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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단독]5년 끌어온 日징용 판결… 大法문건 “외교부 배려 절차적 만족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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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법원행정처’ 2013년 작성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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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일제강점기 강제노동자 손해배상 소송을 놓고 외교부의 민원을 반영해 “외교부를 배려해서 절차적 만족감을 주자”고 제안하는 내용의 문건을 작성한 사실이 22일 확인됐다. 문건에는 ‘판사들의 해외 공관 파견’과 ‘고위 법관 외국 방문 시 의전’을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고령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을 미루면서 이를 일부 법관의 편의와 맞바꾸려 한 재판 개입으로 해석될 수 있어 파장이 예상된다.

본보가 확인한 2013년 9월 당시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이 작성한 ‘강제노동자 판결 관련-외교부와의 관계(대외비)’라는 제목의 문건에 따르면 그해 외교부는 일본과의 외교관계를 고려해야 한다는 민원을 여러 차례 대법원에 제기했다. 태평양전쟁 강제동원 피해자 9명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은 파기 환송심을 거친 뒤 일본 기업들의 불복으로 2013년 8, 9월 다시 대법원에 올라온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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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정책실은 이 문건에서 외교부의 민원에 무게를 두는 판단을 하면서 해외 파견 법관과 고위 법관 의전을 언급했다. 또 대법원이 어떤 스탠스를 취하고 판결해야 하는지 1, 2, 3안을 제시하면서 최종 판결을 지연시켜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절차적 만족’을 강조했다.

앞서 2007∼2009년 진행된 1, 2심은 일본 기업들이 피해자에게 배상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2012년 대법원은 이를 뒤집어 원고 승소 취지로 각각 부산고법과 서울고법으로 사건을 돌려보냈다. 이듬해 파기 환송심에서 재판부는 미쓰비시중공업(부산고법)은 1인당 8000만 원, 신일본제철(서울고법)은 1인당 1억 원씩 배상해야 한다고 선고했다.

통상 대법원의 파기 환송 결과를 고등법원에서 그대로 받아 판결하면 대법원은 ‘심리불속행’으로 신속하게 판결한다. 하지만 이 문건에 따르면 재판에 개입할 수 없는 법원행정처가 최종 판결을 미루자는 뉘앙스의 문건을 작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공교롭게도 이 소송은 문건 작성 시점부터 현재까지 대법원에만 5년째 계류 중이다. 그 사이 피해자 9명 중 7명은 이미 사망했다. 최초 원고 2명과 사망한 원고 7명의 유족들은 현재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대법원 특별조사단’이 5월 공개한 ‘상고법원 관련 BH 대응전략’(2015년 3월 26일 작성)도 2013년에 작성된 이 문건의 연장선에 있다.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이 작성한 이 문건에는 상고법원 도입을 위한 ‘구체적 접촉·설득 방안’ 중 하나로 당시 이병기 전 대통령비서실장을 언급했다. 이 전 실장의 최대 관심사가 ‘한일 우호관계 복원’이라고 하면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 사건에 대하여 청구 기각 취지의 파기 환송 판결을 기대할 것으로 예상”이라고 적혀 있다.

두 번째 문건이 작성된 시점으로부터 6개월이 지난 2015년 9월 대법원은 미쓰비시를 상대로 소송을 낸 원고들에게 “관련 사건을 통일적이고 모순 없이 처리하기 위하여 심층 검토하고 있다”고 알렸다. 1년 뒤 신일본제철 상대 원고들에게도 비슷한 내용이 공지됐다.

검찰은 법원행정처가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에 개입한 사례라고 판단하고, 당시 사법정책실장 등 관련자를 조사할 계획이다. 당시 사법정책실 관계자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잘 모르겠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주영 aimhigh@donga.com·허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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