금보다 수능으로 6% 안팎을 더 뽑겠다는 것이다.

이영덕 대성학력개발연구소장은 "서울대, 고려대를 제외한 대부분 대학이 지금도 30% 이상을 수능으로 뽑고 있다"면서 "현재 입시안과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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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기말고사를 치르는 중학교 3학년 학생들. /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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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의 결정은 앞서 공론화위에서 시민참여단이 적정하다로 판단한 정시모집 비율인 39.6%에도 못 미친다. 안선회 중부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교육부가 공론화 결과에 반하는 반(反)민주적인 정책을 내놨다"며 "김 부총리가 사퇴하고, 대입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지난해 당시 중학교 3학년(현재 고교 1학년)의 입시개편안을 발표했다가, 비난을 받자 "1년 후 결정하겠다"고 연기(延期)했다. 이후 지난 4월 대입 개편안 결정을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에 떠넘겼다. 국가교육회의는 다시 시민 490명이 참여하는 공론조사로 결정하겠다면서 ‘재하청’을 줬다. 김상곤 부총리가 "시민 의견을 묻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새로운 정책 결정 방식"이라며 밀어붙였다.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를 위해 책정한 정부 예산은 총 27억원. 지난 1년간 ‘폭탄 돌리기’ 과정에서 20억원 이상이 쓰인 것으로 알려졌다.

학부모들은 허탈하다는 반응이다. 경기도 파주에 거주하는 중3 학부모 허모(46)씨는 "수능 비율을 40%대까지 늘릴 것처럼 얘기하더니 결국 돌고 돌아 제자리"라면서 "1년째 교육부 장관 입만 쳐다보고 있었는데 시간만 날리고 속은 기분"이라고 했다. 충북 청주시에서 중3 쌍둥이 딸을 둔 최모(42)씨는 "교육부에 이제 기대도 안 한다"며 "투명이라는 둥, 공정이라는 둥 좋은 말만 갖다 붙이면 해결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중학교 교사들은 무력감을 토로한다. 인천지역 중학교 교사 박모(38)씨는 "지난 1년간 아이들이 ‘저희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물어오면, ‘교육부 장관 말은 무시하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개편안을 보면 달라진 것은 없고, 수험생·교사만 농락당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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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복잡한 수능…‘경우의 수’ 800가지 이상
이날 개편안에서 교육부는 상대평가로 채점되던 제2외국어/한자영역을 절대평가로 전환하기로 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수험생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수험생들은 "부담이 더 늘었다"며 도리어 울상이다. 교육부가 2022학년도 수능부터 국어·수학·직업탐구 영역에는 공통+선택형 구조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이는 공통과목과 필수선택과목 시험을 함께 치르도록 하는 방식이다.

수학의 경우, 기존 가형(이과)·나형(문과) 구조가 폐지하는 대신에 수학Ⅰ, 수학Ⅱ로 구성된 ‘공통과목’, 확률과 통계, 미적분, 기하 가운데 하나를 택하는 ‘선택과목’으로 바뀌게 된다. 탐구영역은 문·이과 구분 없이 17개 과목(사회 9개·과학 8개) 가운데 2과목까지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수험생들은 816가지 경우의 수로 과목을 조합해 수능에 응시해야 한다. 어떤 선택과목을 골라야 할지, 유불리도 따져야 한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구미중학교에 다니는 김예올(15)양은 "선택해야 할 과목이 많아진다니 혼란스럽다"며 "막상 어느 고등학교를 가고, 어떤 진로를 밟게 될지도 모르는 데 학생들에게 진짜 선택권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교육계 일각에선 "역사상 가장 복잡한 수능"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임성호 종로학원 하늘교육 대표는 "대학별로 요구하는 선택과목이 다 다를 것이 뻔하고, 수험생은 또 유리한 과목을 선택하기 위한 ‘눈치싸움’에 내몰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만기 유웨이중앙교육 평가연구소장도 "이번 선택과목 도입으로 수백 개 이상의 경우의 수가 발생, 수험생 입장에선 공부 외적인 부분에서 생각할 게 많아졌다"며 "교육부가 ‘아이들 부담 덜어주겠다’며 내놓은 대책안인데 오히려 부담만 더 늘린 꼴"이라고 말했다.

[김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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