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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해직 KTX 승무원 “대법 판결 뒤엎은 후 가장 힘들어…사법농단 밝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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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오미선 전 KTX 승무지부장 인터뷰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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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26살의 나이로 케이티엑스(KTX) 승무원이 됐던 여성은 14년이 지나 8살, 6살 두 아이의 엄마가 됐다. 그에게 20대 후반과 30대는 통째로 ‘투쟁의 시간’이었다.

입사 당시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약속한 ‘2년 내 정규직 전환’은 이뤄지지 않았다. 2006년 3월 승무원들은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고, 두 달 뒤 280명이 한 번에 정리해고됐다. 해고 승무원들은 서울역 앞에 천막을 치고 인근 철탑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벌였다.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해 1심과 2심 모두 승소했지만, 2015년 대법원은 돌연 회사 쪽 손을 들어줬다. 비관한 한 해고 승무원은 세 살 난 아이를 둔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5월에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이 판결을 둘러싸고 청와대와 거래를 하려 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철도노조 케이티엑스 승무지부장을 지낸 오미선(39)씨는 22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대법원 판결 직후가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당시 이들은 앞선 재판의 승소로 받아낸 4년 치 ‘부당해고기간 체불임금’과 연 15%의 법정이자를 합한 1억원가량을 물어내야 할 처지가 됐다.

“갑자기 그 많은 빚이 생기니 굉장히 힘들었어요. 가압류 통지서가 오고, 예고 없이 진행될 수 있다고 하고…. 우편물이 날아올 때마다 잠을 못 잤어요. 특히 가족들한테 미안했죠.”

해고된 280명 가운데 지금까지 싸움을 이어온 이는 33명이다. 파업 경력이 재취업에 족쇄가 됐고, 수년의 빈 시간을 숨길 수도 없었다. 오씨는 “더러 프리랜서 강사 일을 하는 이도 있지만, 대부분 돈을 벌지 못해 경제적으로 힘들어했다”고 했다. 동료 중엔 케이티엑스를 탈 때마다 약을 먹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26살 입사 뒤 2년만에 해고
8살, 6살 두 아이의 엄마 돼
20대 후반~30대 투쟁의 시간
땀에 전 티셔츠·모자 쓴 기억만


철탑 농성 1, 2심 승소했는데…
대법원 회사쪽 손 들어준 판결 뒤
통지서 날아올 때마다 잠 못 이뤄


박근혜 정부 사법농단 최대 피해
숨진 친구 명예회복 위해서라도
진실 밝혀질 때까지 계속 싸울 것


다행히 오씨는 가족들이 버팀목이었다. 부모님은 싫은 내색 없이 오씨를 지켜봐 줬다. 직접고용 합의를 이룬 21일 저녁, 남편은 “그동안 고생했다”며 다독여줬다. 2008년 8월 오씨가 서울역 철탑에 올랐을 때, 연애 중이던 남편이 오씨 몰래 먼발치까지 찾아왔다는 것도 이날 처음 알았다. 당시 오씨는 마음이 약해질까 봐 남자친구의 ‘위로 방문’을 허락하지 않았다.

“결혼한 이들 중엔 언론에 얼굴 비치는 걸 신랑이 반대하는 이도 있고, 시아버님이 ‘죽기 전 소원’이라며 그만두라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래서 많이 참여를 못했죠.”

오씨는 어느 인터뷰에서 “20대를 돌아보면 땀에 전 티셔츠와 모자를 푹 눌러쓴 모습만 떠오른다”고 한 적이 있다. 그때는 모든 게 다 허무하게 날아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고 했다.

“항상 ‘해고 승무원’이란 꼬리표가 있었는데, 돌아보면 인생에서 승무원으로 일한 건 2년2개월뿐이에요. 지나간 시간은 하나도 보상되지 않죠. 20대 때 생각했던 직장인의 멋진 모습, 그런 게 한 번도 없었어요. 목에 사원증 걸고 다니는 이들을 보면 아직도 부러워요.”

오씨에게 이번 합의에 만족하는지 물었다. “‘투쟁의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지난 12년 동안 생명·안전업무인 승무직을 회사가 직접 고용하는 게 맞는다고 주장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은 건 아쉬워요. 하지만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조치는 큰 의미가 있다고 봐요.”

그는 이어 “(그동안) 너무 길게 싸워왔고, 중간 합의점이 필요했다”며 “일단 회사로 돌아가 전환배치를 위해 싸워야 한다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박근혜 정부 ‘사법 농단’의 가장 큰 피해자로서, 숨진 친구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계속 투쟁해 나갈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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