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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카 인사이트] 美서 만든 렉서스는 미국차? 일본차?…車의 국적 `Made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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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메르세데스 벤츠 디지털 계기판은 LG전자가 만든 것이다. [사진 제공 = 글로벌오토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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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는 19세기 말 유럽에서 태어나 20세기 중반 미국에 의해 지배됐고 20세기 말에는 일본에 의해 좌우됐다. 대량생산과 모델 체인지, 브랜드 다양화 등으로 자동차를 대중화한 포드와 제너럴모터스(GM)에 힘입어 미국은 20세기 중반 인류 역사상 최고의 경제 부흥을 이뤘다.

미국은 두 차례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부를 키웠고 이 과정에서 1950년대까지 미국산(메이드 인 USA) 자동차가 세계 자동차의 80% 이상에 달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1970년대 두 차례 석유파동은 자동차산업의 주도권을 바꿔 놓았다. 경제성이 높은 중소형차에 집중한 일본산(메이드 인 재팬) 차의 판매가 급증했다. 1980년 일본산 자동차가 미국산 자동차를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다. 이때까지만 해도 자동차의 국적은 완성차가 생산된 나라로 분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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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보는 번호판에 Made by Sweden이라는 문구를 새겨 국가의 이미지를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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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일본의 경제 성장을 경계해 통화전쟁을 벌이던 미국이 자동차 통상마찰을 제기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일본 자동차회사들은 이에 현지 생산이라는 절묘한 타개책을 내놨다. 일본이 아닌 지역에서 일본제(메이드 바이 재팬) 자동차를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이 미국에서 차를 생산한 이후 대부분 자동차회사들은 생산시설을 해외로 확대하기 시작했다. 자동차 산업의 세계화가 이뤄진 셈이다. 지금은 세계 자동차 생산의 3분의 1가량이 일본제다. 일본산 차는 1000만대에 미치지 못하지만 해외 생산 일본제 차는 1800만대에 육박한다.

동시에 거대 자동차회사들의 생산 규모는 연간 1000만대 수준까지 확대됐다. 미국은 통화전쟁을 통해 일본이 경제 대국의 길을 걷는 것을 막는 데는 성공했지만 기업들의 덩치가 상상을 초월할 수준으로 확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셈이다. 더불어 자동차산업의 국적에 대한 의미를 통째로 바꿔 놨다.

현지 생산으로 가속화된 세계화는 두 가지 화두를 던졌다. 품질과 독창성이다. 세계화라는 명분으로 규모화를 추구했지만 품질관리에 많은 문제점이 노출됐다. 자동차업계는 현재 사상 초유의 리콜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앞으로 이 문제의 해결 여부에 따라 자동차회사의 경쟁력이 좌우될 수 있다.

각 브랜드의 독창성도 약해지고 있다. 20세기만 해도 미국 GM이 모델 체인지라는 기법을 동원하면서 차의 얼굴은 새 모델이 나올 때마다 달라졌다. 주기적으로 얼굴을 바꿔 신선함을 강조했다. 일본 자동차회사들은 모델 체인지 주기를 4년 전후로 짧게 하면서 신차 효과를 무기로 판매대수를 크게 늘리는 데 성공하며 세계 시장을 석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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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시스에 채용된 컵 홀더도 미국 문화의 산물이다.


반면 독일제 자동차들은 성능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강한 독창성을 내세워 고가 브랜드를 육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형상화한 것이 BMW의 키드니 그릴, 메르세데스-벤츠의 세 꼭지 별, 아우디의 네 개의 원 같은 패밀리룩이다. 패밀리룩은 독창성을 위한 중요한 소구로 자리 잡았다.

일본 고유의 문화를 반영한 차를 제작하던 렉서스와 인피니티도 독창성을 위해 브랜드 고유의 얼굴을 만들었다. 기아차의 타이거 노즈도 같은 맥락에서 등장했다.

오늘날 세계적인 붐이 일고 있는 크로스오버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스타일링 디자인 흐름을 보면 독창성이 많이 희석된 것을 알 수 있다. 독일 차와 미국 차의 주행성은 여전히 차이가 있고 일본 차와 한국 차의 분위기는 분명 다르지만 들여다보면 많은 부분이 비슷해졌다.

배경에는 부품의 글로벌 소싱이 있다. 예를 들어 폭스바겐은 연간 1조원에 달하는 한국산 부품을 조달해 차를 생산한다. BMW와 메르세데스-벤츠도 6000억~8000억원에 달하는 부품을 한국산으로 충당한다. 포르쉐에 한국타이어가 장착되고, 벤츠 S클래스의 디지털 계기판은 LG전자가 만든다. 물론 한국산 부품도 원천 기술은 다른 나라인 경우가 많다. 같은 부품이라도 지역에 따라 다른 부품업체의 것을 사용하기도 한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보면 BMW는 조그셔틀 모양의 다이얼로 내비게이션을 비롯한 각종 편의 장비를 조작하는 아이드라이브(iDrive)라는 장비를 선보이며 디지털 시대를 선도했다. 벤츠는 ABS와 에어백을 비롯한 각종 안전장비를 개발해 세계화시켰다. 아우디가 가장 먼저 사용하기 시작한 LED램프도 이제는 자동차 앞 얼굴 이미지를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될 소구로 자리 잡았다.

문화적인 세계화도 있다. 컵 홀더는 테이크아웃 커피와 드라이브 인 스루 문화를 유행시킨 미국의 산물이다. 지금은 모든 자동차회사들이 운전석 오른쪽이나 동승석 앞에 컵 홀더를 만들고 있다. 세계화는 디자인과 성능의 상향평준화라는 긍정적인 효과도 낳았다. 반면 각종 버튼과 스위치의 위치와 모양이 비슷해져 특별한 맛이 감소했다.

현재 자동차산업의 중심은 중국으로 옮겨 가고 있다. 지난해 세계 자동차 생산과 판매의 3분의 1이 중국에서 이뤄졌다. 중국 시장은 아직 완전히 개방되지 않았다. 중국산(메이드 인 차이나) 차가 대부분이고 수입차는 120만대 전후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중 70%는 중국산 독일제와 일본제, 미국제, 한국제 자동차가 차지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모두 50%를 넘지 못하는 지분을 통한 합작회사에 의한 것이지만 중국 정부는 이 규제를 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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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는 아이드라이브를 선보이며 디지털 시대를 선도했다.


중국 시장이 커지면서 차 만들기도 달라지고 있다. 대부분의 브랜드들이 중국 소비자들을 위한 차 만들기를 하고 있다. 큰 차를 선호하는 특성을 반영해 축간거리를 확장한 모델을 제조하고 있으며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취향을 노려 크롬 도금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운전석과 동승석 사이에 있는 수납공간 앞부분에 별도 티슈 홀더를 만든 것도 중국 소비자들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다. 머지않아 대부분의 자동차들은 티슈 홀더를 추가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지리차 소유지만 스웨덴 브랜드인 볼보의 행보가 주목을 끈다. 볼보는 수년 전 차의 뒤 번호판 아래 문구를 'Volvo for Life'에서 'Made by Sweden'으로 바꿨다. 볼보는 스칸디나비안풍의 디자인을 비롯해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토르의 해머를 전조등 디자인으로 채용하고 있다. 변속기 손잡이를 스웨덴의 크리스털 유리기업 오레포스제로 만들기도 했다. 더 나아가 차 외부와 실내 곳곳에 스웨덴 국기를 달고 있다. 스웨덴이라는 국가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재규어랜드로버도 품위와 스포츠세단의 이미지가 특징인 영국풍 디자인으로 독창성을 강조하고 있다.

자동차 대중화에 가장 큰 역할을 했던 미국 포드가 살려 내지 못한 볼보와 재규어랜드로버는 지금 중국과 인도 기업의 소유로 넘어가 급성장하고 있다. 달라진 점은 생산(Made in)이 아니라 자동차를 개발한(Made by) 원산지의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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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완성차의 글로벌 소싱으로 이어지고 있다. 중국산 차의 세계화가 시작됐다는 얘기다. 캐딜락과 폭스바겐은 중국산 차를 수출하고 있다. 볼보 S90의 경우 중국에서 생산된 차량이 세계 시장에 수출되고 있다. 초기에는 시장에 따라 반응이 다를 수 있어 저항에 직면할 수도 있겠지만 임금 상승으로 비용 압박이 거세지면 다음 상황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여전히 자동차산업은 '저먼 엔지니어링(German Engineering)'을 배경으로 하는 독일제와 '모노쓰쿠리(물건 만들기라는 일본어)'를 바탕으로 장인정신을 강조하는 일본제가 주류다. 하지만 세계 최대 시장 중국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환경으로 새로운 경쟁력을 요구하고 있다. 지금까지보다 훨씬 높은 품질과 강한 독창성이 경쟁력의 핵심이 될 것이다.

[채영석 글로벌오토뉴스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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