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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태섭기자의 교과서 밖 과학] 금만큼 비싼 농산물… “에어컨과 미래를 바꾸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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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다고 냉방장치에만 의존 안돼

온실가스 감축 노력도 함께해야
한국일보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폭염에 따른 한시적 누진제 완화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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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살인 더위에 정부가 7ㆍ8월 한시적으로 누진제를 완화하기로 했다. 그러나 ‘긴급 대책’이란 정부 설명에서 보듯, 어디까지나 ‘한시적인 방편’에 불과하다. 하지만 “전기료를 낮출 테니 냉방용 전기를 더 쓰라”는 식의 대책으로 가까운 미래의 ‘일상화한 폭염’을 더 악화할 뿐이다.

지구온난화는 ‘국내에서도 망고ㆍ바나나를 재배하게 됐다’ 정도의 낭만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그로 인해 매년 키우던 농작물을 재배할 수 없게 된 누군가는 삶의 터전이 사라진다. 식수 부족ㆍ작물 수확량 감소ㆍ온열대 질환 확산 등으로 또 다른 누군가는 목숨까지 빼앗길지 모른다. 머나먼,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 같지만 지구온난화가 몰고 올 ‘디스토피아’는 지금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당장 최근 3년이 역사상 가장 더웠던 1~3위라는 연구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미국국립해양대기청(NOAA)을 포함해 65개국 500여명의 과학자가 참여해 최근 미국기상학회보에 발표한 ‘제28차 연례 기후상태보고서’는 지난해가 역사상 세 번째로 더운 해였다고 밝혔다. 가장 더운 해는 2016년, 그 다음으로 기온이 높았던 때는 2015년이었다. 최근 3년 안에 역사상 가장 더운 해 1~3위가 모두 위치한 것이다. 올해 서울의 7월 평균기온(섭씨 27.8도)이 지난해보다 1도가량 높게 기록되는 등 전 세계가 겪는 폭염을 감안하면 이 순위는 또 바뀔 가능성이 크다. 엘레나 매낸코바 세계기상기구(WMO) 부사무총장은 “여러 국가에서 최고 기온 기록을 경신한 올해가 가장 더운 해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보고서가 기록한 전 지구적인 이상 현상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우선 대표적인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의 대기 중 농도는 지난해 405㏙을 기록했다. 정밀 기기로 측정해 온 지난 38년 동안 가장 높은 수치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1750년 산업화 이전까지만 해도 280㏙을 밑돌았다.

온실가스 증가는 다양한 분야에서 연쇄효과를 일으킨다. 지난해 지표면 평균 온도는 1981~2010년 평균보다 약 0.38~0.48도 올라, 1800년대 중반 관측 이래 역사상 세 번째로 높았다. 남극 해빙(海氷) 면적(210만㎢ㆍ지난해 3월1일)은 1978년 위성 관측 이후 가장 작은 모습을 보였다. 북극에서 빙하가 가장 작아지는 시기인 9월 북극 해빙 면적(13일 기준)은 관측 이래 8번째로 작았다. 극지방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 높이는 1993년보다 약 7.7㎝ 올랐다. 전 지구 해수면 높이는 10년마다 3.1㎝씩 상승하고 있다.

이산화탄소가 녹아들어 바다의 산성도가 변하고 있는 데다, 수온 상승까지 더해지면서 물고기의 서식ㆍ산란지인 산호초의 백화현상도 빠르게 확산 중이다. 백화현상은 산호초가 하얗게 변하면서 죽어가는 것으로 일부 산호초 지대에선 95% 이상의 산호가 폐사했다.

피해 역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영국 보건부는 최근 온실가스 배출이 현재 추세로 이뤄진다면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2050년엔 7,000명(현재의 약 3배)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오를 경우, 강ㆍ호수에서 이용 가능한 담수량은 지중해 지역의 경우 9%, 호주 10%, 브라질 북동부 7%까지 감소한다. 이미 지구 평균 기온은 산업화 초기 때보다 1도 가까이 오른 상태다.

폭염으로 올가을 농산물 물가가 ‘금값’이 될 거란 우려가 나오는 것처럼, 지구 평균 기온이 1도 오를 때마다 전 세계 밀의 생산량은 6.0%, 쌀 3.2%, 옥수수 7.4%, 콩은 3.1% 줄어든다. 지역마다 편차가 커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화 시기보다 1.5도 오를 경우 서아프리카 지역의 밀 수확량이 25%까지 줄어들 거란 연구결과도 있다. 매년 전 세계적으로 8,200만톤의 물고기가 바다에서 잡히는데, 기온이 1도 오를 때마다 이 숫자는 300만톤씩 감소한다. 인구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전 세계적인 식량 위기가 찾아올 가능성이 크다. 조천호 전 기상과학원장은 “한국은 식량 대부분을 수입하고 있어 전 세계적인 식량 위기가 발생했을 때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에어컨 냉매로 쓰이는 수소불화탄소가 이산화탄소보다 온실효과가 1만배 이상 높은 것을 감안하면, 문재인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주택용 전기요금 한시적 누진제 완화 방안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물론 살인 더위를 이겨낼 수 있도록 정부가 보조하겠다는 선의에서 대책을 내놨겠지만, 온실가스 배출만 놓고 보면 지구온난화를 억제하려는 국제사회 노력에 역행하는 정책이라고도 볼 수 있다.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대책에 아예 포함되지 않은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김주온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이번 폭염은 인류가 그동안 배출해온 온실가스 영향“이라며 ”다른 국가들과 협력해 과감한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폭염의 강도는 매년 더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