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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삼성 백혈병·KTX 해고, 10여년만에 벽을 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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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삼성, 조정위 중재안 수용 밝혀

내일 반올림과 합의 서명식 예정

KTX는 승무원 180명 복직 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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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세월이 지나도록 꽉 막혀 있던 주요 노동 현안이 마침내 해결 국면을 맞았다. 12년 전 해고된 케이티엑스(KTX) 승무원 180명이 정규직으로 채용돼 일터로 돌아가게 됐고, 10년간 사과와 보상이 막막했던 ‘삼성전자 백혈병’ 갈등도 중재안 합의를 목전에 뒀다. 긴 세월을 거리에서, 법정에서, 때론 고공농성장에서 좌절했던 이들은 비로소 가슴을 쓸어내렸다. 거대한 기득권의 벽에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고 저항한 결과이기도 하다.

“아직은 뭐라 말씀드리기 조심스럽네요.”

삼성전자가 ‘삼성전자 사업장의 백혈병 등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조정위)의 중재방안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22일,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는 말을 아꼈다. 딸이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지 11년 동안 겪어야 했던 수많은 일이 머릿속을 스쳐 갔기 때문이다. 2015년 7월 조정위가 내놓은 권고안이 최종 결렬된 뒤 그를 포함한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은 또다시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1020일 동안 농성을 이어가야 했다.

다만 이번엔 황씨도 지루한 싸움의 끝을 낙관하는 듯했다. “우리 유미가 살았을 적에 병이 걸린 원인을 밝히겠다고 약속했어요. 유미와 약속이 단초가 돼 시작된 일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거죠.” 이제 그 약속을 지킬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삼성전자와 반올림 양쪽 모두 두 달여 뒤 나올 조정위의 중재안에 합의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만큼 조정이 무산될 가능성은 작다. 조정위, 반올림, 삼성전자는 24일 오전 중재방식에 합의하는 서명식을 연다.

이날 삼성전자 사옥 앞 농성장은 땡볕 아래 숨조차 쉬기 힘들 만큼 열기에 휩싸였지만, 표정만큼은 나쁘지 않았다. 올해 초부터 ‘반올림 농성 지킴이’로 활동 중인 노무사 조승규(27)씨는 “강하게 버티던 삼성이 드디어 고개를 숙이는 건가 싶다”고 했다. 그는 이어 “반올림은 이미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이제는 삼성의 변화가 시작될지도 모르겠다”고 기대했다. 삼성 쪽 관계자도 “지난 10년간 백혈병 관련 갈등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조정위가 제안한 중재방식을 마지막 기회로 본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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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촛불 정권’이 탄생했는데도 우리 세상만 바뀌지 않는다고 원망도 많이 했어요. (이제) 우리 사회가 변하고 있다는 희망을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12년 2개월 만에 일터를 되찾게 된 김승하 철도노조 케이티엑스(KTX)열차승무지부장은 지난 21일 오후 서울역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소회를 전했다. 서울역 천막농성장에서 소식을 들은 승무원들은 4526일 만의 승리에 서로 얼싸안고 끝 모를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와 동료들은 2006년 이후 12년 동안 하루도 순탄하게 보낸 날이 없다. 2008년 여름에는 40m 높이 서울역 철탑에 올라 20여일간 고공농성을 했고, 2015년에는 대법원 판결에 좌절한 동료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을 지켜봐야 했다.

김 지부장은 지난 2015년 대법원이 하급심 판결을 뒤집고 사쪽 손을 들어주자 이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박아무개 승무원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1·2심 승소로 받은 임금과 소송비용 등을 감당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김 지부장은 “이렇게 기쁜 순간에 함께할 수 없는 한 친구에게 그래도 우리가 옳았고 우리가 정당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무엇으로도 보상할 수 없겠지만, 우리가 힘을 모아 ‘사법 농단’을 되돌려 놓는 것이 그 친구를 위한 마지막 행동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케이티엑스 승무원들의 판결은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거래 의혹 문건에 등장하고, 검찰이 현재 수사를 진행 중이다.

해묵은 노동 현안이 하나씩 풀리면서 10년 넘게 끌어온 다른 사안도 새삼 주목받고 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 정리해고 문제가 대표적이다. 2009년 대규모 정리해고 이후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가족 등 30명이 세상을 떠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달 인도 국빈방문 때 쌍용차 최대주주인 마힌드라 그룹의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을 만나 해고자 복직 문제 해결을 당부했지만, 회사 쪽은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임재우 박기용 최현준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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