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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北의 '핵 신고'와 '종전 협정' 맞바꾸기 가능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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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칼럼] 비핵화의 덫에 갇힌 '평화경제론'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 73주년 기념사의 백미를 뽑으라면 "평화가 경제다"라는 발언이 아닐까 한다. 문 대통령은 남북한이 "하나의 경제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진정한 광복"이라고 역설하면서 경제공동체가 이뤄지면 한국 경제가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찾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경기도와 강원도의 접경지역에 "통일경제특구를 설치"하고 "동북아 6개국(남북한과 중국, 러시아, 일본, 몽골)과 미국이 함께하는 '동아시아철도공동체'를 제안"했다. 또한 "한반도 문제는 우리가 주인이라는 인식이 매우 중요하다"며, "남북관계 발전은 북미관계 진전의 부수적 효과가 아니라, 오히려 남북관계의 발전이야말로 한반도 비핵화를 촉진시키는 동력"이라고 역설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제시한 장밋빛 미래도, "우리가 주인"이라는 결연한 의지도 한 문장 앞에서 주춤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어야 본격적인 경제협력이 이뤄질 수 있다"고 밝힌 부분이다. 비핵화와 평화정착을 경제공동체 건설의 단서로 제시한 셈이다.

아마도 북한과 미국은 이 대목을 가장 주목했을 것이다. '미국의 눈치를 보지 말라'고 요구해온 북한은 비핵화를 앞세우는 문재인 정부에 큰 불만을 가질 것이다. 반면 '남북관계는 비핵화와 별개일 수 없다'고 말해온 미국은 안도감을 가질 공산이 크다.

가장 아쉬운 점도 바로 이 대목에서 추출할 수 있다. 남북관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미국이 주도해온 대북 제재의 점진적인 해제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이에 따라 문 대통령은 '비핵화 과정에 발맞춰 대북 제재도 완화,해제되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경제협력도 추진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어야 했다. 그래야만 비핵화 조치에 발맞춰 미국과 유엔 안보리에 대북 제재 완화와 해제를 요구할 수 있다.

프레시안

▲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서울 용산에서 열린 제73주년 광복절 및 정부수립 70주년 경축 행사에서 경축사를 발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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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문 대통령의 발언 취지와는 달리 남북관계는 북미관계의 향방에 더더욱 종속될 공산이 커졌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 여부 및 그 성과에 따라 9월 안에 열기로 한 남북정상회담을 포함한 남북관계의 앞날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복원하려면 미국과의 전향적인 공조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더더욱 중요해졌다. 폼페이오 방북에 앞선 한미 정상간의 전화통화와 대미 특사 파견이 그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시급한 과제는 최대 현안인 종전선언과 북한의 핵 신고 사이에 어울리는 짝을 찾는 것이다. 가령 폼페이오 방북시 '북미 양측은 종전선언과 핵 신고를 동시 행동 차원에서 이행키로 했다'는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여러 가지 사유로 종전선언이 여의치 않다면 평화협정 협상 개시 선언도 대안으로 추진해볼 법하다.

하지만 여기에도 함정은 있다. 미국은 최근 부쩍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 가능한 비핵화(FFVD)"를 강조하고 있다. 검증의 1차적인 대상은 북한의 핵 신고 시 그 정확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핵 신고 대상에 핵무기를 포함시킬 것인지도 불확실하고 미국 내 일각에선 북한이 비밀 핵시설을 가동하고 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핵 신고가 끝이 아니라 검증 논란으로 인한 새로운 문제의 시작이 될 수 있음을 예고해주는 대목이다.

이에 따라 종전선언(혹은 평화협정 협상 개시 선언)과 핵 신고 이후의 대책도 지금부터 마련해야 한다. 그 유력한 방법 가운데 하나는 판문점 선언과 북미공동성명을 포괄적이고 구체적으로 이행할 수 있는 합의문 도출을 시도하는 것이다. 협상 방식도 북미, 남북, 한미 등 양자 중심에서 중국을 포함한 4자회담, 혹은 10년째 열리지 않고 있는 6자회담 등 다자 방식도 추진해야 할 때이다.

기자 :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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