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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사랑에 빠져 번민하던 열아홉 살 쇼팽을 연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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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샤바 쇼팽 축제에 선 조성진 "피아노 협주곡 2번 연주 중 최고"

피아니스트 조성진(24)을 지난 13일(현지 시각)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의 국립 오페라극장에서 만났다. 2015년 10월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녹음한 쇼팽 음반(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지아난드레아 노세다와 그가 이끄는 유럽연합 청소년 관현악단과 함께였다. 곡목은 쇼팽 피아노협주곡 2번.

이번 무대는 바르샤바에서 매년 8월에 열리는 '쇼팽과 그의 유럽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올해 주제는 '쇼팽에서 파데레프스키까지'. 폴란드 출신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이그나치 얀 파데레프스키(1860~1941)는 1919년부터 폴란드 공화국의 초대 총리를 지낸 정치인이기도 하다. 올해는 폴란드 독립 100주년을 맞아 폴란드를 대표하는 음악가이자 애국자였던 쇼팽과 파데레프스키를 전면에 내세웠다.
조선일보

지난 13일(현지 시각) 폴란드 바르샤바 국립 오페라극장에서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한 피아니스트 조성진. 그 옆에서 지휘자 노세다(왼쪽)가 웃음 띤 얼굴로 조성진을 보고 있다. /황장원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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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의 이번 공연에 음악 애호가들이 각별히 관심을 보인 이유는 '쇼팽의 심장' 바르샤바에서 쇼팽 피아노협주곡 2번을 연주하기 때문이었다. 쇼팽 콩쿠르에서도, 음반에서도, 국내 협연 무대에서도 그동안 조성진은 쇼팽 피아노협주곡 1번만 들려줬다. 2번을 선보이기 시작한 지 1년이 됐다지만, 우리 관객들에겐 여전히 생소하고 궁금한 모습이다.

연주는 기대 이상이었다. 이제껏 실연으로 접한 여러 연주자의 쇼팽 피아노협주곡 2번 중 감히 최고였다. 1번에 비해 내성적·여성적이란 평을 듣는 2번에서 조성진은 1번 못지않게 뜨거운 열정을 적극 드러냈다. 첫 악장에서 열정을 담은 선율은 단호하게 등장해 비장하게 나아갔고, 서정적인 선율은 투명하면서도 애틋한 탄식을 자아내며 흘러갔다. 최근 드뷔시를 녹음하면서 더욱 다채롭고 풍부해진 음색이 즉흥적인 흐름을 타고 미묘하게 펼쳐지며 꿈결 같은 시간을 선사했다. 느린 악장에서 감각적 선율을 차분하게 빚어내는 솜씨도 좋았지만, 고뇌로 요동하는 중간부를 지나 다시 처음의 선율이 나타났을 때 달라진 건반 위 손놀림과 복합적인 표현력도 일품이었다.

노세다가 이끈 관현악과의 호흡도 나무랄 데 없었다. 노련한 오페라 지휘자인 노세다는 조성진이 빠르기를 어떻게 움직이든 자연스럽게 받아주면서 독주와 반주의 균형, 악곡의 드라마틱한 흐름을 효과적으로 조율했다. 조성진은 어린 단원들이 때때로 내보인 실수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만큼 여유로웠다.

앙코르는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 중 10번 '열정'이었다. 사인회 직후 만난 조성진은 쇼팽의 두 협주곡 중 "앞쪽 두 악장은 2번, 끝 악장은 1번이 더 좋다"고 했다. "2번을 연주할 땐 작곡 당시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빠져 번민했던 열아홉 살의 쇼팽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연주에서 그가 전달한 여러 감정 중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건 간절함이 아니었을까.





[바르샤바=황장원·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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