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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도로 위 또 하나의 스텔스…‘킥라니’에 떠는 운전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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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세계-킥라니 공포①] 이용자 급증 사고도 늘어

서울 마포구에 살고 있는 회사원 이모(32)씨는 며칠 전 퇴근길 운전 중에 전동 킥보드와 사고가 날 뻔했다. 집 앞 골목에서 우회전 중에 직진하는 차량을 먼저 보내주고 다시 주행하려던 중 조수석 후방에서 불쑥 튀어나온 전동 킥보드와 부딪힐 뻔한 것이다.

세계일보

게티이미지뱅크


이씨는 10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내 차 속도가 조금 더 빨랐거나, 오른쪽으로 조금 더 붙어서 회전했으면 큰 사고가 났을 것”이라며 “우측 깜빡이까지 켜고 대기 중이었는데 무슨 배짱으로 그렇게 튀어나오는 건지 모르겠다”고 격분했다. 그러면서 “(전동 킥보드 운전자) 본인이야 위험하게 다니다 사고가 나든 말든 상관없지만, 애먼 자동차 운전자한테까지 피해를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분을 참지 못했다.

최근 전동 킥보드, 세그웨이, 전동휠 등 개인형 이동수단(퍼스널 모빌리티) 이용자들이 늘어나면서 관련한 안전사고도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용 이동수단에 대한 규제나 정책이 체계적으로 마련되어 있지 않아 도로 위의 새 위협이 되고 있다. 차도와 인도를 구분하지 않고 불쑥불쑥 등장하는 전동 킥보드를 두고 ‘자라니’(자전거+고라니)에 이은 ‘킥라니’(킥보드+고라니)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할 정도다.

전문가들은 개인형 이동수단의 안전한 이용을 위해 관련 법규와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세계일보

지난 2015년 방영된 KBS2 드라마 ‘후아유-학교 2015’에서 보호 장비 없이 `전동휠` 타고 주행하는 장면.


◆개인형 이동수단 이용 급증…관련 법규는 미흡

최근 출퇴근‧통학‧레저 등의 목적으로 개인형 이동수단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지만, 아직 안전 세부규정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고 이용자들도 관련 법규를 잘 숙지하고 있지 않아 안전사고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1인용 이동기기 판매량은 2014년 3500대에서 2017년 7만5000대로 3년 새 21배나 급증한 것으로 추산됐고, 오는 2022년에는 20만대까지 늘 전망이다.

개인형 이동수단은 자동차관리법상 사용신고 대상이 아니어서 등록이나 책임보험의 대상은 아니다. 하지만 현행법상 원동기장치자전거로 분류돼 배기량 50cc 이하의 오토바이와 같은 취급을 받는다.

보도와 차도가 구분된 도로에서는 차도로 운행해야 하며, 차로가 여러 개인 경우 가장 오른쪽 차도로 다녀야 하고 안전모를 착용해야 한다. 또 원동기장치자전거 면허증이나 운전면허가 있는 만 16세 이상만 운전할 수 있다. 개인형 이동수단을 인도에서 달리거나 안전모를 쓰지 않거나 면허 없이 타면 모두 불법인 것이다.

하지만 많은 개인형 이동수단 이용자들이 차선을 넘나들며 아찔한 곡예 운전을 펼치거나 면허나 안전모 없이 운전하는 경우도 많다. 인도 위를 달리며 걸어가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협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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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는 사람도 지나가는 사람도 ‘위험천만’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개인형 이동수단 관련 사고 건수는 2014년 40건에서 2017년 193건으로 3년 새 5배 가까이 증가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4명이 숨지고 124명이 다쳤다.

사고 유형은 이용자가 차도에서 타다가 자동차에 부딪히거나 인도를 질주하는 개인형 이동수단에 보행자가 충돌하는 경우 등이 있다. 인도를 걸어가던 중 전동 킥보드에 팔을 스친 경험이 있다는 경기도 성남에 사는 주부 이모(33)씨는 “아파트 상가 앞 인도에서 학생 같아 보이는 사람이 전동 킥보드를 타고 지나가면서 내 팔을 스쳤다”며 “아무렇지 않게 그냥 지나가더라. 나는 너무 놀라서 한참을 못 움직이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개인형 이동수단 이용자들도 할 말은 있다. 합법적으로 타기 위해서는 차도 우측 가장자리에서만 주행해야 하는데, 일반 차량이나 원동기에 비해 현저히 느린 속도(25~30㎞/h)로 달리다 보면 교통사고 발생 위험이 높다는 것이다.

출퇴근 시 전동 킥보드를 종종 이용한다는 회사원 박모(28)씨는 “도로 오른쪽 가장자리로 달리고 있으면 옆으로 차들이 쌩쌩 지나간다. 거의 스칠 듯 지나가던 차 때문에 넘어질 뻔한 적도 있다”며 “잘못 넘어져서 뒤따라오던 차에 치이기라도 했으면 어땠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동 킥보드를 타고 안전하게 달릴 수 있는 도로가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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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기기와 이용자 안전 모두 고려한 제도 개선 필요”

명묘희 도로교통공단 책임연구원은 10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도로 이용 장소, 기기 안전, 이용자 안전 측면에서 관련 법규와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명 연구원은 먼저 도로 이용 장소에 대해서는 “현재 개인형 이동수단은 차도에서만 운행이 가능한데, 자전거도로를 통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며 “국회에 관련 법안이 발의된 상태이기 때문에 국회에서 논의한다면 해결이 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윤재옥 의원(자유한국당)이 지난해 6월 개인형 이동수단도 자전거도로 및 보도 등을 통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국회에서 1년 넘게 계류된 상태다.

명 연구원은 이어 “개인형 이동수단이 보도로 다니기에는 속도가 높기 때문에 보도 통행은 우리나라 환경에는 맞지 않다. 보행자가 위험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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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기 안전 측면에서 가장 준비가 미흡하다고 평가한 명 연구원은 “개인형 이동수단의 안전을 관리·감독할 주무부처가 없다. 빨리 마련돼야 할 것 같다”며 “앞으로도 더욱 다양한 종류의 개인형 이동수단이 나올 텐데, 이것들이 도로에서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지에 대한 검사와 안전 기준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마지막 이용자 안전에 대해서는 “외국 사고사례를 분석해보면 기존의 개인형 이동수단 기계 자체가 안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운전 미숙으로 혼자 넘어지는 사고가 많았다”며 “이용자 안전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 학과시험 정도는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지연 기자 delay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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