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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The Column] 적폐 청산 서슬에 '콘텐츠 정책' 실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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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한류 세계적 인기로 콘텐츠 산업 잠재력 큰데 컨트롤타워 없이 지리멸렬

本體인 국가적 과제 손놓아… 前 정부의 '국정 농단' 대신 現 정부선 '국정 방기' 횡행

조선일보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폭염 속에 경제고 정치고 답답한 소식뿐이다. 유일한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K팝, 한류 드라마로 대표되는 콘텐츠 산업의 성과다. 방탄소년단을 필두로 한류 스타들이 전 세계 팬덤을 형성하고 우리 드라마며 예능 프로그램이 글로벌 TV인 넷플릭스를 통해 세계에 서비스되고 있다.

이달 중순 미국 LA에서 열릴 K팝 콘서트 KCON(케이콘) 티켓 2만5000장이 1시간 만에 매진되고, 세계적 외국어 학습 앱인 듀오링고(Duolingo)의 한국어 과정이 1년 만에 가입자 20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콘텐츠 산업의 세계시장 규모는 2016년 말 현재 약 2조달러(약 2200조원)로 자동차 산업(1조3000억달러), IT 산업(9000억 달러)을 모두 능가한다. 부(富)의 창출을 넘어 콘텐츠 산업은 한 국가의 총체적 위상을 높인다.

개인적으로 캄보디아 수상(水上) 마을 여행 당시 싸이의 말춤을 추어 보이던 현지 소년, MAMA(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즈) 공연이 열린 홍콩의 아시아 월드엑스포 아레나(AWE)를 가득 채운 채 우리말 노래를 따라 부르고 우리말 구호를 연호하던 인파의 감동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처럼 눈부신 한류(韓流) 콘텐츠 산업의 성과는 시장 경쟁을 통해 꽃피었다. 힘든 연습생 기간을 거쳐 재능을 갈고 닦은 스타들, 도전적 콘텐츠 기획·제작·유통 사업자며 투자자들이 그 주역이다. 기회만 있으면 정부는 한류의 성과를 자기들 공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정부는 종종 사업자들 발목을 잡는 존재였다. 우리나라의 골프나 한류가 세계 최고가 된 데는 정부 안에 골프 담당 과(課)나 한류 담당 과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실제로 그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게 콘텐츠 정책이다. 2000년대 이후 '차세대' '융·복합' '스마트' 등 이름만 그럴싸한 주먹구구식 콘텐츠 지원 사업이 이어지며 예산 낭비, 사업 표류 및 중단 사태가 반복되었다. 그 대표 사례가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예산 총 7176억원으로 추진되다 전격 폐기된 문화 창조 융합 벨트 사업이다. 차세대 콘텐츠 육성 사업, 첨단 융·복합 콘텐츠 기술 개발 사업, OSMU 킬러 콘텐츠 사업 등은 또 어떤가. '눈먼 돈 나눠주기'식 사업의 일각에 권력형 리스트가 돌았고, 탐욕스러운 국정 농단 일당이 끼어들었다.

우리 콘텐츠 산업의 성과는 이런 정책 파행 속에 거둔 열매이기에 한층 의미심장하다. 하지만 필요악이라고 할까. 콘텐츠 산업에는 개별 사업자들의 능력을 벗어나는 기술 개발, 인력 양성, 인프라 구축 과제가 즐비하다. 숨 돌릴 새 없는 경쟁 상황에서 성공 신화를 이어가려면 공적 부문의 역할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 이런 정부의 역할은 제대로 수행되고 있는가? 선뜻 뭐라 답하기 어렵다. 역할 자체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콘텐츠 정책은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외에 디지털 콘텐츠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콘텐츠 벤처 육성은 중소벤처기업부 식으로 나뉘어 있다. 부처 간 역할 중복 및 정책 혼선은 불문가지다. 그래서 범부처 정책 조정 기구인 콘텐츠산업진흥위원회를 두었지만 현 정부 들어 작동 중단 상태다. 2011년, 2014년에 이어 2017년에 나와야 했을 콘텐츠 산업 진흥 기본 계획은 감감무소식이다.

이 상황에서 문화체육관광부는 올해 5월 '문화 비전 2030'이라는 단독 정책안을 내놓았다. 그 안에서 콘텐츠 정책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나마 눈에 띄는 '콘텐츠 코리아 랩' 사업은 이전 정부부터 익히 보아온 지역별 특화 콘텐츠 지원 사업이다. 같은 시기,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융합 콘텐츠 리더스 클럽'이란 산·학·연 전문가 협의체를 발족시켰다.

컨트롤타워는 없이 지엽적 부처 경쟁이 불붙는 양상이다. 정작 콘텐츠의 국제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한시가 급한 국가 차원 과제는 방치되고 있다. 프랑스의 국립영상아카이브(INA)처럼, 시시각각 소멸하는 영상 콘텐츠를 한데 모아 디지털 문화 자산화하는 영상 아카이브 작업이 한 사례다.

이 정부 들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게 콘텐츠 정책만은 아닐 것이다. 살기등등한 정치적 적폐 청산의 칼끝이 혹여 자신을 향할까 국정 운영의 본체인 정책 영역이 꽁꽁 얼어붙었다. 전 정부 시절 국정 농단의 자리에 현 정부 들어 국정 방기(放棄)가 들어선 양상이다. 모든 권력의 몰락은 국정 운영의 무능에서 시작되었음을 엄중히 되새겨야 한다.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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