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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뉴스+] 기무사 계엄문건에 드리워진 '이승만 독재'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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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국군기무사령부 계엄 문건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하는 가운데 계엄사령부가 헌법상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권을 무력화하려 했다는 대목이 특히 국민적 공분을 자아내고 있다. 이승만정권 시절인 1952년 부산정치파동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를 막아라!"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현행 헌법은 대통령의 계엄 선포권과 나란히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권을 명시하고 있다. 헌법 77조 1항은 ‘대통령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그런데 같은 조 5항은 또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대통령은 이를 해제하여야 한다’고 명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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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지난 20일 공개한 국군기무사령부 계엄 문건들.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 의결을 막기 위해 의원들의 국회 등원을 방해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현재 국회 재적의원이 300명이니 여야 의원 151명이 동의하면 계엄은 해제돼야 하는 것이다. 헌법은 국회가 계엄 해제를 요구했을 때 대통령이 ‘계엄을 해제할 수 있다’가 아니고 반드시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고 못박음으로써 계엄 해제 문제에서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우위를 분명히 했다.

이 점을 의식한 듯 공개된 기무사 계엄 문건은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 자체를 막는 데 초점을 맞췄다. 헌법이 정한 ‘재적의원 과반수’라는 요건에 착안해 아예 이런 요건이 성사되지 않게끔 봉쇄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문건은 일단 여당 의원들을 동원해 표결을 막는 방안을 제시했다. 한마디로 여당 의원들의 국회 등원을 차단해 계엄 해제 표결을 위한 의결정족수를 미달시키겠다는 뜻이다.

2016년 4월 총선으로 구성된 20대 국회는 출범 당시 ‘여소야대’였다. 야당 의원이 국회 의석 과반수를 차지한 만큼 여당 의원들 등원만 막아선 의결정족수 미달이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2단계로 야당 의원들의 국회 등원을 막는 방안도 검토됐다. 반정부 시위활동을 하거나 불법적인 집회·시위에 참석했다는 이유를 들어 일부 야당 의원을 구속함으로써 계엄 해제 표결을 위한 의결정족수를 미달시키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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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5월 부산정치파동 당시 계엄군이 국회의원 50여명을 태우고 국회에 등원하려던 버스를 강제로 헌병대로 끌고 가고 있다. 세계일보 사료사진


◆1952년 부산정치파동 때와 '판박이'

이는 제1공화국 시절인 1952년의 부산정치파동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이승만정부는 6·25전쟁 발발로 부산에 피난 중이었다. 전쟁 중 터져나온 군사적 무능력과 행정적 부정부패, 국민방위군 사건과 거창양민학살 사건 등으로 인해 1952년 제2대 대통령선거에서 이 대통령의 재선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제헌헌법은 대통령을 국회에서 선출하도록 규정했는데 재선을 위해서는 이런 간선제보다는 국민에 의한 직선제가 더욱 유리했다. 이에 이 대통령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추진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 대통령에 비판적인 국회는 1952년 1월 직선제 개헌안을 부결했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같은 해 5월25일 임시수도 부산을 포함한 경남·전남북 일대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이어 측근인 이범석을 내무장관, 원용덕을 영남지구 계엄사령관에 각각 임명했다. 계엄령의 목표는 처음부터 개헌에 반대하는 의원들 체포였다. 계엄 선포 이튿날인 1952년 5월26일 계엄군은 국회의원 50여명이 탄 채 국회 등원을 위해 임시 의사당으로 향하던 버스를 가로막았다. 이 버스는 국회 대신 군 헌병대로 끌려갔고 일부 의원은 ‘국제공산당과 결탁한 간첩’이란 의혹과 관련해 조사를 받았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공개된 기무사 계엄 문건은 1952년 5월 부산정치파동 당시 개헌을 하기 위해 이 대통령이 야당 의원 50명을 헌병대로 끌고 가서 집단적 테러를 가한 것과 내용이 비슷하다”며 “국회의원 무더기 체포 발상 자체가 단순하게 군에서 나온 문제인지, 아니면 누군가 윗선의 지시에 따른 것인지는 추후 정확하게 가려져야 할 내용”이라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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