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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하라리 "나는 소년을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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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웅 기자의 어프로치]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 펴낸 유발 하라리 이스라엘 히브리大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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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의 박사학위 논문은 중세 전쟁사였다. 하지만 지금 그의 관심은 역사를 훌쩍 넘어선다. 역사와 생물학의 관계는 무엇인가. 역사에 정의는 과연 존재하는가. 사람들은 과연 점점 행복해지고 있는가. 이를 질문한 ‘사피엔스’와 ‘호모데우스’는 전 세계에서 45개 언어로 번역됐고 1200만 부가 팔려나갔다. /사진작가 Olivier Middendo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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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말이 먼저 보였다. 분홍과 주황, 노랑과 남색이 직소 퍼즐처럼 맞물린. 유발 하라리(42) 히브리대 교수를 싱가포르의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50층의 숙소에서 만났다.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 단 두 권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스타 학자. 그와의 만남은 이날이 세 번째다. 앞의 두 인터뷰가 각 책의 번역·출간을 계기로 만난 자리였다면, 이날은 특별히 구애받을 전제가 없는 만남. 그렇다면 조금 더 '인간 하라리'에 집중해도 좋지 않을까. 무엇이 중세 전쟁사 전공의 이스라엘 역사학자를 최첨단 유전공학과 인공지능(AI)을 아우르는 21세기의 문명비평가로 이끌었을까.

2016년 기자와 첫 인터뷰에서 그는 구두를 신고 있었고, 지난해 이스라엘 자택에서 가진 두 번째 인터뷰에서는 맨발이었다. 지금은 핑크가 또렷한 양말이 시선을 붙든다. 최근 그는 자신이 출연한 동영상을 유튜브에 공개했다. 제목은 '게이로 산다는 것'(On Being Gay). 사실상 공개적인 커밍아웃이었다. 적지 않은 이들에게 불편할지 모르는 이 고백의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하나 더. 20년 가까이 하루도 빠짐없이 실천해왔다는 하라리의 명상은 지금의 하라리를 만드는 데 어떻게 기여했을까.

―커밍아웃한 이유가 있다면.

"(웃으며) 감춘 적도 없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에도 내 성적 정체성을 짐작할 수 있는 문장들이 몇 있다. 불편하신 분들도 있겠지만, 자신이 비정상이 아닐까 걱정하며 힘들어하는 성소수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엔터테인먼트뿐만 아니라 아카데미 영역에도 게이 피플이 있다는 사실을. 동성애자도 성공적인 과학자가 될 수 있고, 인정받는 작가가 될 수 있다는 걸."

―이스라엘에 대한 이율배반적 농담을 들은 적이 있다. 수도 텔아비브는 속(俗)의 도시, 예루살렘은 성(聖)의 도시라고.

"텔아비브에는 자신을 드러낸 성소수자가 넘쳐난다. 하지만 예루살렘은 반대다. 이스라엘에서는 게이, 레즈비언끼리의 결혼이 합법이다. 하지만 차별이 존재한다. (유대교 율법학자인) 랍비가 좋아하지 않지. 법적 차별은 없지만, 실질적 차별은 존재한다. 한 예로, 유대교 남성과 기독교 여성의 결혼이 불법은 아니지만, 랍비가 허락하지 않는다. 게이 결혼도 마찬가지. 그래서 우리 부부는 캐나다에서 결혼했다."

하라리는 옆에 있던 자신의 배우자 이지크 야하브(Yahav)를 남편(husband)이라고 불렀다. 지난해 그의 자택 인터뷰 때도 야하브는 함께 있었고, 싱가포르개발은행(DBS)의 특별 초청 강연을 위해 찾은 이번 동남아시아 방문에도 동행했다. 구면(舊面)의 남편이 웃으며 인사한다.

지금은 웃지만, 유년 시절에는 아니었다. 하라리는 늘 화가 나 있고, 안절부절못하며, 상처 많은 아이였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엄존했던 차별의 시선. 그 고통은 오늘의 하라리를 만드는 데 기여했을까.

―게이여서 더 훌륭한 과학자가 됐다고 생각하나.

"매우 그렇다. 나는 어렸을 때 소년은 소녀를, 소녀는 소년을 좋아해야 한다고 배웠다. 하지만 나는 소녀가 아니라 소년이 좋았다. 매우 힘들었다. 하지만 학문의 길을 걸어가면서, 그때 배운 가르침은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이야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인간이 만들어낸?

"소년이 소년을 좋아하면 구름 위의 위대한 신께서 화를 낸다고 사제와 랍비는 가르쳤다. 하지만 실제로는 신이 화를 내는 게 아니라, 사제와 랍비가 화를 내는 것이었다. 과학은 사실과 허구를 구분하는 방법론이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믿는다고 해도, 그 믿음이 실제 증거와 충돌하면 과학자는 사실을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동성애는 자연의 순리에 어긋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미안하지만, 자연법칙은 교통법칙과 다르다. 가령 시속 100㎞ 규정의 고속도로에서 120㎞로 달리면 교통경찰은 티켓을 끊는다. 인간이 만든 교통 규칙이다. 자연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빛보다 빨리 달릴 수 없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그보다 빨리 달리면 은하계의 교통경찰이 당신에게 티켓을 끊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실제로 특정 조건에서는 빛의 두 배 속도로 달리는 존재도 가능하다. 우리는 단지 그때까지 자연법칙을 제대로 몰랐을 뿐이다."

―자연과학이 동성애에 대해 새로 알아낸 사실이 있나.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에게도 동성애가 있다. 침팬지가 그 한 예다. 생명체의 수많은 기관에는 각각의 기능이 있다. 최초에는 그 기능만이 목적이었다. 파충류에게 털의 존재 이유는 보온이었다. 하지만 조류에 이르러 털은 비행에 활용하도록 적응하고 진화했다. 손가락은 처음에 영장류가 나무를 오르기 위해 존재했다. 지금 인간은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친다. 영장류의 섹스는 처음에 번식이 목적이었지만, 지금은 우정과 친밀감 구축, 긴장 완화를 위해서도 섹스한다. 인간의 섹스 역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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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과 주황, 노랑과 하늘색 등이 체크무늬를 이루고 있는 하라리의 양말. /싱가포르=어수웅 기자

―이 고백은 당신의 이성애자 독자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을 텐데.

“자연스럽다, 자연스럽지 않다라는 표현이 있다. 이를 생물학으로 분류해야지, 그 기준을 종교나 신학에서 가져오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신은 인간의 신체 기관이 각각 다 목적이 있다고 말한다. 다르게 사용하면 비자연스럽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생물학은 말해준다. 실제로는 자연선택, 그리고 적응과 진화가 있을 뿐이다. 나는 과학자다. 과학은 내가 내 성적 정체성을 받아들이도록 도왔고, 내 성적 정체성은 나를 과학적 진실과 허구를 더 엄격히 구분하는 과학자로 이끌었다.”

그를 엄격한 과학자로 이끈 도구가 하나 더 있다. 명상이다. 하라리는 여러 자리에서 자신이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를 쓸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로 명상을 고백한 바 있다. 구체적으로는 위파사나 명상. ‘자신만의 질문’을 찾기 위한 집중력 강화의 도구이기도 했다. 초기 불교 경전어인 팔리어를 음역한 위파사나는 꿰뚫어봄, 통찰 정도의 의미로 옮길 수 있다. 그는 새벽에 한 시간, 자기 전에 한 시간, 하루에 두 시간씩 매일 명상하고, 1년에 한 번은 아예 모든 것을 끊고 한두 달을 캠프에 들어가 피정(避靜) 수련을 한다고 했다. 24세부터 실천했던 수련, 지난겨울에는 인도에 있는 명상 캠프에서 두 달을 보냈다고 한다.

―20년 가까이, 정말 하루도 쉬지 않았나.

“장거리 여행으로 비행기에서 밤을 보내는 경우를 제외하면, 예외는 없다. 이곳 싱가포르에서도, 오늘도 아침 명상을 마쳤다. 시간은 내면 된다. 아무리 바빠도 밥 먹는 시간을 내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내게는 명상이 그렇다.”

―명상을 시작한 계기는.

“우선 전제가 있다. 내가 명상을 한다고 하면, 많은 사람은 종교적인 명상을 먼저 떠올린다. 특정 종교와는 전혀 관계없다. 나는 개별 종교의 신을 믿지 않는다.”

―첨단 정보기술과 생명공학에 익숙한 학자가 명상이라니.

“10대 시절, 나는 말썽쟁이였고, 늘 안절부절못하는 아이였다. 세계는 내게 이해할 수 없는 일투성이였다. 삶의 의미가 궁금했다. 주변에서는 신앙을 가지고, 신화를 읽으라고 했다. 구름 위의 신, 이스라엘 건국 신화, 낭만적 사랑을 다룬 소설, 소비하면 행복해질 거라는 자본주의의 신화를 모두 찾아 읽었다. 나는 이 모든 것이 사람들이 만들어낸 픽션이라는 걸 알 정도로는 똑똑했지만, 그다음 인생의 의미가 뭐냐는 질문에는 여전히 답을 알 수 없었다.”

―당신은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역사를 전공했다. 역사가 해답을 주지는 않았나.

“그럴 거라 기대하고 대학에 갔지만, 곧 실망했다. 학문의 방법론은 인간이 만들어낸 가상의 이야기를 구분하게 해 주는 강력한 도구를 내게 줬지만, 역시 삶의 의미에 대한 대답은 주지 않았다. 소위 빅퀘스천(Big question)에 대한 해답은 거기 없었다. 요즘의 대학은 너무나 작은 문제에 초점을 맞추도록 강요한다. 옥스퍼드에서 박사 학위를 받을 때 내 논문은 중세 병사의 전투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전공에 전념하지 못했고, 철학을 더 많이 읽었다. 철학 논쟁을 즐겼다. 이 논쟁은 내게 지적인 즐거움을 줬지만 그뿐, 진정한 통찰력을 주지는 못했다. 좌절의 연속이었고, 그때 친구 한 명이 명상을 제안했다. 24세 때였다.”

―처음부터 빠져들었나.

“전혀. 처음에는 뉴에이지 시대의 허튼소리라고 무시했다. 또 다른 판타지일 뿐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이리저리 피했다. 하지만 일년 동안 그 친구는 나를 끈질기게 끌어들였고, 2000년 봄 처음으로 10일짜리 피정을 갔다.”

―어떤 경험이었길래.

“내가 명상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열흘이었다. 나는 명상이 어떤 신비한 수련이라 생각했다. 아니었다. 명상은 완전히 실제적이고 실용적인 것이었다. 양반다리 하고 앉아서 눈을 감고 오직 자신이 쉬는 숨에만 집중하라고 배운다. 콧구멍으로 나가고 들어오는 숨에만 집중하라.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하지 말라. 그 순간을 관찰하라. 그런데 8초를 넘기기가 힘들었다. 금방 딴생각이 났다. 경악이었다. 나는 단 10초도 집중 못 하는 존재구나. 나라는 존재는 이것밖에 안 되는구나. 내가 내 삶의 주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단지 문지기였을 뿐이다. 눈이 확 떠지는 체험이었다.”

―숨 들이마시고 내쉬는 데 집중할 수 있다고 인생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나.

“사람들은 궁금해한다. 내가 죽으면 나는 사라지나? 나는 천국에 가나? 나는 환생하나? 이 질문들은 전제가 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는 ‘나’의 존재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신체는 매 순간 변하고, 뇌도 그렇다. 마음 역시 마찬가지다. 명상 수련을 통해 내가 깨달은 건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것(諸法無我). 숨 집중이 끝나면 다음 단계는 감각에 대한 집중이다. 환각 체험이 아니다. 뜨거운가 차가운가 아픈가 등에 관한 일상의 감각. 우리 감각과 마음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불쾌한 감각을 경험하면 마음도 불쾌해지고, 쾌감을 경험하면 마음은 그 감각을 더 원한다. 내가 지금까지 1만 번 이상 분노라는 감정을 느꼈지만, 그때마다 나를 화나게 한 대상에게만 화를 냈다. 내 안의 어떤 감각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는지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분노를 없애려면, 나를 바꿔야 했다. 죽은 뒤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하다고? 진정한 삶의 수수께끼는 죽은 뒤가 아니라, 죽기 전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다. 죽음을 이해하고 싶다면, 삶을, 내 감각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평범한 사람도 당신처럼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같은 사람도 매 순간 달라지는데, 모든 사람이 어찌 같겠나. 깨달음의 방법도 사람마다 모두 다를 것이다. 하지만 위파사나 명상이 내게는 고마운 은총이었다. 다만 분명한 게 하나 있다. 이런 사람이 되고 싶어서, 이런 경험을 하고 싶어서, 명상 수련을 하는 게 아니다. 명상은 어떤 목적도 없으며,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목적이다. 실재(reality)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수련이 명상이다.”

하라리의 개인 매니저를 겸하고 있는 배우자 야하브가 슬며시 웃으며 다가온다. 다음 일정 시간이 됐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되새긴다. 실재가 무엇인지를 먼저 파악한다는 것. 하라리의 오늘날 명성은 그가 자신만의 관점과 집중력으로 그려낸 인류 역사의 ‘빅 픽처’에 많은 동료 사피엔스들이 설득됐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비결은 과학적 사실과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의 냉정한 구분. 그 분류를 바탕으로 하라리는 밑그림을 그렸다. 인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갈 것인가. 하찮은 변방의 유인원은 어떻게 지구 행성의 지배자가 되었는가.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는 지금까지 45개 언어로 번역됐다고 했다. 45개 나라가 아니라 45개의 언어. 아프리카 몇몇 나라를 제외하면, 사실상 거의 모든 세계다.

우리는 하찮은 정보들이 범람하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 집중력은 강탈당하기 일쑤. 분명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검색을 시작했는데, 몇 개의 클릭을 거쳐 엉뚱한 연예인 사생활 뉴스에서 키득거리는 자신을 뒤늦게 발견하고는 혼자 민망해한다.

모두가 하라리의 ‘빅 픽처’를 그려야 할 이유도,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다. 70억 인구에게는 70억 고민과 의제가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질문을 찾고, 그 질문에 집중할 수 있는가 여부. 싱가포르의 여름은 생각과 달리 서울보다 덥지 않았다. 서울이 39.6도로 역대 최고를 기록한 8월 1일, 이날 싱가포르 최고 기온은 28도였다. 바뀌지 않는 건 아무것도 없으며, 문제는 내 밖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어수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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