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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편의점 본사 영업사원 “우린 방패막이…재벌 빼고 모두 ‘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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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편의점에 비친 갑을병 사회

(하) 전직 영업사원의 고백



한겨레

“우리는 방패 역할이다. 편의점 산업에선 재벌 일가 빼고는 전부 을이다.”

단호한 목소리였다. 한 대형 편의점 가맹본부(본사)에서 10년 이상 영업사원으로 일해온 유현도(가명·40대)씨는 22일 <한겨레>와 만나 편의점 산업의 구조를 이렇게 정의했다.

■ 본사와 점주 사이 ‘방패’

편의점 가맹본부 영업사원은 회사마다 차이가 있지만 통상적으로는 ‘에프시’(FC)라고 부른다. 유씨는 “현장 점포의 영업 관련 조언을 하는 ‘필드 카운슬러’란 뜻이지만, 실제로는 ‘필드 컨트롤러’다”라고 말했다. 점주들을 지원하는 것보다는 본사의 의도대로 관리하는 목적이 크다는 얘기다. 보통 한 영업사원이 15~20개의 점포를 관리한다.

본사로부터 받은 실적 압박과 ‘관리’ 주문을 점주에게 전달하는 구실도 한다. 이 과정에서 일부 점주들이 항의를 하기도 한다. 본사로 향하는 점주들의 분노를 중간에서 막는 것도 영업사원의 임무다. 그래서 ‘방패’다.

예전엔 무턱대고 점포 사무실로 들어가 할당된 상품을 마음대로 주문했다. 이른바 ‘영업사원 갑질’이다. 하지만 2013년 남양유업 영업사원의 갑질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뒤, 그런 관행은 현재 사라졌다. 지금은 발주를 위해 ‘읍소’를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점주들의 험악한 말도 듣는다.

반면 항의조차 못 하는 점주들이 있다. 유씨는 “‘을 중의 을’이 있다. 본사 위탁 점포다. 초기 창업 자본이 많지 않아 부동산 임차료를 낼 수 없어 본사가 임차료를 대신 내주는 곳이다. 이런 곳은 가맹수수료(로열티)가 60%를 넘기도 한다. 위탁 점포는 반강제적으로 발주를 해도 항의도 못 한다”고 말했다.

1주일에 한두번 열리는 회의 빼고는 계속해서 외근을 하면서 점포를 관리한다. 회의 때마다 실적 압박이 거세다. 유씨는 “매출 압박이 심하다. 실적 등을 종합 평가해 매장별로 관리 점수가 매겨지는데, 이를 기준으로 월 급여의 5~15%에 해당하는 인센티브가 차등 지급된다”고 했다.

매출 올리라는 본사, 항의하는 점주
그 사이에 낀 영업사원들
“인센티브 차등 지급해 실적 압박”
김밥 등 계열사 제품들 ‘필수 발주’
점주들에게 “제발 주문 넣어달라”
그 덕에 매출 최대 70배 뛴 곳도
가장 중요한 물류도 자회사서 맡아


■ 그룹 계열사 상품은 ‘필수 발주’

본사가 특별히 신경쓰는 것은 그룹 계열사 제품들이다. 이들 제품은 ‘필수 발주’로 분류된다. 매장에 찾아가 점주들에게 “제발 주문 좀 넣어 달라”고 사정하게 되는 대상이다. 최근에는 김밥과 도시락 등 제품의 필수 발주 품목이 늘어나는 추세다. “본사 자회사들이 김밥과 도시락 등 신선식품을 생산해 공급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자기들 제품 많이 팔라는 얘기다.”

실제 어떤 상황일까. <한겨레>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과 기업분석 업체인 시이오(CEO)스코어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주요 편의점 본사들은 대부분 신선식품을 공급받는 자회사를 두고 있다. 지에스25(지에스리테일)의 후레쉬서브, 씨유(CU·비지에프리테일)의 비지에프푸드는 본사 지분 100% 자회사다. 세븐일레븐(코리아세븐)은 계열사인 롯데푸드에서 신선식품을 납품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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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자회사는 편의점 본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급성장 중이다. 후레쉬서브는 2007년 설립 당시 8억4천만원에 그치던 매출이 2015년 571억원으로 급상승했다. 비지에프푸드도 2012년 매출이 264억원이었으나 2017년에는 567억원으로 두배 이상 뛰었다. 식품뿐만이 아니다. 편의점에서 가장 중요한 물류도 자회사들이 맡는다. 지에스리테일은 지에스네트웍스, 비지에프리테일은 비지에프로지스를 지분 100% 자회사로 두고 있다.

감사보고서를 보면, 비지에프로지스는 2017년 매출 1353억원 가운데 1100억원이 비지에프리테일에서 나왔다. 시이오스코어의 박주근 대표는 “지분구조 등을 볼 때 편의점 본사에 소속된 자회사의 본사 의존도가 높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점주들에 신선식품 폐기료 지원
“발주 줄일까봐 하는 눈가리고 아웅
회사 부당지시 알면서도 점주 설득”
외형 커지는 편의점 산업 이면에
점주들 늘 폐업 고민하는 상황
재벌은 주가 상승 등으로 막대한 돈
“점주·가맹본부 동반성장 구조로”


■ ‘점주에게 환원’ 인식 전환 필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룹 전체의 배를 불리기 위한 편의점 본사의 점주 압박은 갈수록 심해진다. 영업사원들이 때로는 부당한 지시라는 것을 알면서 점주들을 설득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자괴감이 늘어간다”고 유씨는 말했다. “명목상으론 점주를 위한다고 하지만, 대다수 편의점 본사의 방침은 그룹과 계열사를 위한 것”이라고 유씨는 설명했다.

대표적인 게 최근 편의점 본사들이 내놓는 상생안 가운데 하나인 ‘폐기료 지원’이다. 폐기료는 삼각김밥과 도시락 등 신선식품 등 유통기한이 짧은 식품을 폐기처분하면서 점주가 무는 돈이다. 하지만 점포마다 이들 제품을 몇 개 이상 발주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영업사원은 점주를 설득해 이 물량을 채운다. “폐기 비용을 지원하는 건 ‘눈 가리고 아웅’이다. 폐기료가 부담돼 점주들이 발주 수량을 줄일까봐 지원하는 것이다. 결국 자기들 소유의 자회사 매출을 관리하겠다는 얘기다”라고 유씨는 말했다.

이렇게 해서 외형을 키운 편의점 사업으로 가장 이익을 보는 건 재벌 일가다. 주요 편의점 본사의 지배구조를 역추적하면 결국 재벌 총수 일가가 나온다. 허창수 회장(지에스그룹), 홍석조 회장(비지에프. 이건희 삼성 회장 처남), 신동빈 회장(롯데그룹) 등이 정점에 있다. 총수를 위해 돌아가는 산업 구조의 개편이 편의점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란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성종 세븐일레븐 가맹점주협의회 부회장은 “편의점 산업이 커지면서 주가 상승과 배당금 등으로 총수 일가는 막대한 돈을 벌고 있지만, 점주들은 늘 폐업을 고민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며 “재벌 총수 일가가 편의점 산업으로 주머니를 불리는 구조를 바꿔야 가맹본부와 점주가 동반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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