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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호의 이나불] 짜고 친 '악마의 편집', 시청자를 우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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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사진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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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질 게 터진 겁니다." 최근 불거진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이하 이나리) 논란에 대해 묻자 한 평론가가 대뜸 한 얘기다. '이나리'는 현재 한 출연진의 고발로 '악마의 편집' 논란에 휩싸여있다. 이 프로그램에 나와 시청자의 공분을 자아냈던 개그맨 김재욱과 그 아내는 지난 8일 SNS로 “제작진이 프로그램을 재밌게 만들기 위해 '악마의 편집'을 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방송에서 김재욱은 부모에게 여전히 종속돼 시시때때로 집을 드나드는 부모의 눈치를 보고, 아내는 그런 남편과 시부모 사이에서 수시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중 압권은 아내가 자연분만을 할 경우 위험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시아버지가 계속해 제왕절개 대신 자연분만을 권유하는 장면이었다. 김재욱과 아내는 이 장면들에 대해 ▶방송 섭외 전 이미 제왕절개가 결정돼 있었고 ▶자신의 어머니는 미용실 일로 바빠 1년에 한 번 집을 올까 말까 한다는 등 방송 내용과는 아예 상반된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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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사진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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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욱의 SNS 폭로 후 지금까지 제작진은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MBC 측은 “제작진으로부터 입장을 받아 전달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김재욱은 결국 10일 SNS 계정을 지웠다. 사실 방송에서 ‘악마의 편집’ 논란이 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다만 기존에는 주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였다. 적지 않은 출연자들이 나오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동등한 비중의 출연은 애초 불가능하다. 누군가는 배제되고 누군가는 살려내는 과정은, 포인트를 잡아내 재미를 추구해야 하는 제작진의 욕심과 만나 종종 ‘악마의 편집’ 논란을 빚곤 했다.

리얼과 만난 프로그램, '악마의 편집' 부르다
하지만 이번 ‘악마의 편집’ 논란은 기존과 다른 양상을 띤다. 이는 ‘리얼’을 강조하지만 실상은 ‘버라이어티’를 추구했던 ‘리얼버라이어티’ 시대가 저물고, 대놓고 ‘리얼리티’를 표방하며 일상에 카메라를 갖다 놓은 관찰 프로그램이 대세가 된 흐름과 무관치 않다. 다시 말해 있는 모습 그대로 비춘다고 내세우지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재미를 뽑아야 하는 제작진은 결국 무리한 설정을 가져오게 된다. ‘터질 게 터졌다’는 얘기는 이 때문이다.

‘이나리’는 그간 리얼과 설정 사이를 줄타기하며 인기를 누려왔던 ‘관찰 프로그램’의 속살을 있는 그대로 보여줬다. 물론 제작진만 탓할 건 아니다. 폭로한 출연자도 잘한 건 없다. 그의 말대로라면, 그는 제작진과 함께 가족들이 욕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연출해 시청자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는 방송의 생리를 잘 아는 연예인이다. 그는 이미 파일럿 촬영 당시에도, 자신에게 비난이 일자 SNS 활동을 잠시 중단하기도 했다. 그러니, 결국 그 모든 장면이 일상인 양 프로그램의 진정성을 믿은 시청자만 우스운 꼴이 됐다.

일상 그대로 담았다고? 믿은 시청자는 뭐가 되나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관찰 프로그램에서 누군가의 일상을 담는 경우 리얼버라이어티에서와 달리 이것이 곧 출연자의 인격과 직결되기 때문에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며 "특히 일반인 출연자의 경우 사전에 충분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실제 일부 프로그램은 방송의 생리를 모르는 일반인들을 앞세우고 그들을 대중의 분노 대상으로 만들어놓길 주저하지 않는다. SBS ‘골목식당’이 대표적인 예다. 성공한 요리 사업가 백종원의 지도를 받는 동시에 방송을 타서 유명해질 수 있다는 출연진의 기대심리는, 재미를 짜내야 하는 제작진의 목적과 만나 과도한 편집의 희생양을 만들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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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백종원의 골목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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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골목을 방문할 때마다 한 팀은 꼭 분노의 대상이 된다는 건, 프로그램 재미를 위해 필요한 ‘악역’을 편집을 통해 만들어내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들게 한다. 앞서 ‘골목식당’에 출연해 시청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은 한 출연진은 “제작진과의 마찰로 인해 오해가 생겼다”며 일부 방송 내용에 대해 “방송상의 캐릭터를 만들기 위한 제작진의 요청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정된 시간 속에서 정해진 틀에 맞춰야 하는 방송이, 있는 그대로 날 것을 ‘그대로’ 전달할 수는 없다는 건 시청자도 안다. 중요한 건 지켜야 할 선이 아닐까. 대놓고 거짓을 보여주며 ‘리얼리티’를 표방하는 건 콘텐트 제작자들이 할 일이 아니다. 거기에 동조하는 출연자 또한 마찬가지다. 너도나도 리얼리티를 강조하며 진정성을 내세우는 요즘이다. 다시 한번 '리얼'의 의미를 새겨보는 건 어떨까.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노진호의 이나불]은 누군가는 불편해할지 모르는 대중문화 속 논란거리를 생각해보는 기사입니다. 이나불은 ‘이거 나만 불편해?’의 줄임말입니다. 메일, 댓글, 중앙일보 ‘노진호’ 기자페이지로 의견 주시면 고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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