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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오래전 ‘이날’]8월17일 익숙한 ‘낯섦’, 분단된 문화재의 숙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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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이날’]은 1958년부터 2008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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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8월17일 익숙한 낯섦, 분단된 문화재의 숙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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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전 경향신문에는 북한 문화유산 현지 탐사를 소개하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북한 평양에 있는 조선중앙역사박물관, 조선미술박물관 등을 찾은 후기인데요. 분단 이후 한국에서 교육받은 이들의 눈에는 낯선 문화재에 대한 신기함과 반가움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기사를 보면 당시 북한에서는 문화재의 보존과 전승을 위해 진품보단 모조품을 가급적 전시했습니다. “공민왕릉, 단군릉 내부 모형, 실물 크기의 안악 3호 무덤 등은 실물인지 모조품인지 혼동될 정도”였다고 하는데요. 북한에는 모조품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기술자가 있다고 합니다. 북한의 문화재 전문가는 “석공, 단청공 등을 양성하기 위한 양성소가 있어 그곳 사람들이 맡아 한다. 거꾸로 매달리는 단청일을 하지 않으려 하고 그런 일을 하는 사람도 늙었다. 그래서 이런 일을 하는 사람에게 국가적으로 보상해 주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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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고구려 고분 벽화를 재현한 모사품이 압권이었나봅니다. 박물관에서 ‘고구려시대’ 전시로 넘어가면 훼손된 부분과 흠집까지 그대로 묘사한 실제 크기의 모사품들이 있었답니다. 당시 현장을 방문한 기자는 “벽은 온통 모사품으로 가득했다. 모사품들은 벽화 못지 않은 작품이었고, 전시실은 그대로 하나의 고분 같았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만큼 모사품의 수준이 뛰어났다는 의미입니다. 북한문화재 전문가인 김봉건 박사는 “모조품 전시는 실물을 보호하고 사실감, 현장감을 살려준다는 면에서 바람직한 측면이많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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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복원을 위해선 모조품 제작 뿐 아니라 ‘복원’도 반드시 진행돼야 하는데요. 북한에서도 단군릉, 동명왕릉 등을 복원했습니다. 단군릉의 경우 만주 지방 장군총과 같은 형태를 취하면서, 높이 22m로 9층 화강암을 쌓아 어마어마한 크기로 올렸습니다.

옛 고구려의 주된 활동 지역이 현재의 북한인 만큼 고구려 문화에 대한 이해도 높았습니다. 동명왕릉 옆에 복원한 왕릉원찰 정릉사의 경우, 단청은 당연히 적, 청, 녹으로 화려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고구려 고분에 나오는 문양과 색채를 이용해 짙은 고동색을 단청과 기와에 활용했습니다. 사찰구조 또한 일주문-해탈문-사천왕문-대웅전이 직선상에 놓이는 방식이 아닌, 고구려 ‘일탑삼금당’ 식으로 탑 주변에 건물을 배치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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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에 남겨진 문화유산과 유사한 느낌을 자아내는 것들도 당연히 있었겠지요. 고려시대 사찰인 보현사가 그랬다고 합니다.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석탑 양식인 8각13층 석탑이 있는 등 남한에 있는 고려시대 사찰과 비슷한 점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문화유산조차 분단된 남과 북에서 남한 사람이 북한에 남은 문화재를 보고 ‘익숙함’과 ‘낯섦’을 동시에 느끼는 것은 어쩌면 숙명인가 봅니다. 2013년 북한 개성 일대에 집중된 고려시대 유적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는 등, 북한에도 역사적으로 가치있는 문화재가 남아있습니다. 문화 교류가 진전되면 북한의 문화재를 자유롭게 볼 수 있게 될까요?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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