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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명의 인생 영화]“누군가 버린 걸 주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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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어느 가족

동아일보

심재명 영화사 명필름 대표


동아일보
당분간 가족영화는 만들지 않겠다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언제 그랬냐는 듯 ‘어느 가족’으로 돌아왔다. 사회가 인정하지 않는 가족의 이야기이다. ‘아무도 모른다’가 도쿄에서 실제 벌어진 충격적 아동방치 사건에서 출발했다면 ‘어느 가족’ 또한 부모의 사망신고를 하지 않고 연금을 부정하게 받아 생활하던 한 가족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 일용 노동자로, 세탁공장 노동자로, 유사 성행위 업소 노동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연금에 의지해 생활하는 할머니의 집에 얹혀살며 버려진 아이들을 데려와 먹이고 재우고 유일한 기술인 좀도둑질도 가르친다.

가르치는 건 범죄지만, 학대당하고 방치된 아이들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사랑한다. “누군가 버린 걸 주운 거”라며. 이 영화는 그의 ‘아무도 모른다’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또는 ‘세 번째 살인’의 이야기를 타고 넘어온 가족영화의 총합체다.

“제 영화는 전반적으로 상실을 그린다는 말을 듣지만, 저 자신은 ‘남겨진 사람들’을 그린다고 생각합니다”라는 그의 말처럼 이 영화의 주인공들도 버려지고 남겨진 사람들이며 이들이 어떻게 사회에서 결코 인정하지 않는 ‘가족’의 형태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생의 의지를 버리지 않느냐에 관한 이야기이다. 국수를 먹고, 고로케(크로켓)를 먹고, 오줌 싼 이불도 말리고, 바다를 보러 가고, 도쿄의 외지고 낡은 집에서나마 불꽃놀이를 구경하던 이들은 우연찮은 사고로 함께 살고자 했으나, 그만 흩어진다.

일상과 내면을 파고드는 듯한 영화는 후반에 이르러 무섭도록 서늘하게 사회와 마주한다. 어린 쇼타(조 가이리)는 “아빠는 이제 아저씨로 돌아갈게”라고 말하며 이별하는 오사무(릴리 프랭키)를 뒤로하며 처음으로 “아빠”라고 낮게 말한다. “사랑하니까 때린다는 건 거짓말이야. 진짜 좋아한다면, 사랑한다면 이렇게, 꼬옥…”이라며 안아주던 노부요(안도 사쿠라)와 헤어져 학대하는 부모 집으로 돌아온 유리(사사키 미유)는 영화의 처음 장면처럼 추운 겨울, 집 앞 좁은 베란다로 세상을 바라본다.

마르고 작은 유리의 얼굴에서 화면을 닫는 이 영화의 엔딩에서 나는 어떤 희망도 발견하지 못했다. 노부요의 가르침대로 ‘죄송하다’고 사과하지 않는 걸 배운 유리는 나중에 노부요 같은 어른이 될까? 그것은 희망일까? 냉정하고 뒤틀리고 비겁한 사회가 아이 앞에 펼쳐져 있을 뿐이다. 비범한 감독의 서늘한 전망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수작이다.

참고로 일본에서 6월 8일 개봉한 뒤 내내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던 ‘어느 가족’은 한 달이 지난 7월 8일에 280만 관객을 동원했다고 한다. 같은 시기, 대한민국은 어떤 영화가 개봉 일주일 만에 같은 숫자를 기록했다. 한 달과 일주일…. 인구 1억3000만 명의 일본보다 한 해 극장을 찾는 관객 수가 더 많은 우리이긴 하지만 보름이 채 되지 않아 1000만 관객에 육박하는 영화가 탄생하는 무서운 속도전은 흥행될 만한 영화에 상영관을 몰아주는 ‘스크린 독점’의 증거다. 보름이 아니라 서너 달 만에 1000만 영화가 탄생하고 그사이에 다른 영화도 공생하는 시장을 꿈꾸는 것이 뭐 그리 잘못인가? ‘어느 가족’은 2800여 개 상영관이 있는 대한민국에서 100개 스크린의 규모로 8월 10일 현재 누적 관객 11만 명을 넘어섰다.
심재명 영화사 명필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