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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결의 포인트biz] '설왕설래' 일회용컵 전쟁, 더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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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 제10조(1회용품의 사용억제 등)'에 따라 이달 2일부터 커피숍 매장 내에서 일회용품 제공이 금지됐다. /고은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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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당국, '매장 내 일회용컵 사용 금지'에 정교한 대책 수립해야

[더팩트|고은결 기자] "컵에서 비릿한 물냄새가 나는 것 같고 설거지거리만 더 늘겠어요."

뿌듯한 마음도 한 순간, 금방 고민이 밀려들었다. 이달 2일부터 커피전문점 내 일회용컵 사용 단속이 시작된 이후 카페가(街) 풍경이 확연히 달라졌다. 최근 한 취재원과 식사 후 찾아간 한 커피 전문점에서도 음료가 일회용컵이 아닌 다회용컵에 담겨 나왔다. 컵은 다소 묵직했지만 환경보호에 동참한다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그런데, 기자 옆에 있던 취재원은 또 다른 문제를 지적했다. 일회용컵 사용을 금지함으로써 필연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는 인력과 위생문제를 염려한 것이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날씨 변화를 일으키는 '나비효과'까지는 아닐지라도 일회용컵 사용 금지정책은 그저 어느 한순간 일도양단으로 해결할 수 있는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정부는 지난 4월 '폐기물 대란' 이후 플라스틱 폐기물을 오는 2030년까지 50% 감축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종합대책을 수립했다. 이에 따라 유통가도 정부 정책에 보조를 맞추는 등 친환경 노력을 펼치고 있다.

소비자들이 가장 먼저 피부로 느끼는 변화는 커피전문점 내 다회용컵 사용이다. 그동안 카페 안팎에서 사용한 일회용컵은 연간 260억개에 달한다. 일회용컵 사용량이 지나치게 많은 점을 감안하면 정부의 이번 조치는 충분히 이해한다.

문제는 환경 당국의 단속이 일 주일을 넘어가면서 현장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소비자들은 환경보호를 위한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이번 조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제 카페 안에서 일회용컵을 사용하면 단속에 걸릴 수 있음을 여전히 알지 못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다회용컵이 여러차례 사용되면서 컵의 위생상태에 미심쩍은 눈길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일부 카페 사업장은 다회용컵 물량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거나 설거지 전담 인력을 고용하는 등 인건비 부담이 적지 않다. 심지어 "남이 사용한 컵을 쓰기 싫다", "5분만 앉아있다가 가겠다"면서 일회용컵을 고수하는 손님들과 카페가 실랑이하는 장면도 연출되고 있다.

특히 영세 사업자 고민은 갈수록 커져만 가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소식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가운데 손님이 가장 많은 시간대에 설거지를 하는 아르바이트생을 따로 뽑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개인 사업자의 경우 다회용컵 세척에 투입되는 인력, 기타 관련비용 등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아르바이트생 또한 손님들에게 일일히 다회용컵 사용 안내를 하는 등 일거리가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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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2년부터 시행된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는 컵 반환율이 내려가는 등 실효성에 대한 비판을 받아 2008년 폐지됐다. 이후 일회용컵 사용에 따른 규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더팩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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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을 위해 시작된 노력인 만큼 '작은 불편함'은 감수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인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억지춘향'격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일회용컵 감축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사업체와 소비자들에게 넘어가고 당국은 규제를 강행하는 것 외에는 실질적 노력을 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다회용컵 사용 필요성에 대한 홍보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가운데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행정으로 으로 진행된 정책이 제대로 안착할 수 있을 지 걱정도 드는 대목이다.

매장 내 일회용컵 사용 금지 제도를 보고 과거 한 차례 실패한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를 떠올리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지난 2002년부터 시행된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는 시간이 갈수록 컵 반환율이 낮아졌다. 이에 따라 법에 근거하지 않은 국민의 편익 침해라는 비판을 받으며 보증금 제도는 결국 2008년에 폐지됐다. 2013년에는 테이크아웃 일회용품에 대한 규제마저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올 봄 '쓰레기 대란'이 사회적 문제가 되면서 그동안 논의만 이어졌던 일회용컵 줄이기 움직임이 다시 불붙었다. '졸속'이라는 지적도 나왔지만 매장 내 일회용컵 사용 금지는 환경을 위한 유통가의 '첫 단추'인 셈이다. 정부가 일회용품을 대폭 감축하겠다고 칼을 빼든 가운데 향후 추진될 대책이 좀 더 신뢰를 받으려면 고민해야 할 대목이 있다. 규제를 내세워 사업자에게 노력을 강요하고 소비자의 인식 개선을 기다리기만 하면 변화는 결코 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미 현장에서는 법망을 피하기 위해 플라스틱 일회용컵 대신 단속 대상이 아닌 종이컵을 사용하는 매장이 있다는 말이 들린다. 환경을 위해 폐기물을 줄인다는 취지에 역행하는 것이다. 정부는 이러한 꼼수가 나올 수밖에 없는 현장을 들여다보고, '보여주기식'이 아닌 실효성 있는 제도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일회용컵 사용 단속에 그치지 않고 일회용컵을 줄일 수 있는 여건을 갖출 수 있도록 돕자는 얘기다. 대형 슈퍼마켓 내 비닐봉투 사용이 올해 전면 금지되는 등 '일회용품과의 전쟁'이 시작된 가운데 시금석이 될 첫 단추를 잘 꿰야 한다. 정부 당국자의 고민이 더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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