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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늙으면 부부 싸움이 '보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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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의 100세 일기]

티격태격 싸우면서도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씨

옛날같이 부부싸움 하기 위해 꿈에라도 아내가 찾아왔으면…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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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 아는 가정이다. 80대를 넘긴 노부부가 살고, 다섯 자녀들은 모두 독립된 가정을 꾸미고 있다. 노모가 팔순 생신이 되었다. 생신 축하는 멀지 않은 온천장호텔에서 갖기로 했다. 자녀들과 성년이 된 손주들이 모두 큰집에 모였다.

큰딸이 어머니에게 합의된 사정을 얘기했더니 "나는 모르는 체할 테니 아버지한테 먼저 상의하라"고 했다. 큰딸이 큰오빠와 같이 80 중반이 되는 부친에게 어머니 생신 축하 잔치 얘기를 했다. 부친은 "너희들 어머니 얘긴데 나와 무슨 상관이 있냐? 마음대로 하라"는 것이다. "아버지도 가셔서 축하해 주셔야지요!" 큰딸의 얘기를 들은 아버지는 "싫다. 난 안 간다. 집에서도 보기 싫은 것을 겨우 참고 있는데 엄마 생일이라고 내가 따라가?" 하는 것이다. 아들이 "지난번 내가 왔을 때도 싸우시더니 또 싸우셨어요?"라며 웃었다. "너희들은 우리가 좋아서 싸우는 줄 아냐? 10년 전만 같아도 헤어졌을지 모른다"면서 '아들은 내 편'이라는 듯 마음먹고 화를 내신다.

딸이 "아버지, 싸울 세월은 많으니까 어머니 생일잔치에는 억지로라도 참으세요. 어머니가 섭섭하지 않으시겠어요?"라고 달래보았다. 아버지는 "그만하자. 나는 절대로 온천장까지 따라가지 않는다. 그러니까 너희들끼리 다녀오너라" 하면서 딱 잡아떼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딸이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절대 안 가신다네요. 벌써 방까지 다 예약해 두었는데"라고 걱정했다. 어머니는 "너희들은 그만해라. 내가 처리할 테니까"라면서 딸에게 따라와 보라는 눈짓을 했다. 아버지가 있는 방 창문 앞에서 "나도 안 오실 줄 알았습니다. 우리끼리 가서 즐겁게 놀다가 올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 대신 밑반찬은 준비해서 냉장고에 넣어 두었으니까 고생스럽더라도 돌아올 때까지 방 안에 그대로 계세요"라고 선언해 버렸다. 딸들은 어머니도 몹시 화가 난 것 같다고 걱정했다.

다음 날 아침이다. 다섯 자녀들 중에서도 아버지가 가장 사랑하는 큰딸이 방문을 열면서 "아버지, 그러면 우리끼리 다녀오겠습니다. 올 때까지 힘드셔도 참으세요"라면서 들여다보았다. 아버지는 양복을 차려입고 넥타이까지 매고 앉아 있었다. 아버지는 "차가 몇 대가 가냐?"고 물었다. 두 대라고 했더니 "그러면 나도 가련다. 엄마하고 같은 차를 타기 싫어서 그랬다"며 밖으로 나왔다.

딸이 어머니에게 "아버지가 딴 차로라면 가신대"라고 했더니 어머니는 "내 그럴 줄 알았다. 아버지는 내가 잘못했다고 빌 줄 알았겠지? 혼자 간다고 딱 잘라 말했더니 따라오는 걸 가지고. 아버지한테 가서 내가 안 와도 된다고 하더라고 그래라"면서 좋아하더라는 얘기였다.

나는 큰따님으로부터 그 얘기를 듣고 혼자 생각했다. 오늘 밤에는 내 아내가 옛날같이 부부 싸움을 하기 위해 꿈에라도 찾아와 주었으면 좋겠다고.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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