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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국민연금 개혁]당장 더 내고 보장 강화할까, 천천히 받아 지속성 높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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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고령화가 심해지면서 국민연금 기금이 이전 예상보다 3년 앞당겨진 2057년에 소진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재정 고갈을 막고 노후보장을 강화하기 위해 20년간 묶여 있던 연금보험료율을 현재의 9%에서 2~4.5% 올리는 두 가지 방안이 해법으로 제시됐다.

국민연금 재정추계위원회와 제도발전위원회는 17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공청회를 열고 장기재정전망과 제도 개선방향을 발표했다. 재정추계위 분석 결과, 기금은 2042년부터 적자가 발생하며 재정을 별도로 보강하지 않으면 2057년 바닥나는 것으로 추산됐다. 제도발전위는 먼저 당장 내년에 보험료율을 2%포인트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올해 수준인 45%로 못박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 방안대로라면 보험료율은 2034년 12.3%로 다시 한 차례 올리고, 이후 상황에 맞춰 계속 조정하게 된다.

또 다른 방안은 현행대로 2028년까지 매년 소득대체율을 0.5%포인트씩 낮춰 40%로 만들되 그 기간 보험료율을 단계적으로 인상해 13.5%로 올리는 것이다.

국민연금에 가입할 수 있는 연령 상한은 현재의 ‘60세 미만’에서 ‘65세 미만’으로 5년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연금 수급이 시작되는 나이를 늦추는 문제는 거론하지 않았다.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최소가입기간(현재 10년)을 줄이는 것이나 국가가 연금지급을 보장하도록 법에 명시하는 방안도 빠졌다. 정부는 다음달까지 국무회의를 거쳐 ‘제4차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을 확정하고 10월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이 때까지 연금제도 개선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 노후보장 초점 맞춘 ‘가’안

제도발전위가 ‘용돈연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시한 첫번째 대책은 2028년까지 40%로 떨어질 예정인 소득대체율 즉 과거 평균소득과 비교한 연금액 비중을 45%로 고정하고, 보험료율은 올해부터 11%로 올리는 방법이다. 현재 보험료율은 9%로 사용자와 노동자가 절반씩 나눠 내는데, 20년째 인상되지 않고 묶여 있다.

이런 내용의 ‘가’안에 따라 소득대체율이 오르면 월급 300만원을 받는 ㄱ씨가 40년 가입기간을 채울 경우 받을 수 있는 월 연금액은 118만5000원이다. 제도가 바뀌기 전 받을 수 있던 금액인 107만2000원보다 11만원 가량 더 오른다. 반면 매달 내야하는 보험료는 올해 27만원(본인부담 13만5000원)에서 내년 33만원(16만5000원)으로 6만원 오른다. 받는 돈과 내는 돈을 종합해 계산하면 ㄱ씨는 제도가 개선될 경우 한 달에 최대 8만원 가량 혜택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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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 고갈시기를 앞당겨 잡으면서도 급여 인상을 제안한 것은 지급 액수가 너무 작아 연금의 본래 역할인 노후보장 기능을 잃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2007년 개편 때 보험료율을 올리지 않은 대신에 급여 수준을 단계적으로 내리기로 했다. 현행대로라면 소득대체율은 10년 뒤까지 매년 0.5%포인트씩 떨어져, 올해의 45%에서 40%로 낮아진다. 지난해 새로 가입한 평균소득자(월소득 218만원)가 30년 돈을 부었을 때 노후에 받는 돈은 월 67만원 정도로,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친다.

급여를 올리는 것은 연금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봤다. 실제 생활을 보장하는 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인식이 퍼지고 폐지론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보험료만 올리면 국민들의 동의를 얻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제도발전위는 “사회구성원들이 혜택을 받는 경험이 쌓이고 제도도 성숙하면 지금보다 연금의 신뢰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내년에 2%포인트를 올리면 2033년까지는 그대로 유지하다가, 연간 적립되는 금액보다 지출액이 더 커지는 2034년에 12.3%로 다시 인상을 하자고 했다. 이후로는 5년마다 한번씩 적립액과 지출액의 비율인 ‘적립배율’이 1로 유지될 수 있는 선에서 보험료율을 조정할 것을 제안했다.

■재정안정 중시한 ‘나’안

‘나’안은 내년부터 보험료율을 해마다 조금씩 높여 2029년까지 13.5%로 끌어올리는 방법이다. 이 방안에 따라 10년간 보험료율을 4.5%포인트 올리면, 2029년에 월소득이 300만원인 ㄴ씨는 현행대로 했을 때보다 13만5000원 많은 40만5000원(직장인 20만2500원)을 보험료로 내야 한다. 보험료율이 매년 고르게 인상된다고 가정하면 1만3500원(직장인 6750원)씩 오른다.

제도발전위는 2033년 이후 연금수급 개시연령을 높여 2043년까지 67세로 조정하고, 소득대체율에 ‘기대여명계수’를 적용해 나이가 많으면 연금급여액을 깎는 방안도 내놨다. 이렇게 해도 재정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추가로 보험료 인상을 검토할 것을 제안했다.

연금의 지속가능성을 강조하는 전문가들은 연금 급여를 올려선 안 된다고 말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소득대체율이 40.6%임을 감안하면, 한국의 40%는 결코 낮은 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대신 국민들의 노후 생활을 뒷받침해줄 수 있도록 기초연금이나 퇴직연금 등으로 보완하는 ‘다층 노후소득보장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이용하 국민연금연구원장은 “향후 기초연금과 퇴직연금이 발전하면 국민연금이 노후소득보장의 모든 짐을 질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지난 10년간 국민연금 급여 액수가 적절한지를 논쟁하느라 재정 안정화가 뒷전으로 밀렸다고 주장한다. 재정 안정화를 미룰수록 미래세대들이 메워야 할 적자도 불어나기 때문에 세대 간 형평성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 노사, 연금에도 ‘엇갈린 입장’

이날 공청회에서는 기업과 노동단체, 학자들의 열띤 토론도 이어졌다. 기업들은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 모두 올리지 않기를 원한다. 김동욱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본부장은 “국민연금에 다른 연금까지 합하면 2016년 기준으로 노사가 부담하는 사회보험부담액이 140조원”이라며 “이 중 82조원을 기업에서 부담하는데, 최근 최저임금과 사회보험료가 올라 굉장히 많은 부담을 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세대간 불균형 문제도 있으니 연금 급여를 올리지 말고 사적연금 등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유재길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국민연금 소진에 대한 공포감이 지나쳐 노후소득 보장을 간과하고 있다”며 “당장 재정에 큰 문제가 없다면 소득대체율은 45%에서 더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맞고, 가능하면 50%로까지 올리는 것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결국 분위기가 무르익어야 개혁으로 이어진다. 이번에 많은 제도 개선안이 나왔지만, 현실화되는 것은 국민들의 인식 수준이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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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있을 긴 개혁과정의 첫 단계”

권덕철 보건복지부 차관은 이날 나온 정책 자문안을 두고 “앞으로 있을 긴 연금개혁 과정의 첫 단계”라고 표현했다. 한국이나 외국의 과거 연금개혁 사례를 보면 상당한 시간이 걸렸던 것을 염두에 둔 말이다. 이용하 국민연금연구원장도 “이번 자문안 발표는 전체 개혁 과정에서 5%도 안되는 비중”이라며 “남은 95%의 개혁 논의가 이제 출발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제도발전위는 이날 공청회에서 나온 의견을 참고하고, 2~3차례 회의를 더 열어 최종보고서를 만들 예정이다. 이번 4차 재정추계는 예전과 달리 재정 계산에 긴 시간이 걸려, 제도발전위가 추계 결과를 받지 못한 채 제도 개선을 논의했다. 또 위원회 내에서 노후소득을 우선 보장할지, 재정문제를 우선 해결할지 의견이 팽팽해 발표 직전까지도 자문안을 완전히 확정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복지부는 제도발전위 자문안을 전달받은 뒤 관련 부처와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모아 정부안을 만들게 된다. 류근혁 복지부 연금정책국장은 “발표된 방안 이외에도 (연금제도를 개선할 수 있는) 많은 안들이 있다”며 “정부안에 아예 새로운 안이 담길 수도 있고, 국회 논의에서 또 다른 안이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대통령이 강조한 대로 ‘노후소득 보장 확대’를 우선할 것인지 묻자 “(대통령 발언은) 원칙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답했다.

복지부는 최근 들어 연금 급여를 직접 올려주는 방안보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퇴직연금을 연계한 ‘다층 노후소득보장 체계’를 강조하고 있다. 박능후 장관은 “현재 기초연금은 하위 70%만 받는데, 어떻게 보강하느냐에 따라 국민연금과 맞물려 노후소득을 보장하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며 “(제도 활용에 따라)소득대체율 50% 목표까지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덕철 차관도 “공적연금 각각의 역할을 분명히 하고 기능을 강화하며, 연계를 통해 노후소득 보장을 튼튼히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다음달까지 국무회의를 거쳐 ‘제4차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을 확정하고 10월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국회에 제출하기 전 제도 개선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질 수도 있다.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연금제도 개선을 다루기로 결정하고 노·사·정 합의를 빠르게 이끌어낸다면 정부안도 이 내용에 기초해 만들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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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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