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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연합이매진] 영월 인도미술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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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인도, 새로운 인도

(영월=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 인도를 힌두교와 요가, 최악의 스모그로만 알고 있는 사람이든, 자주 찾는 여행자든 간에 인도 미술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미지의 영역일 터. 인도 미술을 더 알고 싶고, 가까이서 느껴보고 싶다면 당장 강원도 영월로 달려가 보자. 그곳의 작은 박물관에서 만나는 인도 미술은 우리가 제대로 몰랐던 인도의 또 다른 얼굴을 펼쳐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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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에게 꽃다발을 건네는 시타'



강원도 영월군의 북서쪽, 충북 제천과 가까운 주천면에 자리 잡은 인도미술박물관은 찾아가는 길부터 설렘을 안긴다. 영동고속도로 평창 나들목(IC)에서 빠져나와 평창강을 따라가는 길은 감탄이 절로 나는 드라이브 코스다. 수도권에서 출발하면 약간 돌아가는 길이지만, 있지도 않은 관람료를 내고 싶을 정도로 산과 강이 멋들어지게 어우러진다. 날이 맑으면 맑은 대로,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마음에 여유만 있다면 있는 그대로 천천히 아껴 누리고 싶은 길이다.

구불구불 산길을 따라 작은 마을에 들어서서 박물관 이정표를 찾으면 '어찌 이런 곳으로 들어가나' 싶은 좁은 골목길로 안내한다. 골목길을 꺾어 들어가자마자 의문부호는 바로 감탄부호로 바뀐다. 10여 년 전 폐교한 옛 금마초등학교의 아담한 운동장에 서면 파란 하늘 아래 이국적으로 단장한 황톳빛 단층 건물이 올려다보인다. 낯익은 현판 글씨는 신영복 선생의 필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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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가인 박여송(65) 관장은 결혼 직후인 1981년 남편 백좌흠 교수(경상대)와 함께 인도에서 유학하며 단순하면서도 아름답고 인도인의 생활이 고스란히 담긴 민속 미술에 매료됐다. 박 관장 부부가 30여 년 동안 인도 곳곳을 여행하며 모은 1천300여 점의 미술품을 가지고 2012년 연고도 없는 작은 산골 마을에 터를 잡은 것은 스러져가는 폐광 마을에서 박물관 특구로 되살아난 영월군의 지원 덕이다.

거의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이 폐교를 찾아내 완전히 뜯어고쳤다. 우표, 넥타이 디자인을 했던 박 관장이 직접 나섰다. 실수로 만들어졌다는 반타원의 커다란 창까지도 바깥 풍경을 담아내는 멋진 캔버스가 됐다. 옛 건물에서 유일하게 남은 마룻바닥이 발을 뗄 때마다 삐거덕삐거덕 소리를 내며 과거의 존재를 웅변한다. 교실 3개를 터서 만든 전시실 벽과 바닥에는 빈틈이 없을 만큼 많은 그림과 조각들이 채워졌다. 그렇게 채웠는데도 전시된 것은 300여 점에 불과하다. 나머지 1천여 점은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

박 관장은 "좋은 전시 방법은 아니지만, 이 먼 곳까지 찾아와 돈을 내고 들어온 관람객에게 최대한 많은 것을 보여주려다 보니 여백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넓지 않은 공간이라고 휙 둘러보기엔 너무 아깝다. 매시간 진행되는 박 관장의 해설을 챙겨 듣는 것이 좋다. 다 외지도 못할 수많은 신의 이야기, 사람들의 이야기가 몰랐던 인도, 새로운 인도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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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억 인구만큼 다양한 문화가 그림 속에

전시실에 들어가기 전 입구 오른쪽에 놓인 '나타라자:춤의 제왕'은 가장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힌두 조각이다. 파괴의 신이자 재창조의 신인 시바신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세상을 파괴할 때 추는 탄다바 춤을 선보이는 모습을 정교하게 형상화했다.

전시실 입구를 장식하는 것은 코끼리와 인간의 몸에 코끼리 머리를 한 신 가네샤다. 행운과 지혜, 재물을 상징하기에 인기가 많고, 환영의 의미로 문을 장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첫 번째 전시실에는 다양한 지역의 다양한 문화를 보여주는, 말 그대로 다양한 그림들을 모아놨다. 13억 인구만큼 다양한 인종과 종교, 그만큼 다양한 신과 문화를 한눈에 보여주고 싶었다는 게 박 관장의 의도다. 실크, 나무판, 종려나무잎, 자수 등 소재와 방법도 각양각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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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벽을 차지한 거대한 그림은 인도의 양대 고대 서사시 중 하나인 '라마야나' 이야기를 담은 사원의 천장화다. 아요디아 왕국의 왕자 라마가 동생 락슈마나와 함께 여러 동물과 바다 신의 도움을 받아 악마 왕에게 잡혀간 미틸라 왕국의 공주 시타를 구해낸다는 라마야나는 인도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다.

인도의 가장 큰 축제인 디왈리 축제에서 라마와 시타의 승리를 축하하는 불을 밝히고 연극이나 춤으로도 만들어진다.

천에 그려진 이 그림은 나뭇가지에 천을 감고 천이 머금은 물감을 짜내는 '칼람'이라는 붓으로 그린 칼람카리 그림이다. 나뭇가지로 그렸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정교하고 세밀하다.

인간문화재가 3년에 걸쳐 완성한 이 그림에는 우유와 염소똥이 쓰였다 한다. 우유의 기름 성분은 물감이 번지는 것을, 염소똥은 해충을 방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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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와 예술과 일상이 하나"

많은 세밀화를 보며 중노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인도에서는 종교와 일상과 예술이 다르지 않다는 박 관장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타르 사막이 있는 라자스탄 지역의 나무그림은 천연색을 활용해 화려하다.

시장을 떠도는 이야기꾼들이 얘기를 들려주면서 보여주는 두루마리 그림은 콜카타 지역에서 많이 그려졌다. 여러 부족민의 그림은 원시적이면서도 단순하지만, 또 그래서 매우 현대적이기도 하다. 가족을 그린 자미니 로이의 펜화는 자연스럽게 이중섭의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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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전시실은 마두바니 그림과 왈리 부족민의 그림으로 채워졌다. 비하르 주 마두바니는 라마야나에 등장하는 고대 미틸라 왕국으로 알려진 곳이다. 마두바니 그림은 3천 년 이상의 전통을 가진 인도의 대표 민화 중 하나인데, 주로 힌두 여성들이 만들어 낸 기도의 결과물이라고 한다.

단순한 선으로 표현한 그림이 입체적인 것이 피카소의 그림을 닮았다. 마두바니 그림은 인도 신분제(카스트)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색깔도 제한되는데, 상위 계급인 브라만의 그림은 화려하고 카야스타 신분의 그림은 검은색이나 붉은색만 사용할 수 있다.

카스트에조차 속하지 못하는 불가촉천민이 그린 그림은 바탕은 소똥으로, 사람과 꽃과 새는 흙으로 채웠지만 어쩐지 더 활달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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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똥·흙·쌀가루로 그린 그림

흙벽에 소똥을 바르고 쌀가루를 개어 그리는 왈리 부족민의 그림은 문자가 없던 시절 기록의 역할을 했던 고대 벽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세밀한 선으로 다양한 나무와 동물을 그리고, 결혼식이나 수확 등 일상의 중요한 한 장면을 빼곡하게 담아냈다.

사람은 세모, 동그라미, 선만을 사용해 매우 단순하게 표현했는데도 강강술래처럼 원을 그리며 춤을 추고, 모여 앉아 음식을 만들거나 술을 마시고, 악기를 연주하고, 아기를 안고 머리에 짐을 얹은 모습이 더없이 역동적이다.

왈리 부족민 그림 속의 사람은 박물관 현판과 리플렛, 박 관장의 명함에도 새겨져 박물관의 상징 역할을 하고 있다.

어린이 관람객은 이 사람을 보고 하나같이 '졸라맨'(2000년대 나온 플래시 애니메이션 캐릭터)을 외친다고 한다. 서로 닿을 일 없을 것 같은 인도의 부족과 한국의 어린이가 이렇게 교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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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시적이면서 현대적인 매력

세 번째 전시실에는 역시나 지역마다 다른 개성의 부처와 힌두신 상, 탈, 나갈랜드 주의 패널 조각 등 다양한 조각품들이 있다.

인도 고유의 굽타 양식의 부처는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는 것이 다분히 '동양적'이지만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간다라 양식의 부처는 '서양적'이다. 힌두 3대 신 중 하나인 보호와 유지의 신 비슈누와 그의 배우자인 풍요의 여신 락슈미 상도 두 지역의 것이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마디야 프라데시 지역의 바스타르 철 조각은 원시적이면서 동시에 현대적이다. 악기를 연주하는 무리인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즐거운 모습에 같이 들썩이고 싶어진다.

나갈랜드 지역의 패널 조각은 훨씬 투박하다. 분쟁이 끊이지 않는 지역이어서 전쟁을 준비하는 남자 숙소의 문짝에 무기와 사람의 머리를 들고 선 사람, 해골을 새겼다.

돌아 나오는 복도에서는 스카프의 일종인 두파타를 비롯해 패치워크, 자수, 나무 조각 등 각종 공예품을 구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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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FORMATION

박물관에서는 미술품 전시 외에도 지역민과 소통하고 관람객을 끌어들이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동네 어르신을 위한 문화 프로그램 '요가와 만다라'가 5∼10월 주 2회 무료로 열린다. 지팡이를 짚던 할머니는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두 달이 지나서는 지팡이 없이 오신다고 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국비 지원 사업으로 선정된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은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인도의 문양을 통해 역사와 종교, 사회, 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5∼10월 마지막 주 수요일에 열리는 '문화가 있는 날'은 '인도의 맛과 멋'을 주제로 한다. 일반 관람객도 매시간 진행되는 전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페인팅이나 블록 프린팅, 짜이(홍차)와 카레 등 간단하게 즐길 수 있는 인도 미술과 음식도 만날 수 있다. 단체로 예약하면 1박 2일 숙박 체험이 가능하다.

[관람 시간]

09:00∼18:00(3∼10월), 10:00∼17:00(11∼2월)

[휴관]

매주 월요일

☎ 033-375-2883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8년 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mih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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