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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김진호 국제전문기자 평양을 가다]여기는 평양, 대동강도 하늘도 파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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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평양, 대동강도 하늘도 온통 파랗다.”

서울을 떠나기 전만 해도 평양 한복판에 앉아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지난 11일 페이스북으로 대동강변의 풍광과 옥류관 평양랭면 등 사진 3장을 올리자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수많은 댓글에 답하면서 평양에서 실시간으로 날씨와 인상을 전했다. 12일 오후 늦게 빗방울이 후두득 떨어지더니 소나기가 퍼붓고 있음도 알렸다. 단순히 부러움을 표하는 분들이 많았지만, 무엇보다 평양에서 리얼타임으로 서울의 페친들과 교신할 수있다는 사실 자체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는 반응이 인상적이었다.

이번에도 평양과 만나는 여정은 ‘가슴’에서 출발해 ‘머리’를 향했다.

서울과 평양. 서울 홍제동 4거리에서 불광동 쪽으로 통일로를 달리다보면, ‘평양까지 227㎞’라는 현수막이 길가에 걸려 있다. 그 거리 표시는 임진각 표지판에서는 153㎞로 줄었다가 개성을 거쳐 평양행 고속도로에 오르자 140㎞ 정도로 더 짧아졌다.

우리측 도라산출입사무소(CIQ)와 북측 출입사무소를 통과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과, 개성~평양 고속도로를 시속 110㎞ 정도로 달린다면 자유로 끝에서 평양 도심까지 1시간 30분이면 당도할 수있는 거리다. 고속도로 노면이 다소 거칠지만, 실제 북측 승용차나 SUV 차량이 질주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평양에서의 SNS 경험은 그 짧은 거리를 두고 서울은 평양을 그리워 하고, 평양은 서울을 바라봐야 하는 지독한 모순을 새삼 상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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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평양의 아침은 자욱한 안개에 덮힌 채 밝았다. 지난 밤, 양각도 호텔 34층의 강변 창문으로 내다본 시내에는 건물마다 불을 밝혀놓고 있었다. 평양의 전기 사정은 10여년 전 방북 당시에 비하면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북측 보장성원들은 “평양, 동평양 두개의 화력발전소가 가동되고 있는데다가 곳곳에 발전소를 짓고 있다”고 말했다. ‘제재 탓에 전력생산이 어려움이 없느냐’는 질문에는 “대비를 잘 해왔기 때문에 전기 사정이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고 답했다.

전력사정 뿐이 아니다. 현대적 디자인의 고층 빌딩과 시민들의 말솜씨, 도로의 자동차와 무궤도전차 등 모든 것이 과거에 비해 좋아졌다. 무엇보다 차창 밖 평양 시민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미래에 대한 낙관이 읽혔다. 국제사회의 제재를 이고사는 나라라고 믿기 힘들 정도였다. 이 도시의 활기는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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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가 4·27 판문점 선언으로 갈라치면 북측 보장성원들은 어김없이 “남측이 합의 내용을 빨리 이행해야 하지 않갔습니까”라고 강조했다. 북측 조선중앙통신과 로동신문이 하루가 멀다하고 강조하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판문점 선언의 이행 속도나 미국과의 대화가 모두 제재와 연관돼 있음을 모르는 사람들은 없어 보였다.

평범한 생활인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30대 초반의 청년 세대주(가장)는 제재 따위에 개의치 않고 있다는 입장을 내보였다. ‘제재가 풀리면 살림살이도 좀 나아지지 않겠나’라고 묻자 “우리야 늘 제재를 받으며 살아와서 별 신경을 안쓴다. 지금도 잘 산다”라고 답했다.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바라본 소회를 묻자 “우리 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세계 최강국 대통령이 굽실거리는 것을 보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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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존엄’은 주민 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다. 크고 작은 의문의 종착점은 ‘최고 존엄’이었다. 왜 북한에는 유독 ‘은정’이라는 간판이 많이 보일까. 개성~평양 고속도로의 유일한 휴게소 이름과 양각도 호텔 찻집 이름도 ‘은정’이었다. 찻집의 20대 여성 복무원에게 연유를 묻자 “그걸 모르셨습니까”라며 의아해했다. 이어 “위대한 수령님의 은혜를 받는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평양 시내 22개 구역은 물론 지방에도 지역별, 단위별 ‘은정원’이 있다고도 전했다. 찻집, 식당, 이발소, 목욕탕 등 주민 편의시설을 모아놓은 건물이라는 설명이었다. ‘은정차’도 있다. 황해남도 강령군에서 재배한 강령녹차의 다른 이름이다.

남북 정상이 9월 안에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갖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13일.

오후 내내 비가 내린 평양은 물안개에 덮혀 있다. 북측 중앙방송은 이날 정상회담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평양에서 만난 북측 사람들은 전망을 묻는 질문에 한사코 즉답을 피했다. 답 아닌 답을 내놓았을 뿐이다. “잘 돼야죠. 잘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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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김진호 국제전문기자 j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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