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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여행만으론 아쉽다, 이젠 외국서 '한 달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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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장기 휴가 권하는 사회… 온 가족 낯선 나라서 한 달 휴가

서울 용산구에 사는 직장인 김상오(38)씨는 현재 1년간 육아휴직을 낸 후 아내와 7세, 2세 자녀와 함께 슬로베니아 수도 류블랴나에서 '한 달 살기 여행'을 하고 있다. 동유럽 국가로 여행지를 정한 이유는 휴직 후 급여가 한 달 100만원가량으로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아내는 독박 육아에 지치고 나는 아이들 자는 얼굴만 보는 데 지쳐 용기를 냈다"며 "휴직 기간 가족과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한 달 살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항공료는 4인 가족 왕복 300만원이 들었고, 숙박 공유업체 에어비앤비로 구한 숙박비와 식비로 하루 5만원가량을 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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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국에서 한 달씩 살아본 뒤 뉴질랜드에 정착한 류재무씨는“낯선 나라에 단골 가게가 생기고 이웃이 생긴다는 것이 한 달 살기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했다. 지난해 4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3주간 홈스테이하던 당시의 류씨 가족과 현지인 가족. /류재무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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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한 달 이상 머무르며 여행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2년 전 유행하기 시작한 '제주 한 달 살기' 열풍이 국내를 뛰어넘어 세계로 향하는 것이다. 한때 한 달 살기는 고소득자나 전업주부와 아이들, 대학생에 국한된 이색 여행으로 여겨졌지만, 최근 들어 육아휴직이나 장기 휴가를 권장하는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세대와 계층에 관계없이 인기를 끈다. 은퇴를 앞두고 한 달 살기 여행을 떠나거나 이민을 앞두고 '답사 여행'을 겸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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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부터 태국 치앙마이에서 살고 있는 주부 김선미(41)씨는 초등학생 자녀 둘과 함께 남편 이영화(42)씨를 기다리고 있다. 아내가 먼저 나가 집을 구한 뒤 아이들과 현지에 적응하면 남편이 2주가량 휴가를 내 함께 지내다가 귀국하는 경우다. 김씨는 "길어야 일주일 휴가를 쓸 수 있던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던 여행"이라며 "주변에 휩쓸려 방학 내내 아이들을 학원에 앉혀 놓는 것보다 그 돈과 시간으로 외국에서 지내며 시야를 넓혀주고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씨 역시 에어비앤비를 통해 37일간 지낼 주택을 50만원에 빌렸다. 물가가 저렴해 하루 2만~3만원이면 생활비로 충분하다고 했다.

이민 준비를 위해 한 달 살기를 하는 이들도 있다. 3년 전 은퇴한 뒤 이민하기로 결심한 김명섭(63)씨는 아내와 함께 올 10월부터 베트남 나트랑과 태국 치앙마이에서 각각 한 달씩 살기로 했다. 김씨는 "나트랑은 저렴하게 골프를 즐길 수 있는 레저 천국으로, 치앙마이는 외국 은퇴자들이 몰려 인프라가 잘 구축돼 있고 한국어가 통하는 병원까지 있다"며 "두 곳에서 한 달씩 살아보며 어디로 이민할지 정할 생각"이라고 했다. 5개 국가에서 한 달씩 살아본 뒤 뉴질랜드로 이민 간 류재무(38)씨는 "2년 전 건강이 안 좋아진 아내와 아들을 위해 미세 먼지 없는 나라에서 살기로 결심했다"며 "이민 후보지로 호주·태국·뉴질랜드·브라질·칠레·아르헨티나 6곳을 정해 각각 한 달씩 살아본 뒤 우리 가족에게 가장 맞는 뉴질랜드를 골랐다"고 했다.

젊은 직원이 많고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 가운데는 전 직원이 외국서 한 달 살기를 하는 곳도 생겨났다. 영상 콘텐츠 제작 업체인 '디 에디트' 이혜민 대표는 "지난 5월 포르투갈 포르투에서 직원 둘과 함께 집을 빌려 지내며 한 달간 일했다"며 "인터넷만 있으면 일할 수 있어 어려움이 없었고 회사 분위기 전환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장기 휴가가 익숙한 유럽이나 캐나다 같은 국가에선 이미 여름 휴가를 한 달 이상 쓴다는 개념이 서 있다"며 "주 52시간제를 비롯한 근로시간 단축과 함께 한국에서도 이런 휴가 문화가 정착될 것"이라고 말했다.

[표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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