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46919718 0352018081146919718 02 0201001 5.18.12-RELEASE 35 한겨레 0

마지막 희망 걸었던 ‘에어포켓’은 없었다

글자크기
[한겨레] 참사 순간 타기펌프 유압장치

고착되며 세월호 오른쪽 급선회

제주행 배가 인천행 펌프 사용

2대 켜고 본궤도 오르면 1대 껐으나

그날은 항해사 교대 때마다 간과

닫혔어야 할 맨홀 열린 채 고정

제대로 묶고 제대로 닫았다면

희생자들 모두 살아 돌아왔을 것

반대의견 “통상처럼 한대 켰다 봐야

사고 뒤 펌프 껐단 진술 단 한번”



[토요판] 특집

세월호 선조위가 밝힌 사실과 남긴 숙제

그날 세월호에서 벌어진 일

▶2014년 4월16일 오전 8시49분 세월호 뱃머리가 오른쪽으로 빠르게 돌면서 배는 왼쪽으로 넘어졌다. 배는 몇십 초 만에 좌현으로 45도 이상 크게 기울어졌다. 그리고 101분이 지난 10시30분 뱃머리만 남기고 물에 잠겼다. 그 과정과 이유를 밝히는 게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의 주요 과제였다. 선조위가 펴낸 종합보고서를 토대로 그날 세월호는 왜 기울어져서, 어떻게 가라앉았는지 재구성했다. 종합보고서 초안을 집필한 외부집필진 4명이 두 개의 보고서가 나오게 된 ‘그간의 일들’도 전한다.

“아저씨, 140도요.”

2014년 4월16일 아침 8시46분 3등 항해사가 조타수를 쳐다보며 135도에서 140도로 항로변경을 지시했다. 세월호는 병풍도와 약 0.9마일 거리를 두고 시속 18노트로 항해하고 있었다. “140도.” 조타수가 답했다. 조타수는 타를 우현 5도 정도로 맞췄다가 가운데로 되돌렸다. 배가 140도로 향한 것을 레이더로 확인한 3등 항해사는 우현으로 5도 더 항로를 변경하라고 명령했다.

“아저씨, 145도요.”

“어어, 안 돼. 안 돼. 안 돼.”

조타수가 소리를 질렀다. 3등 항해사가 조타수를 쳐다보며 소리쳤다.

“뭐가 안 돼?”

“아, 조타기가 안 돼요.”

조타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선수가 오른쪽으로 빠르게 돌면서 배가 좌현으로 45도 기울어졌다. 8시49분이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제주행 배에서 인천행 펌프 작동

급회전 직전 세월호의 타기 펌프(유압으로 타를 좌·우현으로 밀어주는 펌프)의 유압 장치(솔레노이드 밸브)가 고착된 것으로 보인다. 타를 우현 쪽으로 돌리는 압력이 계속 작용해 조타실에서 통제할 수 없는 우선회가 발생했다. 이 타를 다시 통제하려면 바로 타기 펌프를 꺼야 했지만 당시 선원들은 그런 대응을 하지 못했다. 다만 나중에 조타실 뒤편의 시스템 배전판 위에 타기 알람(경보음)이 시끄럽게 울리자, 3등 항해사가 이를 끄려다가 실수로 타기 펌프 정지 버튼을 눌렀다고 한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세월호는 되돌아올 수 없을 정도로 기울어진 상태였다.

솔레노이드 밸브가 고착된 타기 펌프는 평소 제주로 향할 때 쓰지 않는 2번(’인천행’)이었다. 솔레노이드 고착은 타기 펌프가 작동 중일 때 발생한다. 이날 세월호는 2번(’인천행’)을 썼다는 의미다. 제주행 배에서 왜 인천행 타기 펌프가 작동 중이었을까. 그 이유를 살펴보려면, 출항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4월15일 3등 항해사는 오후 4시가 지나 조타실로 올라갔다. 오후 6시30분 인천 출항을 앞두고 조타기를 시험 운전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시스템 배전판에 있는 스위치로 타기 펌프 1번과 2번 두 대를 모두 켰다. 세월호는 입출항 때 타를 빠르게 쓰기 위해 두 대의 타기 펌프를 모두 운용했다. 그리고 출항을 맡은 1등 항해사가 선박 왕래가 분주한 지역을 벗어나 항해가 본궤도에 오르면 통상 타기 펌프 한 대를 껐다.

하지만 이날 짙은 안개 탓에 출항 허가가 늦게 떨어졌다. 오후 6시30분에 출항했다면 1등 항해사가 출항을 맡았어야 했지만, 오후 9시로 출항 시간이 늦어지면서 3등 항해사가 당직을 섰다. 3등 항해사는 출항 후 타기 펌프를 꺼본 적이 없었다. 이날도 끄지 않았다.

밤 11시가 넘어 당직을 넘겨받아야 했던 2등 항해사는 자정이 넘어서야 조타실로 들어왔다. 승객 중 체한 학생이 생겨 객실에 내려가 돌봐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응급처치 자격증이 있었다. 3등 항해사와 교대한 그도 새벽 3시30분 당직 교대할 때까지 타기 펌프를 조작하지 않았다. 그다음 당직자인 1등 항해사도 타기 펌프가 하나가 돌고 있었는지, 두 개가 있었는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특별한 인수인계가 없어 그냥 갔을 뿐이다. 그리고 7시30분 3등 항해사의 당직 차례가 됐다. 맹골수도를 지나 항로를 변경하던 순간, 전날 인천항을 떠날 때부터 돌고 있던 ‘인천행’ 2번 타기 펌프의 솔레노이드에 말썽이 생겼다.

선조위 내 반대의견: 세월호는 인천항을 떠나면서 타기 펌프를 두 개 작동한 이후 누가 언제 타기 펌프 하나를 껐는지 확인되지 않는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한 대만 켜고 다녔다는 선원의 주장에 따라 사고 당시에도 1번 ‘제주행’만 작동한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또 3등 항해사는 검찰과 법원, 선조위에서 모두 21차례 조사를 받았는데, 사고 이후 타기 펌프의 정지 버튼 눌렀다는 진술은 단 한 번 등장한다. 타기 펌프의 정지 버튼엔 덮개가 있다. 버튼을 작동하려면 덮개를 여는 행위를 했을 것이므로 기억에 남았을 텐데 진술이 일관되지 않아 믿기 어렵다.

구조 대신 캔맥주 마신 선원들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이 발생했더라도, 정상적인 배였다면 조금 기울어지다 원래 상태로 회복됐을 것이다. 원상회복까지는 아니어도 기울어진 채로 잠시 표류한 뒤 사상자 없이 승객과 선원이 다 구조됐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세월호는 좌현으로 18~20도 기울어졌을 때 굉음과 함께 화물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화물 고정(고박)이 부실한 탓이었다.

제일 먼저 D갑판 철제 팔레트 위에 놓여 있던 철근 더미가 풀리면서 옆에 있는 대형 드라이어(원통형 건조기)의 고박 장치와 부딪힌 것으로 보인다. 이 대형 드라이어의 무게는 73.48톤이었다. 이 드라이어 왼편의 시멘트 파우더 트럭은 12.6톤, 그보다 더 좌현 쪽에 있던 트레일러와 드라이어 두 쌍의 무게는 각각 40.09톤, 40.60톤이었다. 이 대형 드라이어는 체인 블록 2개만 사용해 트러일러에 고박돼 있었다.

쏟아진 철근 무게 탓에 드라이어 고박 장치는 파손되거나 풀렸고, 트레일러와 드라이어 장치가 좌현을 움직였다. 그 다음부터는 도미노 현상처럼 대형 드라이어가 앞쪽에 있는 벌크 파우더 탱커와 대형 트럭을 덮쳤다. 그렇게 연쇄적으로 250톤의 화물이 우현에서 좌현으로 이동했다. 그리고는 나머지 화물들도 이동했다. 트윈갑판의 차량이 미끄러져 내렸고, C갑판 선수부에 있는 이동식 크레인이 전복됐다. 화물 이동 때 체인 고박장치가 분리되면서 불꽃도 일었다. 각종 화물이 대규모로 이동하기 시작하면서, 배는 돌이킬 수 없이 쓰러졌다. 몇 십 초만에 배의 기울기는 45도가 됐다.

선조위 내 반대의견: 철근과 갑판 사이에 목재 깔개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며, 마찰계수를 고려할 때 철근이 18~20도에서 움직였을지 알 수 없다. 가능한 시나리오일 수 있지만 D갑판을 비추는 차량 블랙박스 영상이 없어서 확인되지 않았다.

배가 45도 이상 기울어지자 우현 추진기가 절반 이상 수면으로 노출됐고 엔진이 멈췄다. 좌현 추진기도 1분 정도 돌다가 8시51분 정지했다. 세월호는 파도에 휩쓸리며 표류했다. 이 무렵 이미 배 밖으로 열려 있던 몇몇 출입구를 통해 바닷물이 조금씩 유입되고 있었다.

처음 바닷물이 들어온 곳은 C갑판 루버 통풍구(직사광과 비를 차단하는 비늘살형 통풍·환기구)였다. 이 통풍구조가 가장 밑에 있어 배가 기울어졌을 때 가장 먼저 바닷물에 닿았다. 루버 통풍구 안쪽에는 덮개가 설치돼 있는데, 덮개 방향에 따라 바닷물은 C갑판 차량화물칸이나 핀 안정기(선박 양측면 날개 형태로 설치돼 좌우 균형을 잡아주는 장치)실로 유입된다. 이날은 핀 안정기실로부터 침수가 시작됐다. 유입된 바닷물은 E갑판 기관장비 구역 전체로 흘러들어 갔다. E갑판의 수밀문(닫으면 물이 새지 못하도록 만들어진 문)과 수밀 격벽이 모두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선급 규정에 따르면 모든 선박은 침수 가능 구역을 적절한 단위로 수밀 구역으로 나누고, 그 사이를 물이 통할 수 없는 수밀문으로 만들어 관리해야 한다. 그러나 세월호는 선내 수밀 구역에 대한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E갑판 기관장비 구역에는 총 5개의 맨홀과 2개의 수밀문이 있었다. 수밀문은 미닫이문으로 돼 있어 선원들이 출입이 비교적 편하도록 설계돼 있지만, 언제라도 즉각적으로 폐쇄할 수 있어야 한다. 반면 맨홀은 여러 개의 볼트와 덮개를 고정하게 돼 있어 평소에는 닫혔다가 정비 점검을 위해 출입한다. 하지만 세월호는 모든 수밀문과 맨홀이 열려 있었다. 맨홀의 경우 덮개가 아예 열린 채 바닥에 묶여 있거나 심지어 옆면 벽에 볼트로 고정돼 있었다. 항상 그렇게 열어둔 채로 항해했다. 그 때문에 사고 당시 침수를 막아야 하는 격벽이 제 역할을 못했다.

수밀문과 맨홀을 열어 둔 채로 기관부 선원들은 8시55분경 기관실에서 모두 빠져나왔다. 기관장이 선장의 지시가 없는데도 기관부 선원들에게 탈출 지시를 했기 때문이다. 3층 선원 객실 복도에서 기관장과 기관부 선원들이 만났다. 이들은 승객들이 배에서 내릴 경우 구명뗏목과 구명슈터(미끄럼틀)를 바다에 내릴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이들은 캔맥주를 가져 나와 마시며 구조를 기다렸다. 해양경찰 헬기 소리가 들리자 이들은 3층 좌현 갑판으로 나왔다. 때마침 해경 구명보트가 세월호로 다가오고 있었다. 선원이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여기요, 여기.”

구명보트는 곧장 접안했다. 9시38분경 해경 123정의 첫 구조자는 기관부 선원 5명이었다.

세월호는 돌아올 수 있었다

배가 기울어지면서 C갑판 상부에 있던 각종 출입구도 해수면에 닿았다. 특히 좌현 선미 다섯 번째 창문이 망가져 바닷물이 몰아쳤다. 우현 열 번째 창문도 열려 있었다. 선미 쪽에는 트윈갑판이 타폴린(방수시트)으로 가려졌는데, 이 부분에서도 침수가 진행됐다. 무엇보다 C갑판에서 D갑판으로 이어지는 차량 이동용 경사로가 열려 있었다. 선미 램프로 들어온 차량은 이 경사로를 통과해서 이동하는데, 이 경사로에는 풍우밀(선박에 해수나 비가 침투하지 않도록 한 장치) 문이 설치돼 있었다. 이 풍우밀은 “닫아야 정상이겠지만 편의상” 닫지 않았다. 오히려 경사로에 차량 7대를 실었다.

배가 90도에 가까이 기울어지자 C갑판으로 들어왔던 바닷물은 이 경사로를 타고 D갑판으로 흘러들어갔다. 바닷물이 화물칸을 채우자 기울어짐이 더 심해졌고 객실 쪽으로도 물이 차올랐다. 기울어지는 속도가 급격히 빨라졌다. 승객들이 머물던 A갑판과 B갑판은 격벽이 없는 탓에 불과 15~20분 만에 빠르게 물에 잠겼다. 오전 10시30분 침수가 시작된 지 101분 만에 세월호는 침몰했다. 세월호가 뒤집힌 이후 객실에는 이른바 ‘에어포켓(공기층)’이 존재하지 않았다. 에어포켓은 화물이 실려 있던 D갑판과 C갑판 선수 방향으로 일부 있었다. 그래서 뱃머리만 남긴 채 침몰했던 것이다.

만약 수밀문이 닫혀 있었다면 어땠을까. 네덜란드 해양연구소 마린은 세월호가 65도 이상에서 비교적 오랜 시간 동안 머물렀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만약 핀 안정기실과 기관실 사이의 수밀격벽(맨홀)이 닫혀 있었다면 기관장비 구역의 침수는 더는 이뤄지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랬다면 승객들이 탈출할 시간이 더 확보됐을 것이다.

선조위는 종합보고서 서론에서 이렇게 썼다.

“세월호는 돌아올 수 있었다.

지킬 것을 제대로 지켰다면, 세월호는 그렇게 출항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묶을 것을 제대로 묶었다면, 세월호는 그렇게 넘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닫을 것을 제대로 닫았다면, 세월호는 그렇게 가라앉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 그랬다면, 배는 항구로 돌아오고 사람은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참고문헌: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 종합보고서 침몰원인조사(내인설·‘가’안)>(2018), <세월호, 그날의 기록>(2016·진실의힘)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오늘의 추천 뉴스]
[▶ 블록체인 미디어 : 코인데스크] [신문구독]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