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19 (화)

허술한 약관·저금리 '후폭풍'…'즉시연금 논란' 문제는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연금 최저보증이율 약속하고/ 금리 하락으로 보장금액 못줘/‘만기 보험금 위해 일정액 공제’/ 약관 명시 안해 가입자와 분쟁/ 금감원 “적게준 연금 전액지급”

보험사 “약관 승인 당국도 책임”

세계일보

요즘 보험업계 핫이슈는 ‘즉시연금’이다.

즉시연금은 가입자가 한꺼번에 목돈(보험료)을 내면 보험사가 이를 운용해 매월 이익금(이자)을 생활연금으로 지급하고 만기 때 원금을 돌려주는 보험상품이다. 그런데 저금리 상황이 지속되면서 매달 지급되는 이자(연금)가 줄어들자 문제가 발생했다. 고객의 문제 제기에 금융감독당국은 ‘과소지급 일괄구제’ 결론을 내렸다. 보험사들은 한꺼번에 거액을 물어줘야 할 처지에 놓였다. 삼성생명만 4000억원대, 업계 전체로는 최대 1조원에 육박한다.

당국의 입장은 확고하다. 계약에 비해 적게 지급한 보험금을 가입자에게 돌려주라는 것이다. 업계는 “억울하다”며 여론전에 나섰다. “약관에 별 문제가 없다”거나 “보험이 은행예금인가”라며 반론을 전개한다. 어디까지가 주장이고 어디부터 팩트인가.

세계일보

◆저금리가 드러낸 설계오류

“저금리의 비극이다.”(금감원 관계자) 물이 내려가면 바닥의 쓰레기가 드러나듯 금리가 떨어지면서 상품설계의 오류가 드러났다. 발단은 A씨의 분쟁조정신청. A씨는 2012년 9월 삼성생명 즉시연금에 가입했다. 가입금액(보험료) 10억원, 보험기간 10년, 약관에 명시된 최저보증이율은 2.5%였다. 이를 적용하면 A씨는 금리가 아무리 떨어져도 매월 적어도 208만원은 받아야 했다. A씨는 그렇게 알고 가입했다.

세계일보

처음 3년은 문제가 없었다. 1년간은 매월 305만원, 그 뒤 2년간은 250만원 이상을 연금으로 받았다. 문제는 이후다. 금리 하락과 함께 연금액은 184만원 → 138만원 → 136만원으로 뚝뚝 떨어졌다. A씨는 결국 “최소 월 208만원을 지급하라”며 금융감독원에 분쟁조정을 신청했고,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는 작년 11월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삼성생명은 당시 A씨 주장은 상품구조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즉시연금의 구조를 보면 우선 일시납 보험료에서 사업비를 뗀다. 보험료가 1억원이라면 500만~600만원가량을 사업비로 떼고 나머지 순보험료 9400만~9500만원을 운용하는 식이다. 운용수익은 순보험료에 공시이율(운용자산이익률과 외부지표금리를 가중 평균한 금리)을 곱해 산출하는데, 이것도 모두 지급되는 게 아니다. 사업비가 공제된 만큼 만기에 돌려줄 원금 충당을 위해 일정액(만기 보험금 지급재원)을 제하고 잔여액을 연금으로 지급하는 구조다. 그러니 공시이율이 하락하면 수익이 줄고 만기 보험금 지급을 위해 유보해야 할 금액 비중은 커지게 된다. 금리 하락기에 연금액이 ‘보험적립금 × 최저보증이율’ 금액 밑으로 내려가는 이유다.

◆약관, 뭐가 문제인가

삼성생명은 당시 “연금액은 보험계약 기초서류대로 정확하게 산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초서류란 약관, 산출방법서, 사업방법서를 말한다. 문제는 약관에 만기 보험금 지급을 위해 일정액을 떼고 연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이 없다는 점이다. 약관엔 “연금계약 적립액은 보험료 및 책임준비금 산출방법서에서 정한 바에 따라 계산한 금액으로 한다”고 되어 있을 뿐이다. 금감원은 “산출방법서는 보험사 내부의 계리적 서류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약관으로는 연금액이 최저보증이율 밑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세계일보

지난달 금감원은 한화생명 ‘바로연금보험’에 대한 분쟁조정에서도 보험가입자의 손을 들어줬는데, 이유는 같았다. 한화생명의 경우 약관에 “매월 연금 지급액은 만기환급금을 고려한 금액을 지급한다”고 명시하기는 했다. 이를 근거로 한화생명은 “문제 없다”고 주장하지만 분조위는 “연금액에서 만기보험금 지급재원이 차감된다는 점이 가입자가 알 수 있게 명시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상품설계 의도를 약관에 정확히 반영하지 않았다. 이는 중대오류”라고 말했다.

즉시연금 상품의 약관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NH농협생명은 명확한 문구를 약관에 넣었고 그 덕분에 이번 논란을 비켜갔다. 해당 문구는 “가입 후 5년간은 연금월액을 적게 해 5년 이후 연금계약 적립액이 보험료와 같도록 한다”는 것이다.

◆“보험이 은행 예금인가”

약관의 문제를 인정하더라도 보험사들이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우선 해당 상품은 금감원 승인을 받았다는 것이다. 금감원도 책임이 있다는 얘기다. 또 “분조위 결정은 보험상품을 은행 예금방식으로 지급하라는 것으로, 보험상품의 기본구조를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비용마저 보험사가 부담하라는 건 상품을 공짜로 팔라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일보

일괄구제도 “도입이 확정되지도 않은 제도”라고 지적한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지난 9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즉시연금 미지급금에 대한 일괄구제 제도 적용 방침을 밝혀 판을 확 키웠다.

금감원 관계자는 “동양그룹 기업어음(CP) 등 분쟁조정에 들어갔다가 일괄구제된 사례는 많다”고 말했다. 약관에 대해선 “금감원에 일말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것과 피해자 구제는 별개”라고 말했다.

류순열 선임기자 ryoosy@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 Segye.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