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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IF] [사이언스 샷] "외래 해충은 외래 천적으로" 자연적으로 유입된 기생벌, 美 과수원 망치는 노린재 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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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저지주의 복숭아 농장은 아시아에서 온 썩덩나무노린재(학명 Halyomorpha halys)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방패 모양의 갈색 몸통을 가진 이 곤충은 복숭아에 침을 찔러 넣고 과즙을 빨아먹는다. 복숭아는 도저히 팔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썩덩나무노린재는 1998년부터 아시아에서 미국으로 옮겨와 지금은 43개 주로 퍼졌다. 사과·복숭아에 이어 옥수수·콩·딸기·토마토 등에 무차별적인 피해를 입히고 있다. 지난해 사과 농사 피해액만 3500만달러(약 395억원)에 이른다.

외부에서 유입된 해충은 천적이 없어 더 기승을 부린다. 미국 농무부 농업연구소 과학자들은 노린재의 고향으로 날아가 원래 천적을 찾아냈다. 바로 한국과 일본·중국·대만에 사는 '사무라이 기생벌(Trissolocus japonicus)'이다. 참깨만 한 크기의 작은 기생벌은 노린재 알에 자신의 알을 낳는다. 기생벌 애벌레는 노린재 알을 먹고 자라나 나중에 성충이 돼 나온다〈사진〉.



조선비즈

/미 농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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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은 아시아에서 사무라이 기생벌을 가져와 노린재를 박멸하는 생물 농약으로 쓰려고 했다. 그런데 자연이 선수를 쳤다. 2014년 메릴랜드주에서 야생 사무라이 기생벌이 발견된 것이다. 유전자를 분석해보니 농업연구소가 아시아에서 도입한 것과는 다른 종류였다. 그 후 유전적 특징이 다른 3가지 기생벌 집단이 이미 미국에 들어와 10개 주에 퍼져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과학자들은 노린재 알이 기생벌 애벌레에 감염된 채 미국으로 옮겨왔거나 미국으로 오는 비행기에 우연히 기생벌 성충이 날아들어 이주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과학자들은 외래종이 자연적으로 유입된 외래 천적의 공격을 받는 현상을 '우연적인 생물 통제'라고 불렀다. 과거에도 북미 잎벌레가 유럽에 옮겨가 해로운 외래 식물인 돼지풀을 공격한 사례가 있다.

자연에서 발견된 기생벌은 과학자들의 고민을 덜어줬다. 생물 농약으로 쓰려면 기생벌이 썩덩나무노린재만 공격하고 다른 곤충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그 전에는 야외 실험도 할 수 없다. 이런 절차를 통과하는 데 보통 수년씩 걸린다. 하지만 이미 자연에 기생벌이 들어와 노린재를 공격하고 있다면 정부의 승인 절차를 대폭 생략할 수 있다. 코넬대 연구진은 이미 사무라이 기생벌을 뉴욕주 24개 농장에 방사하고 방제 효과를 분석하고 있다. 기생벌은 일부가 미국 고유종인 노린재도 공격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대체적으로는 생물 농약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yw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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