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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라이프스타일 투어-깜놀 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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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여행에는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는 즐거움이 포함된다. 서울은 등산복 차림의 중년들을 쉽게 볼 수 있고 유럽은 자전거 또는 일광욕이 일상화 되어 있다. 도쿄의 경우는 숲과 달리기 아닐까? 이번 도쿄 여행 일정에 주말이 끼어있었는데, 세상에! 도심 숲이 너무도 깊고 우람해서 놀랐고, 그곳에서 거리낌 없는 건강 관리를 하는 시민들을 보며 또 놀랐다. 수백 년 된 정원을 우아하게 보전하는 그들의 꼼꼼함 앞에선 뒤로 자빠지는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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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고 싶지 않은 정원 네즈미술관

네즈 가이치로는 근대 일본의 기업인이었다. 1860년에 태어나 우리나라가 해방되기 전인 1940년에 죽었다. 그는 일본의 대표적인 철도 사업가로,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자 한반도 철도부설에도 참여했었다. 그는 미술품 수집가이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일본의 유물들을, 그리고 조선에 진출한 뒤로는 조선의 미술품 수집에 열을 올렸다고 한다. 그렇게 모은 작품이 수장고에 쌓이고 쌓이자 자연스럽게 미술관 건립을 생각했고, 그렇게 탄생한 곳이 네즈미술관이다. 사설 미술관이 대부분 그렇듯, 네즈미술관 역시 수집가의 취향이 고스란히 반영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일본의 고미술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또한 일본 차(茶)에 매료되어 다도문화에 심취했으며, 훗날 사업가로 성공해 재력이 뒷받침 되자 미술품과 도자기 수집을 시작했다. 고미술에 관심을 갖다 보면 전통 정원에 눈길이 가는 것은 인지상정.

네즈미술관은 미술관 건물과 수장고, 그리고 정원과 카페로 이뤄져 있다. 미술관 건물은 일본의 전통과 모더니즘이 조화를 이룬 공간이다. 그리고 전체적으로는 동선에 신경을 쓴 것으로 느껴졌다. 미술관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달의 모양을 하고 있는 돌배(석단) 앞을 지나야 하는데, 이곳에서 현관까지 이어지는 회랑은 단순한 벽면, 단순한 바닥, 단순한 대나무로만 디자인되어 있는데, 그냥 오래된 수도원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현관에서 입장권을 구입한 후 나는 미술관을 올라가지 않고 곧장 정원으로 향했다.

네즈미술관 정원을 거닐면서, 어쩌면 네즈 가이치로는 미술관 건립을 미술품 수집 활동 초기부터 계획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술관 부지는 에도 시대 단난번의 번주(성주)였던 다카기 가문의 교외 저택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조선 귀족들의 별서, 별장과도 같은 곳이었다. 이 별서는 메이지유신 이후 방치, 폐허가 되어가고 있었다. 네즈 가이치로는 1906년 이곳을 사들여 수년에 걸쳐 정원을 만들고 다실을 지어 자신의 사저로 조성했다. 그리고 1940년 세상을 뜨기 전 미술관에 대한 유업을 남겼고, 이듬해인 1941년 후손들에 의해 네즈미술관이 문을 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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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는 모두 7400여 점의 일본과 아시아의 고미술품이 있다. 네즈가 사망했을 당시 4000 여 점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의 사후에도 미술관의 수집 기능이 지속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소장품은 모든 장르를 망라해, 회화, 서적, 조각, 도예, 칠공예, 염직, 금속, 공예 등이 있으며, 미술관에서는 이 장르들을 순환 전시하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국보로 지정된 오가타코린이 그린 ‘연자화도병풍’, 목계 작 ‘어촌석조도’, ‘근본백일갈마’ 등이 있다.

나는 미술관 건물을 맨 마지막에 들어가기로 했다. 말차로 유명한 네즈카페에서 차를 한 잔 마시고 정원 산책을 먼저 하기로 한 것이다. ‘자리가 없는 경우가 많다’는 리뷰가 한두 개가 아닌 터라 조금 걱정하며 발길을 서둘렀는데, 마침 창가에 자리가 하나 있어서 입장과 동시에 착석할 수 있었다. 그린티 소이 라떼는 역시 소문대로 맛있고 담백했다. 말차 하면 일본이고, 일본에서도 특히 교토의 말차를 알아주는데, 교토 금각사 입구에서 마셔보았던 말차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단, 라떼를 넣지 않은 순수 말차를 팔지 않는 것은 아쉬움이다. 네즈카페는 사실 통창으로 보이는 주변 경관이 뛰어나 실내 디자인에 눈길을 둘 새는 없다. 그럼에도 천정의 종이 마감재는 보면 볼수록 기가 막혔다. 건물의 지붕은 철제 프레임에 유리로 마감했는데, 실내 천정을 종이로 막아줌으로써 외부의 햇살, 나무그늘이 보여주는 바람의 방향, 날아가는 새들의 날갯짓 등을 의자에 앉아 느낄 수 있게 한 그 몽환적 일체감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차를 마시고 정원으로 나갔다. 인터넷에서 본 것보다, 사진으로 감상했던 것보다, 상상했던 그 모든 것보다 깊고 아득한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정돈된 나무가 보이는가 싶으면 시선을 조금만 멀리 보내도 거친 숲이 미술관 전체를 품고 있는 느낌이었다. 구불구불한 길 곳곳에는 일본 전통 석물과 식민지 조선에서 수집해 가져온 조선의 석물들이 있었고, 당장 사람이 들어가 살아도 될 성 싶은 아담한 건축물들도 보였다. 이 건축물들은 꿈결같은 풍광을 바라보며 차와 담소를 나누는 다실들로 ‘홍인정 무사암’, ‘한중암 소방’, ‘피금재 일수암’, ‘반구암 청계정’ 등 이름도 붙여져 있다. 다실들 앞으로는 동양화에서나 볼 수 있는 긴 연못이 순환하고 있는데, 일본 고미술 수집가로서, 작품에서 보았던 어떤 형상을 재현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계단으로 이뤄진 몇몇 구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산책로를 휠체어 통행(보호자 동반 필수)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네즈미술관은 자체적으로 지정한 ‘네즈미술관 팔경’이 있다. 미술관 초입에서 만나게 되는 ‘달모양 돌배’, ‘홍인정에 피는 제비붓꽃’, ‘히가시쿠마노’(미니어처 폭포 같은 물길), ‘호타라카산’, ‘약사당의 죽림’, ‘피금재의 단풍’, ‘돌담 우물’, ‘텐진노 히바이시’ 등이 그것들이다.

미술관 폐관 시간 한 시간을 남겨놓고 미술관 본관에 들어갔다. 당시 전시실에서는 ‘칠기공예와 기술’전이 열리고 있었다. 일본, 한국, 중국의 옻칠, 도료 등 칠기로 마감한 예술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아름답고 정교한 색깔과 완성도를 살피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네즈미술관의 다음 전시는 9월1일부터 열리는 으로 불교의 선 사상이 중생의 문화와 만나 어떤 예술을 잉태하고 생산했는지를 보여주는 서예, 회화 초대전 방식으로 열린다. 지난 7월9일부터 8월31일까지는 미술관 시설 보수 공사로 휴관한다.

▶운동 중독자들의 놀이터 명치신궁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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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묵은 몬테레이호텔은 도쿄의 도심과 조금 떨어진 아카사카에 있다. 운이 좋았는지, 일주일이라는 비교적 긴 시간을 예약한 것에 대한 친절인지는 모르겠으나, 전망이 끝내주는 객실을 배당 받을 수 있었다. 전망이 좋은 이유는, 바로 눈 아래로 명치신궁외원(메이지신궁외원) 일대가 보이고, 그 뒤로 도쿄의 마천루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호텔 고층에서 내려다 볼 때 외원 일대는 평화로운 녹지대이지만, ‘어용지’는 경계가 삼엄한 천황의 공간이다. 1869년 메이지 천황이 수도를 교토에서 도쿄로 옮긴 것으로 계기로 도쿄는 그야말로 메이지 천황의 도시가 되었다. 천도 후 먼 훗날 1920년 메이지 천황을 기리기 위해 신궁이 낙성되었는데, 당시 내원과 외원으로 나눈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내원은 일본인들이 메이지 천황과 쇼켄 황태후를 제신으로 모시는 신사이고, 외원 역시 메이지 천황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된 대형 공원이다. 내가 찾아간 외원은 이미 성덕기념화관, 헌법기념관(메이지기념관), 메이지신궁경기장, 카스미가오카 경기장, 메이지신궁 야구장(일본 프로야구 야쿠르트 스왈로스 홈그라운드) 등이 있는 거대한 공원이다.

도쿄의 대표적인 숲은 바로 이 메이지신궁 내원인 요요기공원과 아카사카 일원의 외원이라 할 수 있다. 절대왕정 시대에 국가의 땅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오늘의 도쿄에서 살고 있는 시민들은 절대왕정이 조성한 숲을 향유하고 있는 셈이다. 관련 자료를 찾다 보니 1920년 당시 신궁을 조성했을 때 내원은 세금으로, 외원은 헌금으로 재원을 충당했다고 한다. 헌금뿐 아니라 헌목 캠페인도 했다. 나무를 기부받은 것이다. 그때 조선, 타이페이 등 식민지에서도 나무를 가져왔는데, 우리나라에서는 28그루가 공수되었다고 한다. 그 나무는 어디에서 도쿄의 고목이 되어있을까? 몹시 궁금했지만 손으로 묻었다. 내 눈에 숲은 보였으되 나무는 보이지 않았으므로.

이곳에 가서 놀란 것은 ‘도쿄 사람들의 마라톤 사랑’이다. 숲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달리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어쩌다 만나는 게 아니라 ‘저렇게 줄줄이 달리다 앞 사람 발에 걸려 우르르 넘어지는 일도 있을 수 있겠다’ 걱정이 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주말 달리기 운동에 열을 내고 있는 것이었다. 달리는 사람들은 주로 젊거나 중년들이 대부분이었다. 간혹 노인의 모습도 보였지만 눈으로 보이는 숫자는 미미한 편. 대신 노인들은 주로 걷기 운동을 단체로 하는 것 같았다. 영빈관 근처를 지나가면서 목격한 노인들의 운동 장면은 ‘일본인들의 장수 비결이 꼭 소식과 채식에만 있는 건 아니었군’이라는 생각을 하고도 남음이 있을 정도였다. 10여 명이 노인이 나무 그늘에 둥그렇게 모여있었는데, 그들은 두 손에 등산용 스틱을 들고 있었고, 리더로 보이는 노인의 동작을 따라 ‘준비 운동’을 하고 있었다. 스틱에 신체의 일부를 의지한 채 균형을 잡고 하체 단련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준비 운동을 마치고 본격 걷기 운동에 돌입한 그 분들을 따라 20분쯤 걸었는데, 일본인들 사이에도 저마다 ‘운동에 임하는 자세의 차이점’이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혼자 웃었다. 그 예로 여자 노인들은 걷기 운동을 하면서도 삼삼오오 그룹을 지어 수다를 떠는 모습이었으나, 남자들은 오직 운동에만 몰두하는, 한마디로 ‘죽기 살기로 걷는’ 엄숙한 표정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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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기념사진관

메이지기념사진관에 들어갔을 때 나는 ‘놀라움’에 빠지고 말았다. 이렇게 웅장하게 지은 건축물이 단 1층짜리라는 점, 그리고 일본이 근대화 시대인 메이지유신의 과정을 그림으로 그린 전시물이 내용의 전부라는 점 때문이었다. 전시실에 걸려있는 그림은 건축물만큼 거대했다. 또한 메이지유신 역사상 중요한 사건들을 높은 사실주의 화풍의 그림으로, 그것도 가로세로 3m는 되어 보임직한 거대한 그림으로 표현한 게 인상적이었다. 벽면에는 모두 80점의 그림이 걸려있는데, 메이지유신 초기를 표현한 그림 40점은 일본풍이고, 후기 40점은 서양화로 구성되어 있다. 모두 당대 최고의 화가가 그린 최대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나는 잠시 들려 훑어보고 나가겠다는 입장 때의 마음을 바꿔 작품 한 점 한 점을 꼼꼼하게 관찰했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 못한 사람으로 사실을 확인할 도리는 없었지만 그림 속 사람들의 얼굴, 표정, 복식, 배경, 오브제, 주변 경관 등 속에서 격동기 일본, 혼돈의 아시아의 모습을 보는 생생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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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빈관

일본을 찾는 세계의 국왕, 대통령, 총리 등 귀빈을 맞는 국가 영빈시설로 현재도 사용되고 있는 곳이다. 정식 명칭은 ‘영빈관 아카사카 이궁’. 1909년에 동궁어소(황태자가 사는 궁궐)로 건설되었으며, 일본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네오 바로크 양식의 궁전 건축물이다. 당시 일본은 영빈관 건축을 위해 최고의 건축가, 미술가, 공예가들을 총동원했다고 한다. 그 결과 이곳은 일본의 근대 서양식 건축의 절정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차세대계대전 이후 영빈관으로 기능을 변경했고 1974년, 2009년에 시행된 대규모 보수 공사 후 ‘국보’로 지정되었다. 건축사적으로도 꼭 한번 들려볼 만한 공간인 것이다.

영빈관은 건물 전체의 모습이 역시 으뜸이고, 정면 현관과 중앙 계단, 아사히노 마, 사이란노 마, 하고로모노 마, 가초노 마, 빌본식 별관 등 이곳이 국보가 된 근거가 된 시설들이 있다. 정면 현관과 중앙 계단은 입구 철문을 열면 등장하는 곳으로, 이탈리아산 흰 대리석과 일본산 포르투갈 슬레이트로 마감되었는데, 이런 디자인은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에서도 볼 수 있다고 한다. 붉은 카펫이 깔린 중앙 계단 위로는 휘황찬란한 샹들리에와 금장식 천장이 보이는데, 여기가 대체 일본인지 유럽인지 헛갈릴 정도이다.

아사히노 마는 창건 당시 ‘제1객실’로 불렸던 곳으로 ‘알현실’, 또는 ‘응접실’로 사용되는 곳이다. 영빈관에서 가장 격식이 높은 방으로 알려진 이곳은 현재 귀빈 살롱(객실, 응접실)으로 사용되며, 간혹 정상회담이 열리기도 한다(천장화 복구를 위해 2019년 3월까지 폐쇄 예정이다).

‘사이란노 마’는 ‘제2객실’로 불리던 곳으로 ‘조인식, 정상회담’ 등이 열리는 장소다.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 총리급들이 오는 곳답게 황금빛 봉황, 무사 조각으로 장식된 방이다.

‘하고로모노 마’는 요쿄쿠 ‘하고로모’에 나오는 아름다운 모습과 풍취를 그린 대형 그림이 천장에 그려져 있는 것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거울과 금색과 비색’의 화려한 큰 방으로, 과거에는 무도회장이라고 불렸다. 천장화는 일본의 고전극인 ‘노 (能)’의 각본을 뜻하는 요쿄쿠 ‘하고로모’에 등장하는 ‘허공에 꽃이 내리고 음악이 흐르며, 신비로운 향기가 사방에 감도니’ 구절을 프랑스 화가가 그림으로 표현했다. 이곳에선 가든파티에 초대된 VIP들이 갑작스러운 비로 파티가 취소될 경우 환영식과 만찬회 초청객에게 식전주가 제공됐는데, 이곳의 관람 포인트는 천장과 샹들리에. 샹들리에는 영빈관 최대급으로 7000여 개의 부품이 조립된 걸작이다.

‘가초노 마’라는 이름 역시 천장에 그려진 유화와 벽에 장식된 칠보가 꽃과 새를 소재로 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옛날에는 ‘교엔노마(향연실)’라고 불렸고, 지금은 공식 만찬회와 기자 회견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일본식 별관’은 영빈관의 건축 양식과 대비되는 곳. 영빈관이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면 이곳은 단순함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공식 명칭은 ‘유신테이’. 귀빈을 순수 일본식으로 맞이하고 접대할 때 사용되는 곳이다. 동궁어소를 설계한 건축가 다니구치 요시로 씨의 설계로 1974년에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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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영빈관 관람 방법

1. 정원

관람 구역 안뜰 및 앞뜰(본관 관람 불가)

소요 시간 약 40분(가이드 없이 관람)

관람 방법 현장 입장, 보안 확인 후 누구나 입장 가능

개방 시간 10:00~17:00(입장 마감 16:30)

입장료 성인 300엔, 대학생 이하 무료(현금만 가능, 변동 가능)

사진 촬영 가능

2. 본관 및 정원

관람 구역 본관 전 구역(아사히노 마는 보수 공사로 폐쇄 중)과, 정원

소요 시간 약 90분(가이드 없이 관람)

관람 방법 홈페이지 예약 또는 당일 선착순 접수(서문 매표소, 한글 안내 가능)

개방 시간 10:00~17:00(입장 마감 16:00)

입장료 성인 1500엔, 대학생 1000엔, 18세 이하 500엔, 12세 이하 무료(현금만 가능, 변동 가능)

3. 일본식 별관

관람 구역 일본식 별관과 아사히노마를 제외한 본관 전 구역

소요 시간 일본식 별관+본관+정원까지 120~ 150분 정도 소요(가이드 안내로 관람) / 일본식 별관+정원까지 60~90분 정도 소요(선택 가능)

관람 방법 홈페이지에서 사전 예약 필수. 예약 희망자 초과(회당 20명) 시 추첨 후 당첨자에게 관람 허가증 전송(이메일). 당첨자는 입장 시 인쇄 또는 휴대전화에 캡쳐한 허가증 제시. 서문에서 입장권 구입, 본관 재입장 금지 *12세 이하 관람 금지.

관람 시간 10:30, 11:00, 11:30, 12:00, 12:30, 13:00, 13:30, 14:00, 14:30, 15:00(15:00는 영어 가이드 투어)

입장료 (일본식 별관+본관+정원 관람 시) 일반2000엔, 대학생1500엔, 18세 이하700엔(현금만 가능, 변동 가능성) / (일본식 별관+정원 관람 시) 일반 1500엔, 대학생 1000엔, 18세 이하 500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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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최대의 녹지대 요요기공원

메이지신궁 내원을 포함한 도쿄 최대의 녹지대이다. 하라주쿠, 시부야, 오모테산도 등 도쿄의 중심지에 있어서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유명한 곳이다. 관광객 입장에서 특히 여름 여행의 그늘 역할을 해 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주말이면 도쿄 시민들이 모여 시장을 열고 사회적 캠페인을 벌이기도 하며 허가받은 뮤지션들의 연주회가 벌어지기도 한다. 내가 걸었던 그 날도 같은 풍경이 펼쳐졌는데, 환경, 나눔 등 시민사회의 커뮤니티 성격의 이벤트가 많다는 점은 변함 없지만, 역시 음악에 대한 시대의 변화는 도쿄에서도 빗겨가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쿠렐레 공연장 좌석을 가득 메운 관객과, 완전 파리를 날리고 있던 ‘록밴드 아저씨들’의 공연장이 극명하게 비교되고 있음을 확인하며, 올드보이로서의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렇다고 위로 차원에서 그 앞에 앉아 시끄러운 음악을 듣고 싶진 않았다.

요요기공원의 주말 풍경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깜짝 놀랄 장면은 바로 일광욕이다. 호수 주변에 수영복 차림으로 선크림을 바르고 일광욕을 하는 풍경은, 일찌감치 근대화를 끝내고 제국주의를 꿈꾸다 망했고, 오랜 친구이자 태평양 전쟁의 적수로 자신들을 무릎 꿇린 미국과 다시 친구가 되어 세계 최고의 부자 나라 반열에 오른 일본 시민의 선진적 라이프스타일을 대변해 주는 그림이었다. 나도 제주도 집에 돌아가면 평대리 바닷가에서 수영복 차림으로 누워 일광욕의 선구자가 되어 볼까나? 과연!

[글과 사진 이영근(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42호 (18.08.21)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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