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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계엄 문건’ 배후에 권력핵심?…송영무 은폐 의혹도 규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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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특별수사단이 밝혀야 할 의혹들 짚어보니

광화문에 탱크·국회의원 체포 등 국방장관 수준 넘어

‘군 협조’ 강조 등 합참 ‘계엄실무편람’과는 전혀 달라

대통령 문건 제출 지시에도 미적거린 의도 규명해야


국군기무사령부의 위수령·계엄령 검토 문건을 수사하는 특별수사단이 최근 기무사의 67쪽짜리 ‘대비계획 세부자료’ 문건의 추가 공개를 계기로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주 본격 수사에 나선 특수단은 그동안 기무사 요원들을 소환해 문건 작성 배경과 경위, 과정 등을 캐는 데 주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수단은 앞으로 기무사의 계엄 문건 작성을 누가 지시했고, 어디까지 보고됐는지, 얼마나 실행에 옮길 준비를 했는지, 또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이 문건의 존재를 보고받은 뒤 언제 어떻게 청와대에 보고했는지 등 몇몇 의혹을 해소하는 데 적극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 기무사 계엄 문건의 배후는?

22일까지 직간접으로 확인된 최고 윗선은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이다. 지난해 2월 한민구 당시 장관이 조현천 당시 기무사령관에게 위수령·계엄령 발령의 검토를 지시했고, 다음달 초 조 사령관은 2주 남짓 작업한 검토 문건을 한 장관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청와대가 20일 기무사의 67쪽짜리 ‘대비계획 세부자료’ 문건이라며 공개한 내용을 보면, 한 장관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다. 선제적 조처가 계엄 성공의 관건이라며 야간에 광화문·여의도 등 주요 지점에 전차·장갑차를 신속히 투입한다든가,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을 막기 위해 국회의원을 체포한다거나, 국가정보원장을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에 따르도록 한다거나 하는 내용은 실행을 전제로 한 것이라는 혐의를 짙게 풍긴다. 그러나 법적으로 계엄령 선포는 대통령의 권한이며, 병력 동원도 권력 핵심과의 공감 없이는 불가능하다. 한 전 장관의 배후에 누군가가 있을 가능성이 커 보이는 배경이다.

게다가 지난해 3월 박근혜 청와대는 헌법재판소의 탄핵소추 기각을 예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탄핵은 당시 남아 있던 재판관 8명 중 적어도 6명이 찬성해야 한다. 당시 탄핵 찬성 여론이 80%에 이르렀지만, 청와대는 박 전 대통령이 지명한 재판관 등 보수 인사 3명 이상이 기각에 손을 들어줄 것으로 믿었다고 한다. 이번 기무사 문건이 청와대 등 권력 핵심 차원에서 헌재의 탄핵 기각 이후 이에 불복하고 나설 촛불집회를 진압하기 위해 군병력 동원을 검토한 것으로 해석되는 또 다른 배경이다.

■ 어디까지 추진되고 준비됐나?

계엄은 계획만 갖고는 성공할 수 없다. 기무사의 문건이 계획대로 시행되려면 병력 동원 부대나 지원 부대 등과 협조가 이뤄져야 한다. 8쪽짜리 ‘전시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 문건도 ‘향후 조치’라는 항목에 ‘위수령 또는 계엄 시행준비 착수’는 ‘의명’(명령에 의거한다는 뜻)이라고 적어놓고 “본 대비계획을 국방부·육본 등 관련 부대(기관)에 제공”, “계엄임무수행군 임무수행 절차 구체화”라고 명시하고 있다. 관련 부대와 협조해 구체적인 수행계획을 마련하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통상 계엄 업무는 합동참모본부의 계엄과에서 담당하며 해마다 을지연습 때 전시 상황을 가정해 계엄 업무 연습을 한다. 또 합참 계엄과는 2년마다 ‘계엄실무편람’을 수립하며, 예하 부대는 평상시 계엄령이 선포되면 맡아야 할 임무를 숙지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이런 통상의 절차에 따른 계엄령 선포는 예하 부대를 동원하기 위해 따로 계획을 세우고 은밀히 협조를 요청할 이유가 별로 없다.

그러나 이번 기무사 문건은 합참이 수립하는 계엄실무편람과 내용이 전혀 다르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따라서 문건의 계획이 실행되려면 미리 육군본부 및 계엄임무수행군과 비밀리에 연락하고 협조를 구해 놓는 게 필수적이다. 이번 기무사 문건에 ‘계엄임무수행군’으로 적시된 8·11·20·26·30사단, 수기사(수도기계화보병사단), 특전사(특수전사령부) 예하 1·3·7·11·13여단, 707대대, 2·5기갑여단 등이다. 현재까지는 이들 부대가 기무사 문건과 연루된 정황이 확인된 게 없다. 이번 수사에서 이런 정황이 확인되면 이번 기무사 문건의 ‘내란 음모’ 혐의가 더욱 짙어질 수밖에 없다.

■ 송영무 국방의 늑장 보고 책임 물어야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올해 3월 이석구 기무사령관으로부터 기무사 문건을 보고받은 뒤 이를 처리한 과정도 의문투성이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 당시 송 장관은 8쪽짜리 ‘전시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과 67쪽짜리 ‘대비계획 세부자료’를 모두 보고받았다.

그러나 송 장관은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8쪽짜리 문건을 언론에 공개하기 며칠 전인 6월28일에야 청와대에 이 문건을 보고했다. 그마저 67쪽짜리 문건은 1쪽으로 요약해서 보고했다. 송 장관이 4월30일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조국 민정수석 등과 기무사 개혁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자료에 기무사 문건의 존재를 간략하게 언급했다고 하지만 이는 정식 보고로 보기 어렵다. 송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기무사 문건과 관련해 군 내부에서 오간 모든 문서를 보고하라”고 지시한 뒤에도 이틀 동안이나 ‘모르쇠’로 일관했다.

송 장관은 20일 국회 법제사법위에서 “(기무사 문건의) 심각성을 느끼고 엄청난 고뇌를 했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있을 때였고 6·13 지방선거에 폭발력이 너무 큰 것이어서 염려됐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런 중요한 문제를 늑장 처리한 배경의 해명으론 부족하다는 비판이 많다. 기무사 문건과 관련한 송 장관의 처신을 철저히 조사해 반드시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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