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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이란에 분노하는 이라크...회심의 미소짓는 사우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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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의 성난 민심이 이란으로 향하고 있다. 실업과 부패, 전력과 물 부족뿐 아니라 이란의 간섭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이란이 흔들릴 때 웃는 것은 경쟁국 사우디아라비아다. 이란의 벽에 가로막혔던 사우디가 드디어 이라크 내부로 파고들 기회를 포착했다.

이라크 시위는 지난 8일(현지시간) 남부 바스라주에서 시작해 인근 지역으로 빠르게 확산했다. 지난 20일에는 수도 바그다드에서도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대는 “더 이상 이란은 필요 없다” “이란을 몰아내라”는 구호를 외쳤다. 남부 나자프주의 시위대는 집권 이슬람다와당 지역 당사를 공격했다. 다와당은 이라크 내 가장 오래된 시아파 정당으로 이란의 지원을 받아왔다. 사담 후세인 정권 붕괴 후 집권한 누리 알말리키 전 총리와 그 뒤를 이은 하이데르 알아바디 현 총리가 모두 이 당에서 나왔다. 시위대는 “이란의 정당을 불태우자”고 외치며 다와당 당사에 불을 질렀다.

이란은 2003년 이라크전쟁 직후부터 꾸준히 이라크에서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다와당 같은 시아파 정치세력이 정권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왔고, 친이란 무장조직을 전폭 지지했다. 바스라 같은 남부 유전지대에는 특히 공을 들였다. 2014년 중반 들어 이슬람국가(IS)가 이라크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팽창한 것도 이란에 호재로 작용했다. 친이란 무장조직들을 IS 격퇴전 선봉에 세웠다. 무장조직들이 진격을 거듭할수록 이란의 세력권도 확대됐다.

이라크 인구의 60%는 이란과 같은 시아파다. 그러나 이라크 시아파가 이란에 동질감을 느끼기는 어렵다. 나자프주의 한 성직자는 지난해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이라크는 아랍 세계의 일원이다. 이란과 다르다”고 말했다. 이란 세력은 오히려 점령군으로 여겨진다. 미국평화연구소의 중동전문가 사르한 하마사에드는 지난 5월 대담에서 “이라크인들은 이란이 1979년 이슬람혁명을 이식하려 한다고 느낀다”면서 “테헤란의 개입은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의 새로운 장(章)으로 여겨졌다”고 지적했다.

사우디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사우디는 지역 패권 경쟁국인 이란의 세력 확대를 어떻게든 억눌러야 한다. 사우디는 전력 공급 문제를 두고 조만간 이라크 전력장관과 회담할 계획이다. 이라크 전력난은 이번 시위의 직접적 계기가 됐다. 이란 당국이 요금 체납을 이유로 이라크 전력공급을 거부했다. 그 결과 바스라 등지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50도에 가까운 폭염을 냉방도 없이 버텨야 했다.

사우디는 최근 들어 이라크 내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 살만 국왕은 리야드에서 알아바디 총리와 회담하고 정치·안보·경제·무역 및 개발에 관한 협약을 맺었다. 살만 국왕은 지난 3월 바스라에서 열린 사우디와 이라크의 축구 친선전 직후 알아바디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축구장을 지어주겠다고 약속했다.

사우디는 이라크 수니파의 구심점 역할을 하면서 영향력을 키우려 한다. 수니파는 후세인 집권기 내내 권력을 놓지 않았지만, 이라크전쟁 이후 소수파로 전락했다.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조직 IS는 그로 인한 수니파의 불만을 일부 대변하기도 했다. 사우디는 IS 붕괴 이후 구심점을 잃은 이라크 수니파를 규합하겠다는 목표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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