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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의원이 신경쓰는 사람은? 표 찍은 이보다 돈 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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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신현호의 차트남 18. 플루토크라시(금권정치)

정책 실현에 끼친 영향 봤더니

일반인 지지 여부는 변수 못되고

부유층 선호도가 결정적 요인

노조 등 대중적 이익단체보다

총기협회 등 재계단체가 더 세

미 상원의원의 정책 성향도

정치자금 준 기부자와 일치

표 찍은 유권자와는 거리 멀어



1980년대 이래 각국에서 불평등이 심해진 여러 이유 중에서 주로 지목된 것은 세계화와 자동화입니다. 세계화로 인해 선진국의 제조업체가 저임금을 찾아 저개발 국가로 떠났기 때문에 선진국 중산층 노동자들이 실직하게 되고 그 결과 불평등이 커졌다는 주장은 널리 퍼져 있고, 이에 기초하여 반세계화 열풍이 미국과 유럽에서 거세게 불었습니다. 유럽에서는 주로 이민에 대한 반대로 나타났고, 미국에서는 트럼프에 의해 자유무역협정의 파기와 무역전쟁의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또 인공지능 등 자동화의 급격한 진척에 따라 대량으로 일자리가 사라졌지만 이를 대체할 새로운 일자리가 등장하지 않아 양극화가 극심해졌다는 생각도 상당히 확산되어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기본소득 등 급진적인 정책 대안이 일부 제기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두 가지가 불평등의 원인을 기술적, 경제적 성격에서 찾는 것이라면 제3의 설명으로 부각된 것은 정치적 원인입니다. 불평등이 심각해짐에 따라 사회의 자원이 소수의 부유층에게 집중되었는데 부유층은 그들의 부를 이용하여 정치적 영향력을 키웠기 때문에, 정치가 불평등을 완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폭시켰다는 주장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인 미국 정치의 금권화(plutocracy)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구성 요소는 ‘일인 일표’라고 하는 보통 평등선거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은 신분, 성별, 재산 등과 무관하게 누구나 한 표를 행사하여 자신을 대변할 정치인 선출에 참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평등이 심해질수록 경제적으로 곤궁하게 된 다수의 유권자들은 불평등을 완화할 정책을 지지하는 정치인을 선출하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불평등은 끝없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선에서 규율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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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 부자의 정치기부금이 전체의 40%

하지만 점차 민주주의가 형식적인 일인 일표 원칙에도 불구하고, 실질에서는 모든 사람의 이해가 균일하게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는 의심이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저명한 헌법학자 로버트 달은 그의 역저 <누가 지배하는가>에서 “모든 성인이 투표할 수 있는 나라, 하지만 지식, 재산, 사회적 신분, 관료와의 관계 등 모든 자원이 불균등하게 분배되어 있는 나라, 과연 이런 나라는 누가 지배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진 바 있습니다.

이 분야 연구에서 최근 단연 화제가 된 것은 프린스턴대학과 노스웨스턴대학의 정치학자 마틴 길렌스와 벤저민 페이지였습니다. 이들은 1981~2002년 미국에서 시도된 중요 정책 1779건 중 현실에서 구현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구분하여 어떤 요인이 정책의 실현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미국 정치를 설명하는 이론에 대한 검증’, <퍼스펙티브 온 폴리틱스>, 2014)

이 정책 대안에 대한 기존의 여론조사 결과를 응답자의 소득에 따라 정리한 결과가 [그림1-(A)]입니다. 일반인(중위소득 집단)들의 경우 이들의 지지 여부는 정책의 실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일반인들이 거의 지지하지 않는 정책이나,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정책이나 모두 30퍼센트 정도 실현되었습니다. 반면 부유층(소득 상위 10% 집단)의 경우 지지율이 높은 정책일수록 실현되는 정도가 뚜렷이 높아졌습니다. 이들이 거의 지지하지 않은 정책의 실현 비율은 5% 정도에 지나지 않았지만,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비율은 실현 비율이 60% 이상으로 치솟았습니다. 이를 통해 미국의 정책은 평균적인 사람들이 아니라 부유한 사람들의 선호에 반응하여 결정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길렌스와 페이지는 또 미국의 중요한 이익단체들이 각 정책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를 조사했습니다. [그림1-(B)]를 보시면 지지하는 이익단체가 많고 반대하는 이익단체가 적을수록 정책의 실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재계의 이익단체(예를 들어 총기산업협회)와 대중 이익단체(노조 등)를 구분하여 살펴보았는데, 전자가 압도적으로 영향력이 컸습니다. 이를 통해 미국의 정책에는 이익단체의 영향이 작동하는데 그 핵심은 재계 이익단체라는 것도 확인되었습니다.

부자들의 입장이 정책에 반영된다면, 그 경로는 무엇일까요. 정책이 결정되는 최종 지점이 의회 입법이기 때문에, 의원들이 부유층의 영향을 받지 않을까라는 점에 학자들이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스탠퍼드대학의 정치학자 애덤 보니카 등에 의하면 부유층의 정치자금 기부가 최근 급증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민주주의는 왜 불평등의 심화를 막지 못하였는가?’ <저널 오브 이코노믹 퍼스펙티브>, 2013) [그림2]를 보면 1980년대 이래 소득 0.01%에 속하는 최고 부유층 가구의 경우 소득도 증가하였지만, 이것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정치인에 대한 기부금 비중이 늘어났습니다. 1980년대에는 이들의 정치 기부금 비중이 10%대였지만, 2010년 이후 무려 40% 이상까지 치솟았습니다. 2016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뉴욕 타임스>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정치자금 기부를 많이 한 125가구가 미국 전체 1억2천만가구의 총 정치 기부금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늘어난 부유층의 정치 기부금의 실제 작동 방식을 밝힌 것은 브리검영대학의 정치학자 마이클 바버였습니다.(‘기부자, 당원, 투표인에 대한 상원의원의 대변’, <퍼블릭 오피니언 쿼털리>, 2016) 바버는 2012년 선거에 참여한 상원의원에게 기부금을 낸 2만여명의 기부자들을 대상으로 정책 성향에 대한 조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각 지역별로 투표를 한 사람들의 정책 성향에 대한 하버드대학의 조사 자료 및 상원의원의 의안 투표에 기초한 정책 성향을 집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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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3]의 제일 위에서 상원의원의 정책 성향과 해당 상원의원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한 기부자의 정책 성향 사이의 거리가 0에 가깝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의원과 기부자의 정책에 대한 성향이 거의 동일하다는 것, 즉 의원이 기부자의 정책 성향에 따라 의안 투표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의원들은 심지어 의원의 해당 지역에서 실제로 자신에게 투표한 유권자의 정책 성향보다도 기부자의 정책 성향에 더 민감하게 반영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해당 지역의 전체 투표자(즉 다른 후보를 찍은 경우를 포함)의 정책 성향에 대해서는 반영도가 매우 낮아서(즉 거리가 멀어서), 전체 국민의 정책 성향과의 거리와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상의 여러 정치학자들의 분석을 통해서 우리는 미국에서 부유층의 돈이 정치에 더 많이 흘러들어 가고 있고, 이를 통해 의원들이 부자들의 의견을 더 많이 따르게 되고, 그 결과 최종적으로 부유층이 원하는 바대로 정책이 결정되는 경향이 매우 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과연 이러한 현상이 미국만의 일일까요? 유럽의 경우 미국보다는 상대적으로 돈이 정치에 끼치는 영향이 적다는 주장이 보편적입니다. 하지만 텍사스대학과 리스본대학의 정치학자 데릭 엡과 엔리코 보르게토에 의하면 유럽에서도 불평등이 심화될수록 불평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경제적 이슈들에 대한 논의는 오히려 줄어든다고 합니다. 이들은 이것이 부유층의 정치적 영향 때문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유럽의 불평등과 입법 의제’, 진행 중인 논문, 2018)

부자와 기업의 정치자금 확대 막아야

한국에 대해서는 금권정치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는데, 정치자금이 과거에 주로 불법적인 방식으로 이뤄졌기에 연구가 어려운 것이 한 이유일 것입니다. 재벌들이 저마다 수백억씩 현금을 내서 이회창 후보 캠프에 전달한 초유의 ‘차떼기’ 사건이 있었던 게 2002년이니 불과 16년 전 일입니다. 금액은 크게 차이가 났지만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캠프도 불법 정치자금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이때 안희정씨의 구속으로 귀결되었죠.

그 후 2003년 여야 합의로 돈 안 드는 정치를 기치로 대대적인 정치자금법 개정이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정치자금 모금의 한도가 대폭 축소되었고, 법인의 정치자금 기부가 원천적으로 봉쇄되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법인의 정치자금 기부가 금지된 나라는 24%에 불과합니다. 미국의 경우 공식 통계상으로는 금지된 것으로 분류되지만, 실제 슈퍼 정치위원회 등을 통해 우회적으로 얼마든지 법인 자금이 정치권에 흘러들어 갈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우리의 정치자금법은 대체로 양질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불법적인 경로로 전달되는 것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감시하여야 할 것입니다.

최근 노회찬 의원이 안타깝게 세상을 뜬 뒤 일부에서 진보 진영에 불리한 정치자금법을 개혁하자는 얘기가 커지고 있습니다. 저 역시 원외의 정치 신인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것, 국고보조금 배분 시 비교섭단체를 소홀히 다루는 것 등 손볼 여지가 없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혹시라도 정치자금법 개혁을 빌미로 정치자금 총액 한도가 대폭 늘어난다든지, 부유층과 기업의 정치자금 기부 제도의 고삐가 풀리지 않도록 유념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것은 재산과 소득의 기울어진 운동장이 정치에 그대로 확산되는 일이고, 아마도 고 노회찬 의원께서 가장 바라지 않으시리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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