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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혁의 풀꽃나무이야기] 안산 대부도의 여름식물들, 기후와 사람 때문에 사라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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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다 보니 여름꽃한테 안부를 물으러 가는 일도 겁이 납니다. 한 자리 발 묶여 움직이지 못하고, 에어컨을 켤 수도 없는 식물들은 어떻게 이 여름을 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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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 대부도의 쌍계사 입구. 여름꽃 안부를 물으러 대부도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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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한 자리에서 살아가야 하는 식물들은 모두 힘없이 처져 있거나 미국선녀벌레 같은 병충해에 시달리는 중입니다. 한 세대에서 일순간에 자리를 이동하기 어려운 그들은 세대를 거듭하는 동안에 그들 나름의 피서지를 찾아갑니다.

후손들을 고위도로 조금씩 북상시켜 살아가게 한다거나, 좀 더 높은 고지대로 피신시켜 살아가게 하는 전략이 그것입니다. 한여름에도 시원한 바람을 내뿜는 풍혈지 주변에 남아 명맥을 이어가는 방법도 있습니다. 피서라기보단 피난에 가깝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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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같은 높은 산도 식물들에게는 좋은 피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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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산은 저지대보다 좀 시원한 편이어서 그나마 좀 낫습니다. 얼마 전에 찾아가 본 지리산에서도 더위를 많이 느끼지 못했습니다. 산은 100m 상승할 때마다 보통 0.5~1℃ 정도씩 낮아지므로 높은 산은 좋은 피서지가 됩니다. 그래서 봄보다 여름에 지리산을 찾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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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서 만난 천마(열매 맺은 상태). 천마는 정말 만나기 힘든 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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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은 다양한 식생을 보이는 곳이라 여러 번 찾아갔어도 갈 때마다 새로 발견하게 되는 식물이 있어 좋습니다. 평상시에 착한 일 많이 한 사람 눈에는 천마도 보입니다. 비록 열매 맺은 상태지만 말입니다.

높은 산에 갈 처지가 못 된다면 바닷가 쪽의 숲도 괜찮을 법합니다. 그래서 오랜만에 경기도 안산시의 구봉도를 찾아갔습니다. 대부도와 붙어 있는 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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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에 있는 구봉도 해안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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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만 실망스러운 꼴을 보고 말았습니다. 그 많던 닭의난초는 온데간데 없었습니다. 그나마 남아 있는 몇 포기는 모가지가 똑똑 분질러져 있었습니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이 오는 것처럼 닭의난초 목을 비틀어도 여름은 온다는 걸 모르고서 한 짓일까요?

2년 전만 해도 렌즈 안에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득시글했던 군락이 그새 완전히 훼손된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2년 전에 그곳에서 만났던 분의 말씀으로는 원래 훨씬 큰 군락이었는데 사람이 많이 찾아오면서 줄어든 게 그 정도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대체 원래는 얼마나 많았다는 것입니까? 그 좋던 군락을 이제 다시 못 보게 된 건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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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손된 닭의난초 군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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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꽃쟁이들은 보고 싶었던 식물을 한가득 발견해서 멋진 사진으로 담아내면 그보다 기분 좋을 때가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일이 참 드물어졌습니다. 잦은 기상 이변 때문에 꽃들의 상태가 좋지 않을 때가 많아 그렇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훼손으로 망가진 현장 앞에 서는 일이 점점 많아져서 그렇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그런 일을 더 겪으면 겪었지 덜 겪지는 않을 것 같아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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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손되기 전의 닭의난초 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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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이런 생각을 합니다. ‘프랑스의 포리 신부가 처음 제주도를 찾았을 때의 식생은 얼마나 좋았을까? 일본의 나카이 박사가 처음 울릉도를 찾았을 때의 식생은 또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식의 상상 말입니다. 지금처럼 내비게이션이나 GPS가 없어 불편하기야 했겠지만 식생 하나는 끝내줬을 겁니다.

물론 식물의 서식 장소는 계속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달라집니다. 천이에 의한 것이건 천재지변에 의한 것이건 모두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문제는 사람의 검은 손입니다. 사람의 손길을 타게 되면 자생지는 삽시간에 망가집니다. ‘지못미’를 외쳐봤자 때는 늦습니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 거대한 높이의 철책을 치고 날카로운 철망을 두르는 일을 해야 하니 너무나도 삭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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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의 거북햄섬. 대부도의 부속섬으로 특이한 식생을 보였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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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경기도 안산시의 거북햄섬도 그러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자생지 정보를 알려주지 않기 위해 가칭을 쓰거나 아예 밝히지도 않았을 텐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특이한 이름의 이곳도 대부도의 부속섬이라 할 수 있는 작은 섬입니다.

썰물이 다 빠져나갔대도 뻘이 질어 신발을 더럽히지 않으면 들어갈 수도 없는 섬이었건만 이제는 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길이 다져진 모습이었습니다. 늘 입구에서부터 반겨주었던 땅나리는 애써 찾아보지 않으면 이제 머리카락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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퉁퉁마디는 조금씩 단단해지는 뻘에 잘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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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섬이지만 특이한 식생을 보였던 이곳은 사유지다 보니 농장을 하는 사람에 의한 훼손도 있어 보이고 자연적인 현상에 의한 훼손도 있어 보였습니다. 바닷물이 해안가를 넘어 들어오면서 이곳의 식물들을 더 이상 자라지 못하게 한 것 같습니다. 염생식물인 퉁퉁마디가 예전보다 많이 보이는 걸로 보아 뻘이 점점 육지처럼 단단해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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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비기나무는 보라색으로 꽃이 피며 흰색 꽃은 매우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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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순비기나무와 함께 흰색으로 피는 순비기나무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0년 후인 지금은 흰색 순비기나무는커녕 순비기나무조차 거의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잔가지 몇 개가 겨우 남아 스리슬쩍 꽃 피우고 있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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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 순비기나무가 자라던 곳(2008년 8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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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과 비슷한 장소지만 현재는 아무것도 없다(2018년 8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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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바닷가에는 해홍나물과 칠면초의 중간쯤 되는 녀석들이 많이 보입니다. 보통 해홍나물은 관목처럼 원줄기 없이 여러 개의 가지가 길게 자라나 뻘에 닿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거북햄섬 쪽의 것은 굵은 원줄기가 꼿꼿이 서서는 가지를 전혀 뻘에 닿지 않은 형태로 자라는 게 칠면초를 닮았습니다. 그래서 해홍나물과 칠면초의 중간쯤 되어 보인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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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홍나물과 칠면초의 중간형으로 보이는 개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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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교잡이 일어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곳에는 방석처럼 바닥에 완전히 엎어져 자라는 방석나물도 간간이 보입니다. 작지만 식생 하나는 참 희한한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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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석처럼 바닥에 엎어져 자라는 방석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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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지인은 이런 말을 합니다. 아무리 찍어 봐도 예전 사진보다 못할 때가 많아서 이제는 야생화 사진 찍는 일이 재미가 없어졌다고. 그래서 이제는 야생화보다 풍경 사진이나 찍어야겠다고.

사실 저도 그렇습니다. 전에는 기술이나 기계가 좋아서가 아니라 군락으로 핀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었기에 아무렇게나 찍어도 좋은 사진이 잘 나왔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경우가 드물어졌습니다. 그래서 자꾸 예전에 찍은 사진을 들춰보게 됩니다.

그 사진들 중에는 그 자생지가 완전히 훼손되어 두 번 다시 찍을 수 없게 된 것들도 많습니다. 영정사진으로만 남은 그 식물들은 언젠가 다시 군락으로 만날 날을 꿈꿔봅니다. 그러니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보지 않은 숲이 아직 많다는 사실이!

이동혁 풀꽃나무칼럼니스트(freebowl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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