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6 (금)

계약서 미작성, 임금 미지급 여전…‘사자’ 사태로 본 드라마 제작 악습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100억 투입-스타 피디로 화제 됐지만

임금 미지급 문제로 촬영 중단

제작진 교체 뒤 20일 촬영 재개 예고

돈 못받은 스태프 “강경대응” 목소리

촬영 시작 넉달 뒤에야 계약서 작성

그나마도 월급→일급 바꾸는 등

구두 약속 내용 일방적 변경 반복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00억원에 이르는 제작비와 <별에서 온 그대>의 장태유 피디 연출, 박해진 출연 등으로 화제를 모았던 사전제작 드라마 <사자>가 임금 미지급 등으로 촬영이 중단됐다가 석달여 만에 제작이 재개된다. 김재홍 피디로 교체되는 등 재출항의 닻을 올렸지만, <사자> 사태는 제작진 임금 문제, 계약서 미작성 등 한국 드라마 제작의 고질병을 그대로 노출시켰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사자> 사태를 통해 드라마 제작 시스템을 전면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사자> 촬영 재개…미지급 공방은 여전 <사자>는 촬영을 시작한 지 넉달이 지난 5월10일 장태유 피디를 비롯해 일부 스태프들이 촬영을 중단한 데 이어 출연 배우 김창완까지 자진하차면서 내홍이 불거졌다. 20일부터 촬영을 재개하지만 사태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스태프들은 “제작사가 반복적으로 임금 등을 미지급했다”며 제작사 빅토리콘텐츠에 내용증명도 보냈지만, 빅토리콘텐츠 쪽은 “임금이 미지급된 스태프는 장태유 피디의 소속사인 스튜디오 태유와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이들의 임금은 원칙적으로 계약 당사자인 스튜디오 태유에서 지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13일 현재까지도 촬영·편집·소품팀 등 스태프들이 임금 1억9600만원을 받지 못했지만 빅토리콘텐츠는 피디를 교체하고 새로운 스태프를 투입했다. 돈을 받지 못한 이전 스태프들은 “임금과 계약금 등을 포함하면 약 4억원에 이른다”며 “20일 촬영이 재개되면 기자회견을 여는 등 강경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업계는 미지급 공방이 오가는 가운데에서도 촬영이 재개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미지급 사태에 대한 드라마 제작자들의 여전한 불감증을 여실히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동안 제작사들은 미지급은 안 주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이하 한연노)은 현재 드라마 총 11편에서 31억4700만원이 미지급된 것으로 집계했다. 2009년 <공주가 돌아왔다>부터, 2010년 <프레지던트> <도망자> <국가가 부른다> <정글피쉬2>, 2011년 <더뮤지컬>, 2012년 <신의> <그대를 사랑합니다>, 2014년 <감격시대>, 2015년 <태양의 도시>, 2016년 <국수의 신>이다. 연기자 기준이기에 스태프들을 합치면 금액은 더 늘어난다. 한연노는 “법적 판결이 나더라도 안 주기도 한다. 강제적으로 받아낼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계약서 없이 주먹구구식 촬영 <사자> 사태는 표준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일을 시작하는 주먹구구식 촬영 방식의 문제점도 다시 한번 드러냈다. 정부가 표준계약서 작성을 권고하지만, 한 방송제작 스태프 계약실태 조사를 보면, 방송제작 스태프 응답자 2007명 중 76.2%가 서면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사자> 역시 구두로 계약한 뒤 몇달이 지나서야 계약서를 작성했다. 스태프 ㄱ씨는 “1월에 촬영을 시작했는데, 계약서 작성을 차일피일 미루더니 5월에야 작성했다”고 말했다. 계약 내용도 달라졌다. 스태프 ㄴ씨는 “임금을 월급으로 받기로 구두 계약했는데 막상 1~2월 촬영 일수가 많지 않자 일당으로 지급하겠다고 말을 바꿨다”고 말했다. <사자>는 1월부터 5월10일까지 총 33일 동안 4회 분량을 촬영했다. 드라마 편당 스태프는 약 100명인데, 월급으로 지급받기도 하고, 일을 하는 날로 계산도 한다. 외주제작사와 각각 계약하거나, 팀별로 통으로 계약 뒤 배분한다. 한연노는 “정부가 권고안을 내놓지만 시장에서 수용하지 않고 있는 이상 무용지물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출연료는 통상적으로 방송 다음달 15일이나 말일까지 지급해야 하지만, 미지급 제작사들은 이마저도 잘 지키지 않는다. <사자>는 첫 촬영 때부터 약속 날짜를 미뤘다. 스태프 ㄹ씨는 “지난 1월11일 첫 촬영 이후 제작사가 단 한번도 임금을 제때 지급하지 않았다. 1·2월 임금이 4월에 들어왔고, 2·3월분은 5월에나 겨우 받았다”고 말했다.

한겨레

■ ‘사고’ 치고 이름 바꿔 또 드라마 제작 <사자> 사태가 더 문제가 되는 건 이 제작사의 미지급 공방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빅토리콘텐츠의 전신은 이김프로덕션이다. 이김프로덕션은 2003년 설립해 2004년 <발리에서 생긴 일>을 시작으로 <쩐의 전쟁> <기황후> 등 굵직한 드라마를 제작했는데, 2016년 상호를 변경했다. 2014년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가 공개한 출연료 미지급 현황표에는 이김프로덕션의 이름이 올라 있다. 미지급 논란이 있어도 또 드라마를 제작한 사례는 흔하다. 2016년 <국수의 신>(한국방송)으로 2억5000만원을 미지급한 베르디미디어는 비슷한 시기에 내놓은 아이피티브이 전용 드라마 <주왕> <여자전쟁-도기의 난> 때도 미지급 문제로 분쟁을 겪었다. 한연노는 “미지급 사태 등을 방지하고 건전한 드라마 제작 환경을 만들려면 문제를 일으킨 제작사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첫번째”라며 “문제를 일으킨 뒤 간부들이 폐업하고 새로 제작사를 차려 다시 드라마를 제작하는 일도 벌어진다”고 말했다. 현재 방송 전 분야를 포함해 외주제작사는 100여곳이 넘지만 제대로 운영되는 곳은 20~30개 남짓에 불과하다. 2017년 한국콘텐츠진흥원 자료를 보면 외주제작사 28곳이 매출 100억원 이상으로 전체 매출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한겨레

■ 촬영 문화 정착 위해 대책 마련 시급 <사자> 사태는 빅토리콘텐츠가 제작 전 방송사 편성을 받지 못해 일이 커진 측면도 있다. 스태프 ㄷ씨는 “편성을 받고 협찬사를 구하는 것과 편성 전에 구하는 것은 금액에서 큰 차이가 난다. 편성을 받지 못하면서 계획대로 잘 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지상파 드라마 관계자는 “외주제작사와 계약할 때 지급보증보험에 가입시켜 제작비가 고갈되거나 출연료 미지급 사태가 발생할 경우에 대비하는 등 방송사도 안전장치를 둔다”고 말했다. 외주제작사가 미지급할 경우 방송사가 도의적 책임을 지고 해결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자>처럼 방송사와 계약하지 않고 사전 제작하는 드라마의 경우는 제작사가 손을 놔버리면 임금을 받아낼 방법이 없다. 사전 제작 정착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외주제작사를 신고제가 아니라 등록제로 바꿔야 한다는 등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희망연대노동조합은 방송스태프지부를 만들고 권리 보호에 나섰다. 최오수 조직국장은 “드라마 <사자> 사태에 힘을 보태고, 앞으로 스태프 표준 계약서 양식을 분야에 맞게 세밀하게 작성하는 등 개선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오늘의 추천 뉴스]
[▶ 블록체인 미디어 : 코인데스크] [신문구독]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