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이곳이 노숙인을 위한 새 밥집… 20년 만의 기적이죠"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이탈리아 출신 김하종 신부, 내달 1일 성남에 '안나의 집' 신축

IMF 이후 작은 급식소에서 시작 "나는 한국에 온 봉사자일 뿐"

이번에도 인터뷰는 약속 시간보다 30분 늦게 시작됐다. 14일 오전 10시 30분 경기 성남시 성남동성당 구내 노숙인 시설 '안나의 집'에 도착했을 때 대표 김하종(61·본명 빈첸시오 보르도) 신부는 봉사자들과 함께 트럭에서 짐을 나르고 있었다. 김 신부와 인터뷰에선 흔한 풍경. 쌀포대나 후원물품이 도착하면 바로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자와 사진기자도 거들었다. 폭포처럼 땀을 쏟으면서도 웃으며 짐을 나르는 그를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솔선수범이 김 신부의 힘이다.

이번 짐은 쌀이나 후원물품이 아니었다. 20년 역사를 적은 '꿈, 나눔 아름다운 동행'이란 책자와 '안나의 집 신축 개관식 초대장'이었다. '안나의 집'은 20년 셋방살이를 끝내고 오는 9월 1일 현재의 급식소 맞은편에 지하 1층, 지상 4층 연건평 1345㎡(약 406평) 규모의 새집을 지어 개관식을 갖는다.



조선일보

오는 1일 개관식을 갖는 신축 ‘안나의 집’ 앞에 선 김하종 신부. 그는 “사람들이 칭찬 많이 하지만 저는 대단하지 않고, 그냥 봉사자일 뿐”이라며 “이제 대표는 한국 사람이 맡고 저는 그냥 봉사만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강호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안나의 집' 20년은 기적의 역사다. 이탈리아 오블라띠수도회 소속으로 1990년 한국에 온 김 신부가 '안나의 집'을 시작한 것은 IMF 외환위기 직후 노숙인이 쏟아져 나오던 1998년 7월. 어려운 이웃을 돕는 김 신부의 모습에 감동한 인근 뷔페식당 오 마테오 사장이 자신의 식당 한 개 층을 급식소로 제공하면서다. 그해 10월 현재의 성남동성당 구내 조립식 건물로 옮겼다. 그 후 20년간 이 급식소는 하루 평균 550명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해 지난 4월엔 연인원 200만명을 돌파했다. 후원회원은 8000명. 월 5000원 소액 후원자가 대부분이다. 여기에 지자체 지원과 '우연히 들어오는 목돈'으로 꾸려왔다. "우연은 불안하죠. 안 들어올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쌀이 떨어져 걱정하고 있으면 누군가 쌀을 보내줍니다. 작은 기적이 계속 일어나요."

성남동성당 시설을 무상으로 약속받은 20년은 금세 다가왔다. 2016년 김 신부는 자포자기 상태였다. 새집을 지을 땅도, 돈도 없었다. '결국 문 닫아야 하나' 생각할 때 기적이 시작됐다. 맞은편 공터가 그린벨트에서 풀렸다. 수원교구(교구장 이용훈 주교)가 10억원을 지원해 땅을 샀다. 때마침 한 방송에서 그의 삶을 다큐로 만들어 소개하자 후원금이 모여 건축을 시작할 수 있었다. 김 신부는 "계획을 세우면 못했을 거예요. 예수님께 맡기면 생각 못한 일이 생겨요. 기적처럼 2년 동안 모든 일이 이뤄졌어요"라고 했다.

조선일보

김하종 신부는 승합차를 몰고 가출 청소년들을 찾아가는 ‘아지트’ 프로젝트도 운영한다. 사진의 아지트 승합차는 가다가 멈춰 폐차될 운명이다. /남강호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새집을 안내하며 김 신부가 자랑했다. "지금까지는 노숙인들을 '인간답게' 모시지는 못했어요. 이제 인간답게 살 수 있어요." 우선 식당 진입로부터 건물 뒤쪽으로 'ㄷ'자로 꺾었다. 식사를 기다리는 줄이 바깥에서 보이지 않도록 한 것. 식당 출구 앞엔 샤워실과 이발실을 마련했다. 30명을 수용하는 기숙사도 다닥다닥 붙어 있던 2층 침대 대신 널찍한 공간에 개인별 칸막이를 친 침대로 바꿨다. 상담실, 진료실, 강당, 작업장도 새로 단장했다.

꿈에 그리던 새집을 마련했지만 김 신부는 여전히 안타깝다. 어려운 이웃이 더 늘어나는 것 같아서다. "현대사회는 빠르고 똑똑하고 복잡해요. 세계 어디나 그렇죠. 여기서 식사하는 분들은 그걸 못 따라가요. 돈 자체는 나쁘지 않아요. 그러나 나눔과 배려를 배워야죠. '안나의 집'은 돈, 시간, 관심, 재능을 나누는 일반 사람들 덕에 꾸려갑니다."

호암상, 포니정 혁신상 등 많은 상을 받았고 불가능해 보이던 새집도 지었다. 우쭐해질 법도 한데 그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대단하지 않아요. 예수님이 제 생활을 인도해 주셔서 생긴 기적일 뿐. 저는 봉사자입니다. 봉사하러 한국 왔어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낮 1시가 되면 앞치마를 두릅니다."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