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19 (화)

은퇴자의 한숨 "月120만원 연금으로 사는데 건보료만 18만원"

댓글 3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 84만 가구 건보료 쇼크 ◆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3년 전부터 부업으로 최근 유행하는 파티룸 사업을 해온 직장인 오 모씨(35)는 이달부터 내는 건강보험료가 올랐다. 직장 보수 외 파티룸 사업으로만 월평균 300만여 원의 수익을 냈던 오씨는 기존에는 월급에 대해 7만~8만원 선의 건보료만을 납부했으나 이달부터는 월급 외 소득에 대한 보험료 약 4만원을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월급 외 고소득자(상위 1%)에 대한 추가 보험료 부과 기준이 월급 외 연소득 7200만원에서 3400만원으로 대폭 낮아졌기 때문이다. 오씨는 "당장 추가 보험료를 내는 데 어려움은 없지만, 평소 병원을 잘 가지 않아 보험 혜택도 못 받아왔는데 보험료가 갑자기 올라 억울하다"고 말했다.

이번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은 이전부터 '무임승차' 논란을 일으켰던 고소득 피부양자들에게 신규로 보험료를 부과하고, 실제 소득 대비 보험료 부담이 크다는 지적을 받아온 지역가입자들 보험료가 전반적으로 내려가는 등 형평성 제고에 기여하는 면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 평가다.

그러나 일부 고소득자와 은퇴자들은 이번 건보료 개편이 '부당하다'는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이번 개편으로 지역가입자 중 상위 2~3% 고소득·고액 자산가 39만가구는 월평균 약 5만6000원의 보험료(17%)가 인상됐다. 그중에서도 일부 고소득자는 보험료 인상폭이 많게는 월 70만~80만원에 달했다. 특히 고소득자들 사이에서는 "그간 건강보험 혜택도 상대적으로 적게 받아왔는데, 내는 보험료는 터무니없이 많아졌다"며 불만이 가중되고 있다.

실제로 건강보험공단의 '보험료 부담 대비 급여비 현황'에 따르면 보험료 납부 상위 20%에 해당하는 5분위의 보험료 부담 대비 급여비는 1.15배 수준이다. 이들은 월평균 24만7795원의 보험료를 납부해 월평균 28만3827원을 보험급여로 받았다. 이에 비해 하위 20%에 해당하는 1분위는 월평균 2만7793만원의 보험료를 내고 14만9360원의 보험 혜택을 받아 보험료 부담 대비 급여비가 5.37배를 나타냈다. 1분위와 비교해 5배에 가까운 보험료 부담 대비 급여비 혜택을 받은 것이다. 1분위와 5분위의 보험료는 8.9배 차이가 나지만 급여비는 이보다 훨씬 적은 1.9배의 차이를 보였다. 보험료를 많이 납부하고 있는 고소득자·고액 자산가일수록 그만큼의 급여 혜택은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전 가구 평균 보험료 부담 대비 급여비는 1.79배다.

전체 가구가 아닌 전체 적용인구로 보면 5분위는 1인당 월평균 8만9356원을 부담하고 급여는 9만3988원을 받아 보험료 부담 대비 1.05배에 불과한 급여 혜택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5분위 중에서도 건강보험료를 많이 납부하는 지역가입자 가구는 1.0배(보험료 23만4131원·급여비 23만8004원)로 낸 보험료와 거의 같은 수준의 혜택을 받았다.

소득과 재산 등 경제적 수준에 비례해 보험료를 부과하는 것은 일본 등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고소득자와 고액 자산가들이 내는 보험료 상한선은 우리나라가 가장 높다.

일본의 경우 건강보험료를 납부하는 근로소득 상한선은 월 121만엔(약 1220만원) 수준이다. 독일(월 3712유로·약 480만원)과 오스트리아(월 3750유로 ·약 486만원) 등 유럽연합(EU) 선진국들은 그보다 낮다. 소득이 아무리 많아도 해당 금액만큼에 대해서만 보험료를 납부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소득 7810만원까지 보험료를 부과하고, 이 상한선은 7월부터 월 9925만원으로 더 올랐다. 이에 따라 부과되는 보험료 상한액 역시 243만7000원에서 60만여 원이 오른 309만원7000원으로 인상됐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건강보험료를 '건강보장세' 라고 부른다. 건강보험료가 자신을 위한 '보험'이 아닌 소득 재분배 기능을 하는 '세금'과 비슷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는 "한국의 건강보험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수준의 소득 재분배 역할을 하고 있다"며 "재산에서 소득 중심으로 보험료 체계가 전환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지만 상한액 자체가 지나치게 높은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소득은 적은데 재산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피부양자에서 탈락한 은퇴자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이미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번 부과체계 개편안이 발표된 이후 지속적으로 항의글이 올라오고 있다.

한 청원자는 "저의 부친은 1930년생으로 6·25전쟁을 거쳐 장기간 군복무한 이력으로 연간 3450만원가량의 연금소득만 있다"며 "소득기준 약 50만원을 초과한 것 때문에 추후 연간 약 270만원을 건강보험료로 지출해야 되는, 배보다 배꼽이 큰 상황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 청원자는 "3399만원 이하 소득자보다 가처분소득이 적어진다는 소득역진 현상이 발생했다"며 부과체계 개선을 호소했다.

정부는 2022년 7월 '2단계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을 계획하고 있다. 이에 따라 피부양자 자격을 추가로 잃는 가입자는 현 30만가구에서 46만가구로 늘어날 예정이다. 월급 외 소득에 보험료가 징수되는 직장가입자 역시 15만가구에서 29만가구로 늘어난다.

[연규욱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