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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집회장에 꼭 있던 '등산바지에 이어폰' 아저씨의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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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청, 15일 대화경찰관제 첫 시범 도입

집회시위 과정 불필요한 갈등·폭력 예방 역할

스웨덴 등 선진국에서 잇따라 도입

‘검은색 등산바지에 워커를 신고 한쪽 귀에 인이어(In-Ear·인이어 이어폰 모니터링 시스템)를 꽂은 40대 아저씨.’

서울 광화문·서울역 등 주요 도심 집회 현장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인물들이자 '경보경찰'의 전형적인 이미지다. 서울지방경찰청은 대규모 집회시위 현장에서 참가자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이런 정보경찰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인권친화적 모습으로 다가가기 위해 지난 15일 처음으로 ‘대화경찰관제’를 도입했다.

실제 제73주년 광복절 기념으로 도심 곳곳에 대규모 행사와 집회가 열린 이날, 36명의 대화경찰이 등산복의 사복이 아닌 형광색 대화경찰 조끼를 입고 8개 시위 장소에 시범 투입됐다. 정보경찰 1명당 경비과 기동대 2명이 한조를 이뤄 집회 주최 측 및 참가자들에게 먼저 대화를 시도하면서 현장에서의 갈등을 줄이고 극단적인 폭력 상황을 막기 위함이었다.

중앙일보

서울지방경찰청 대화경찰들이 15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열린 광복절 집회시위 현장에서 시위 참가자와 대화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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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부터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진행된 ‘8·15 국가해체세력규탄 범국민대회' 행사에서는 갑자기 모인 수천명의 참가자로 인해 일반 시민들이 통행에 불만을 호소했다. 이에 현장에 투입된 대화경찰이 시민들의 민원을 받아들여 주최 측에 전달했고, 주최 측과 논의한 뒤 펜스를 추가로 설치하고 안내 경찰을 추가 배치하면서 현장 질서를 잡았다.

범국민대회 행사 안내팀장인 홍호수(54)씨는 "원래 대규모 집회라는 게 주최 측과 경찰 양측이 모두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이럴 땐 말하나 표정 하나에도 심각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데, 대화경찰을 배치해 의사소통을 강화하고 불필요한 긴장을 낮출 수 있다면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이날 시위는 규모가 점점 커지며 오후 2시쯤에는 광화문과 시청에 이르는 인도 일대를 점령했다. 일부 시위대가 도로를 점거하면서 교통이 마비되는 상황도 발생했다. 이때 대화경찰 전원이 투입돼 도로에 있는 시위대를 인도로 안내하면서 차로를 확보했고, 교통 혼잡 상황을 보다 빠르게 정리할 수 있었다.

중앙일보

서울지방경찰청 대화경찰들이 15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열린 광복절 집회시위 현장에서 시위 참가자와 대화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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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는 있었다. 배치인력 부족으로 시위 참가자들이 대화경찰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 막상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시작한 일제강점기피해자전국유족연합회는 이날 오전 9시부터 일본 정부의 사과와 더불어 양승태 사법부 시절 강제징용·위안부 소송 재판거래 의혹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청와대까지 거리행진을 이어갔다. 대부분 80세 이상 고령의 노인으로 구성된 100여 명의 시위대가 무더위 속에 소복을 입고 광화문을 거쳐 청와대로 행진하는 동안 대화경찰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경찰 관계자는 “시행 첫날이고 인력이 부족해 인원이 많지 않은 시위까지 대화경찰을 배치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전의 정보경찰이 하던 집회시위에서의 관리 업무와 크게 다를 것이 없어 '옷만 갈아입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서울청 차원에서 대화경찰을 대상으로 일련의 교육을 진행해오긴 했지만 대화경찰이 갖춰야 할 협상력 및 위기관리능력 등의 전문성을 찾아보긴 아직 힘든 상황이라 교육 및 전문성 강화 대안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대화경찰관제는 스웨덴에서 시행된 뒤 독일·덴마크 등 선진국에서 뒤따라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다. 현재 영국도 비슷한 제도를 도입하면서 선진국의 '민주화된 경찰'의 지표처럼 여겨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논의된 지는 5년 이상이 됐고 시민단체 등에서 도입을 적극적으로 요청했지만 번번이 주목을 받지 못해왔다. 그러나 민갑룡 신임 경찰청장이 도입에 강한 의지를 보였으며. 첫 시행 후 성과가 인정되면 전국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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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방경찰청 대화경찰들이 15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열린 광복절 집회시위 현장에서 근무를 서고 있다. 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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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경찰관제를 처음 제안한 황규진 전 경찰대학 경찰학과 교수(현 인천부평경찰서 정보1계장)는 "2016년 촛불집회 등을 보면 우리 시민사회는 집회시위에서 아주 성숙한 모습을 보여왔다"며 "이 정도의 성숙하고 평화로운 집회시위 문화가 정착된 상황이라면, 대화경찰제가 도입 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진행되고 있는 정보경찰 개혁과 맞물려 제도가 안착해 나가야 하며, 전문화된 인력 양성을 통해 수사 및 형사 부문까지 확대된다면 바람직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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