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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이명건]‘드루킹 특검’이 당당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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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이명건 사회부장

“수사 열심히 할 필요 없다.”

드루킹과 김경수 경남도지사를 수사 중인 허익범 특별검사팀 내부에서 최근 논란이 된 발언이다. 수사 실무 관계자가 일부 수사팀원에게 했다고 한다. 동의하지 않는 팀원들은 내심 반발하고 있다.

특검팀은 검찰 출신 변호사인 특검과 특검보 2명, 경찰 출신 변호사 특검보 1명, 그리고 검찰과 경찰에서 파견된 검사, 형사, 수사관 등 구성원이 다양하다. 수사 준비 기간을 포함해 최장 110일 동안만 유지될 임시 조직이다. ‘대충 수사’ 같은 민감한 발언이 밖으로 새나오기 쉽다.

왜 이런 발언을 했을까. 수사 결과를 내다보고 건질 게 없다는 생각에 ‘괜히 힘 빼지 말자’고 했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수사든 예단은 금물이다. 특히 김 지사 같은 대통령의 핵심 측근 등 권력층 수사는 더 그렇다. 그 중심도 주변도 권력의 향배에 따라 변화무쌍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검찰은 이명박(MB) 전 대통령 수사 초반 ‘별게 나올 것 같지 않다’고 판단했다. MB의 수족과 같았던 김백준 전 대통령총무기획관과 김희중 전 대통령제1부속실장이 MB의 정반대 편에서 술술 불지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정말 의외”라는 게 검찰 반응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집권 1년이 갓 지난 권력이 펄펄 살아있다. 따라서 ‘건질 게 없을 것’이라는 예단에 쉽게 빠질 수 있다. 게다가 거기엔 권력에 흠집을 냈다가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는 우려와 수사 성과를 안 내서 보답을 받으려는 의도가 깔려 있을지 모른다. 또 수사 의지가 강한 허 특검과 특검보 3명을 수사 실무진이 제대로 못 받쳐준다는 특검팀 내부 분석도 있다.

김 지사는 이런 상황을 정확하게 읽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검팀에 2차례 소환돼 의기양양하게 출석한 모습은 그 발로일 것이다. 힘이 들어간 눈, 미소를 머금은 입, 여유 있게 흔드는 팔. ‘누가 감히 나를 함부로 하겠느냐’는 자세다.

김 지사는 지난해 대선 전 드루킹에게 보안 메신저 프로그램 ‘시그널’을 통해 ‘재벌개혁 공약’ 자문을 요청했다. 또 ‘개성공단 2000만 평 개발 정책 제안’을 드루킹으로부터 받았다. 김 지사는 “여러 분야의 다양한 의견 수렴은 정치인으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해명했다. 과연 그뿐이었나.

드루킹은 올 2월 ‘시그널’로 김 지사에게 “1년 4개월간 저희를 부려먹고 보상 없이 버리면 뒷감당 안 될 겁니다”라고 했다. 공약 자문, 정책 제안을 받은 게 죄는 아니겠지만 드루킹은 그렇게 가까웠던 김 지사와 댓글 여론 조작을 공모했다고 주장한다. 김 지사는 물론 전면 부인하고 있다. 두 사람은 3시간 45분의 대질조사에서도 평행선을 달렸다.

그 판가름은 법정에서 날 것이다. 특검팀은 드루킹과 측근들의 진술에 무게를 두고 있다. 댓글 공모 등의 혐의로 김 지사를 기소할 방침이다.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특검팀 필패가 뻔하다. ‘대충 수사’ 논란 속에서 혐의 유무와 처벌 수위 판단, 공소 유지가 제대로 될까. 파견 검사 등 팀 전체의 수사 의지를 끌어올리는 게 급선무다. 그리고 2주 남은 1차 수사에 2차 30일을 더해서 9월 24일까지 수사를 다지고 또 다져야 한다.

그게 권력층 수사 실패의 참담한 역사를 답습하지 않을 필요조건이다. 검찰은 2014년 말 이른바 ‘정윤회 문건’ 수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의 관계를 밝혀내지 못했다. 결국 2년 뒤 국정농단 사건이 터져 검찰은 ‘권력의 주구(走狗)’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특검팀은 그렇게 탈바꿈해야 설령 김 지사를 무혐의 처분한다고 해도 역사 앞에 당당할 수 있다.

이명건 사회부장 gun4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