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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속에서 소박한 하루하루… 97세 할머니의 30년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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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이옥남 지음/양철북/1만3000원

아흔일곱 번의 봄여름가을겨울/이옥남 지음/양철북/1만3000원


"콩밭을 매면서 콩잎을 바라보면서 그리도 귀엽게 생각이 든다/그렇게 동그렇게 생긴 콩이 어찌 그리도 고 속에서 동골라한 이파리가 납족하고 또 고 속에서 속잎이 뾰족하게 나오고 디다볼수록 신기하게만 느껴진다/그러니 뽑는 풀도 나한테는 고맙게 생각이 든다/왜냐하면 풀 아니면 내가 뭣을 벗을 삼고 이 햇볕에 나와 앉았겠나….”

강원도 양양 송천마을에 사는 97세 이옥남 할머니가 쓴 일기의 일부다. 이 할머니는 1987년부터 2018년까지 쓴 일기 가운데 151편을 묶어서 ‘아흔일곱 번의 봄여름가을겨울’을 펴냈다. 할머니는 어릴 적 글을 배우지 못했다. 아궁이 앞에 앉아 재 긁어서 ‘가’ 자 써 보고 ‘나’ 자 써 본 게 다인데, 잊지 않고 새겨 두고 있었다. 시집살이 할 적엔 꿈도 못 꾸다가 남편 먼저 보내고 시어머니 보낸 뒤 도라지 캐서 장에 내다 팔고 그 돈으로 공책을 샀다. 글씨 좀 이쁘게 써 볼까 싶어 날마다 글자 연습한다고 쓰기 시작한 일기를 30년 남짓 썼고 지금도 쓰고 있다.

할머니는 아흔일곱 살이 되어도 뭣이든 들여다보고 있으면 신기하다. 그래서 할머니 눈으로 만난 새 소리와 매미 소리, 백합꽃, 곡식마저도 새롭게 다가온다. 도시로 나가 사는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 작은 벌레 한 마리도 예사로 보지 않는 따뜻한 눈길…. 커다란 사건이 있는 게 아닌데도 책을 읽을수록 다음 장이 궁금해진다. 다음날엔 할머니의 어떤 이야기가 있나 하는 마음으로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한 사람의 삶에 푹 빠져든다. 자식들 이야기에서는 뭉클하기도 하고. 그래서 문득 어머니가 생각나 책 읽기를 잠시 멈추게 된다.

한 사람의 지극한 이야기에서 어머니를 만나고, 또 어느 순간에는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모습을 보게 된다.

사람들은 더 크고 더 좋은 것을 바라며 살아가지만 사실 우리 삶은 일하고, 밥 먹고, 자식 생각하며 그렇게 하루하루 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평범하지만 소박한 일상이 주는 힘이다. 아혼일곱 할머니가 짓는 맑은 하루하루를 들여다보며, 힘든 일상에서 잠시나마 다정한 위로를 받을 수 있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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