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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이름도 원료도 맛도 속도 다 편하다, 막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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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박준의 酒방] 춘천 샘밭막국수

조선일보
막국수는 편하다. 편함은 먼저 이름에서 온다. 지금처럼 제분기로 면을 뽑지 않을 때 막국수는 메밀의 겉껍질만 벗겨 맷돌 같은 것에 '막' 갈아 만들어 먹는 음식이었다. 이때의 '막'은 함부로 아무렇게나의 의미라기보다는 비교적 쉽고 자유롭게라는 의미에 더 가까울 것이다.

편함은 막국수의 원료인 메밀에서도 온다. 메밀은 밀과 달리 글루텐이라는 성분이 없다. 이 때문에 밀가루처럼 반죽을 치고 늘어지게 하는 방식으로 면을 뽑지 못한다. 그래서 메밀은 반죽을 얇고 넓게 펴서 칼로 자르거나 틀에 넣고 압력을 가하는 방식으로 국수를 뽑아낸다. 글루텐이 없으니 장력(tension) 또한 없다. 순도 높은 메밀면에서 쫄깃하거나 탱탱함을 찾을 수 없는 것도 이 까닭이다. 대신 메밀에는 속을 편하게 만드는 효소인 아밀라아제와 말타아제를 담고 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문학에서 'tension'은 표현된 문자와 암시된 의미 사이에서 생기는 긴장감을 말한다. 음악에서는 연주 중 긴장감이 고조되는 영역을 말하고, 살사 같은 춤에서는 파트너끼리 주고받는 팽팽한 몸짓을 뜻하기도 한다. 그리고 현실에서 'tension'은 긴장감이나 불안을 뜻한다.

몇 해 전, 긴장과 불안의 연속인 삶이 유독 버겁게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좋아하는 선배를 만났는데 대뜸 막국수 이야기부터 꺼냈다. 요즘 출강하는 춘천의 학교 근처에 막국수집이 있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그곳을 찾아 막국수를 먹는 일이 자신에게는 가장 큰 기쁨이라고 하면서. 마치 갓 면을 뽑아낸 국수 한 그릇을 내어놓을 듯, 선배는 그 막국수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러고는 대화를 마치고 유아용 카시트가 세 개나 실려 있는 오래된 승합차를 끌고 유유히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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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 나는 그 선배가 입이 닳도록 칭찬했던 샘밭막국수를 찾았다. 깨와 김과 참기름, 그리고 자극적이지 않은 양념장이 올려진 국수를 막 비벼서 먹다가, 절반쯤 남은 것을 찬 육수를 부어 막 훌훌 마시듯 했다. 그 집을 나오는데 막 웃음이 났다. 웃겨서 웃는 것이 아니라 기뻐서 웃는 웃음이었다.

"국수가닥 건져 올린다 문득 진해만 저쪽 하늘 바라본다 철없는 구름들, 우르르 몰려다니며 헐렁한 무명바지 벗었다 입고, 입었다 벗는다… 반짝, 하고 떨어지는 햇살들, 낯빛 또한 하얗게 곱다 벌써 메밀국수 한 그릇씩 했나보다"(이은봉, '진해만이 보이는 국수집에서')

춘천 샘밭막국수(033-242-1712)

막국수(7500원), 편육(1만8000원)





[박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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