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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공작’ 속 대북 파트너 리명운, 실존 인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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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990년대 안기부 간첩 ‘흑금성’ 실화 다룬 영화 ‘공작’의 ‘리 처장’

군 외부 출신 경제 전문가로 북 외화벌이 담당

이효리-조명애 ‘애니콜 광고’ 원안 격인 ‘남북합작광고사업’ 추진

2007년 안희정 전 지사와 접촉하며 다시 언론에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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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공작>은 김영삼 정권 기간 국가안전기획부(이하 안기부, 현 국가정보원) 소속이었던 북파 간첩 ‘흑금성’의 실제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영화는 암호명 ‘흑금성’으로 활동한 박채서씨 본인이 직접 쓴 회고록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흑금성은 안기부가 광고 회사인 ㈜아자커뮤니케이션에 전무로 위장취업시킨 박채서씨의 암호명으로, 그를 통해 대북사업과 관련한 공작을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97년 2월 ㈜아자커뮤니케이션은 베이징에서 금강산총회사와 평양, 백두산, 금강산, 묘향산 등에서 광고촬영 계약을 5년 독점으로 체결했다. 영화 <공작>에는 박씨가 직접 겪은 이야기만큼이나 궁금증을 자아내는 인물이 있다. 극중 흑금성의 대북사업 협력 파트너인 북한 대외경제위원회 처장, 리명운이다.

리철·리철운·리호남...여러 이름으로 활동한 대외사업 실세

배우 이성민이 연기한 리명운 역시 실제 모델이 된 인물이 있다. 1953년생에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출신으로, 본명은 리철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국내 언론에는 시기에 따라 이 인물의 이름이 ‘리철운’으로 보도된 적도 있고, ‘리호남’으로 나오기도 했다. 다만, 박씨와 남북합작 광고사업을 추진할 당시 사용한 이름은 리철, 직책은 북한 무역성 참사였다.

박씨가 베이징으로 건너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해는 1993년이다. 박씨가 평양에 들어가 김정일 당시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났다고 주장하는 해는 1996년이다. 같은 해에 북한에서 외화벌이 목적의 대외사업 관련 기관인 광명성경제연합회가 출범했다. 이때 리철에게 광명성경제연합회 중국 주재 대표부 소속이라는 직함이 추가됐다. 광명성은 김정일의 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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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철은 신한국당의 북풍 공작 요구를 거절하는 데 개입했을까?

영화는 청와대가 북핵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을 자극해 김대중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대선 후보의 지지율을 떨어뜨리려 한 이른바 ‘총풍 사건’을 중요하게 다룬다. 영화 속 리명운은 자신이 추진한 남북합작 광고 사업에 찬물을 끼얹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흑금성과 뜻을 같이 한다.

하지만 실제로 북쪽이 신한국당 인사들의 판문점 총격 제안을 거절하는 과정에서 리철의 입장이 어땠는지, 그의 의지가 개입되었는지 여부는 전해진 바 없다. 1998년 10월27일 검찰이 발표한 수사 결과에는 양쪽 사이에 오간 간단한 대화 내용만이 공개됐을 뿐이다. 리철은 이때부터 국내에 ‘리철운’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도착 첫날부터 북한쪽과 접촉했다. 상대는 리철운씨와 김영수씨. 장씨는 이들에게 한씨를 “이회창 후보를 돕고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면서 “대선에 관한 특별한 사업을 가지고 왔다”고 운을 뗐다.

리씨가 “대선에서 누가 이길 것 같으냐”고 묻자, 한씨는 “이 후보 지지율이 불안정해 북한이 조금만 도와주면 당선될 수 있다”고 말했다. 리씨가 또 “공화국에서도 이 후보가 되는 걸 원하는데 무엇을 도와달라는 것이냐”고 되묻자 한씨는 김대중 후보의 친북 자료를 요구했다.

..... 중략 .....

한씨의 요구는 구체적이었다. “이 후보의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 텔레비전 화면이 잘 잡히는 판문점에서 무력시위를 해달라. 시기는 14일이나 15일. 비료와 영농자재를 지원하겠다.” 이에 박씨는 “내가 결정할 사항이 아니니 평양에 전문을 보내 출국하기 전까지 답변을 주겠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대북사업만을 논의한 3차 접촉이 끝나고, 마지막 4차 접촉이 이뤄진 12일 박씨는 “내가 답변할 수 있는 것은 현재 답을 줄 수가 없다는 것”이라고 확실한 ‘거부’의 뜻을 밝혔다. 공작이 실패로 끝났다고 결론지은 한씨와 장씨는 12~14일 각각 귀국길에 올랐다.

-1998년 10월 27일 <한겨레> 기사 중에서



이 밖에 리씨가 박채서씨에게 이들의 신원확인을 요청했다는 박씨의 전언이 보도됐을 뿐이다.

리철은 정말 흑금성의 평양 탈출을 도왔나?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드러나는 영화 속 흑금성과 리명운 처장의 동지적 관계는 낭만적으로까지 느껴진다. 하지만 영화에서와 달리, 리씨는 실제로 박씨의 목숨을 구하지 않았다. <시사저널> 재직 당시 흑금성 사건을 가장 오랜 기간 취재한 기자이면서 박씨가 작성한 회고록을 책으로 정리하기도 한 김당 기자는, 1998년 당시 기사에서 박씨가 “아자커뮤니케이션 광고팀과 함께 (흑금성의 정체 폭로 보도가 나오고 약 열흘 후인) 3월 말쯤에 방북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고 보도했다. 박씨는 영화와 달리 정체가 폭로된 시점에 평양에 있지 않았고, 따라서 리씨의 극적인 도움으로 탈출한 것 역시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다.

리씨는 2007년 ‘리호남’이라는 이름으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함께 다시 국내 언론에 등장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던 안 전 지사가 2006년 10월, 베이징에서 리호남 참사와 만났다는 보도가 나온 것이다. 당시 그의 직책은 민족경제협력연합회 참사였다. 당시 안 전 지사는 언론에 “북쪽의 태도가 기대만큼 전향적이지 않아 평양에서의 2차 만남은 거절했다”라고 말했다.

2007년 안 전 지사와 관련된 보도들에는 리씨가 1997년 흑금성의 정체가 폭로된 이후 어떻게 됐는지에 대한 전언이 일부 나온다. ‘북풍 사건이 드러나면서 당국의 조사를 받고 수용소로 갈 뻔 했으나 검찰 소장인 장인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남았다’는 내용이다. 영화는 외화벌이가 중요했던 당시 북한 정권에서 그를 대외사업 적임자로 판단해 숙청하지 않았을 거라는 설을 차용했다.

리씨는 1년 후인 2007년 10월3일 평양에서 열린 남북경제인 간담회에 내각 참사 자격으로 참석했다.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구본무 LG 회장, 최태원 SK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이구택 포스코 회장,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이 남쪽 대기업 대표로 참가한 행사였다. 2008년에 이재오 당시 특임장관과 임태희 당시 고용노동부 장관이 리호남을 만났다는 설이 제기됐으나 두 전 장관 모두 이를 부인했다. 이후 리씨가 공작원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설도 제기됐지만, 확인된 바는 없다. 두 정권에 걸쳐 공식적인 남북교류가 뜸해지면서 리씨의 이름이 다시 공식 석상에 등장하지는 않았다.

박수진 기자 sujean.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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