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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외면받는 청약통장…멀어지는 30·40 내집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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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지난달 분양한 강동구 고덕 자이 견본주택 개관 당시 모습. 평균 경쟁률 31대1을 기록한 가운데 당첨 최저 가점이 57점이었다. [사진 제공 = GS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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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앞둔 30대 중반 직장인 A씨는 최근 10년 넘게 관리했던 청약통장을 해지했다. 신혼집 전세금을 마련해야 하는데, 1000만원 상당의 돈을 청약통장에 묶어놓을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A씨는 "어차피 가점이 낮아서 당첨될 일도 없으니 차라리 그 돈을 전세금에 보태기로 했다"고 말했다.

'공정한' 새 아파트 공급을 위해 41년째 시행 중인 주택청약제도가 불신과 외면의 대상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분양시장이 고가점 청약통장 보유자만이 당첨될 수 있는 '그들만의 리그'로 변질됐기 때문이다. 이 결과 월별 청약통장 가입자 증가폭은 올해 2분기 들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같은 기간 서울을 중심으로 분양 단지들의 최저 당첨 가점은 40점대에서 50~60점대로 상승했다.

22일 금융결제원에 따르면 6월 기준 주택청약종합저축 계좌는 총 2188만6272개로 전달 대비 8만2801개(0.38%) 증가했다. 월별 청약통장 가입자 수 증가폭이 10만계좌 이하로 떨어진 것은 올해 들어 처음이다. 지난해 동 기간인 6월 증가폭(11만8866개, 0.59%)과 비교해도 3분의 2 수준에 불과하다.

올해 초만 해도 계좌가 매달 20만개 이상 증가하는 추세였다. 3월에만 전달 대비 21만2757개(0.99%) 증가한 바 있다. 하지만 3월 이후 통장 가입자 증가폭은 계속 축소되고 있다. 4월에는 전달 대비 16만5224개(0.77%)가 늘어났지만 5월에는 11만9267개(0.55%) 증가하는 데 그쳤다. 6월 들어 월별 증가폭이 올 초 대비 반 토막 난 것이다.

전문가들은 분양 당첨 커트라인이 점점 높아지면서 청약통장 증가 추세가 위축됐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남수 신한금융투자 부동산팀장은 "청약을 통해 집을 장만할 수 있어야 통장 보유의 이점이 있는 것"이라며 "하지만 최근 50~60점대 가점 보유자만 당첨되는 사례가 늘어나 대부분 실수요자 입장에서 청약 당첨은 '그림의 떡'"이라고 설명했다. 구조적으로 청약에 당첨될 가능성이 없으니 신규 가입자 유입이 줄어들었다는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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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지난해 8·2 부동산대책 일환으로 청약제도를 대폭 개편했다. 특히 서울 등 투기과열지구 내에서 분양하는 전용면적 85㎡ 이하 아파트 모집에 100% 가점제를 도입했다. 실수요자 선호도가 높고, 분양 물량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소형 단지의 당첨 여부를 가점에 맡긴 것이다.

이 결과 분양시장은 청약 가점이 40~50점 이상이어야 당첨을 기대해볼 수 있는 구조로 바뀌었다. 지난 3월 분양한 서울 강남구 '논현 아이파크'는 당첨 커트라인이 43점, '디에이치자이 개포'는 41점이었다.

아울러 서울의 경우 분양 단지 당첨 커트라인이 2분기 들어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4월 분양한 마포구 '마포 프레스티지 자이'는 전달 분양한 주요 단지들보다 높은 52점의 커트라인을 기록했다. 6월 분양한 강동구 '고덕 자이'는 최저 가점이 57점이었다. 영등포구 '신길 파크자이'의 커트라인은 59점으로 집계됐다. 신길 파크자이 바로 옆에서 지난해 11월 분양한 '힐스테이트클래시안'의 최저 당첨 가점은 43점이었다. 반년 사이 커트라인이 16점이나 상승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수석위원은 "정부가 재건축 등에 대한 규제를 쏟아내면서 새 아파트는 일종의 안전 자산이란 인식이 생겼다"며 "내 집 마련 실수요자에다 투자자까지 경합하는 상황이라 당분간 고가점 경쟁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실수요자 입장에서 청약 가점 50점 이상을 넘기기는 쉽지 않다. 30·40대 수요층일수록 더욱 그렇다.

청약 가점은 84점이 만점이다. 이 중 무주택기간(32점)과 부양가족 수(35점)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무주택기간 1년마다 가점 2점이 늘어나고, 배우자 포함 부양가족 1명당 가점은 5점이다. 대학 입학 즉시 청약통장을 만들고 30세 이후 10년 동안 전·월세만 살았던 1980년생 실수요자가 배우자와 2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 경우에 가점 57점을 부여받는다. 이조차도 '신길 파크자이' 당첨자 최저 가점에 못 미치는 숫자다.

부동산 규제 국면과 분양가상한제 영향으로 저가점자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분양가 9억원 이상 주택에 대한 중도금 대출이 막히면서 전용 85㎡ 초과 아파트에 추첨으로 당첨되더라도 자금을 마련하기 어려운 구조다. 또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가 관리로 수억 원대 시세 차익을 노리는 '로또 청약' 현상이 확산되면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반면 저출산, 고령화 등 인구 구조 변화 때문에 청약통장 증가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해석도 나온다. 청약을 할 수 있는 인구의 증가폭이 줄고 있고, 이미 가입한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연간 추이로 보면 통장 가입자 증가폭은 매년 축소되고 있다. 2014년 6월(1404만9142개)부터 2015년 6월 사이에는 청약통장 수는 17.2% 늘어났다. 2016년 6월에는 전년 대비 12%, 그다음 해에는 9.6%에 그쳤다.

[김강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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