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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절망·빨갱이 매도·동료의 죽음'…KTX 해고 12년, 위기의 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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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조건 속 복직투쟁 계속…'데모꾼' 비방, 집에서도 '천덕꾸러기'

김승하 지부장 "복직 실감 안나…사법농단 해결 노력 계속"

연합뉴스

KTX 해고승무원들, 경력직 특별채용



(서울=연합뉴스) 이효석 기자 = "이제 부모님께서 어디 가서 '우리 딸 철도공사 다닌다'고 말씀하실 수 있게 됐네요."

복직 결정을 받은 KTX 해고승무원들에게 지난 12년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과 위태로움의 연속이었다. 승무원들은 2006년 정규직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다 해고됐다.

해고 12년 만에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정규직으로 복직하게 된 김승하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장은 교섭 타결 이튿날인 22일 연합뉴스 통화에서 "어제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났다"며 이렇게 말했다.

승무원들은 온갖 악조건을 견디며 힘겨운 투쟁을 가까스로 이어갔지만, 밖에서는 물론 집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김 지부장은 "파업하면서 '빨갱이냐, 데모꾼이냐' 이런 얘기 많이 들었고 집에서도 천덕꾸러기 신세였다"면서 "부모님도 어디서 '딸은 뭐 하느냐'고 질문받으시면 아무 말씀 못 하셔서 죄송했는데, 이제 떳떳하게 '철도공사 다닌다' 말씀하실 수 있으니 마음이 가볍다"고 했다.

그는 "어제가 투쟁한 지 4천526일이었다. 사실 아직도 실감이 잘 안 난다. 오늘 아침에도 '서울역(농성장) 가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했다"면서 "다시 사원증과 유니폼을 받아야 실감 나려나 싶다"며 웃었다.

이어서 "(해고 승무원) 동료들과 감격에 겨워 서로 축하한다는 말을 많이 했다"면서 "천막농성이 체력적으로 아주 힘든데 노사 교섭까지 수차례 밤샘으로 하면서 다들 체력에 한계가 온 상태였다. 쓰러지는 사람 없이 일이 해결돼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복직 투쟁 12년 2개월여 내내 KTX열차승무지부의 총무로서 궂은일을 도맡았던 정미정 상황실장은 그동안 힘들었던 일을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했다.

정 실장은 "부모님께서 '고생했어' 하시더라"면서 "아쉬운 부분이 많다고 말씀드리자 '그래도 잘했어, 충분히 할 만큼 했어' 하시더라"고 말했다.

해고승무원들에게 지난 세월은 어느 한순간도 힘들지 않고 위기가 아닌 때가 없었다. 이들은 2008년 한여름에 40m 높이 서울역 철탑에 올라 20여일간 고공농성을 벌였고, 2015년에는 대법원 판결에 좌절한 동료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을 지켜봐야 했다.

정 실장은 "13년에 걸친 투쟁 매 순간순간이 고비였다. 늘 눈앞이 벽으로 막힌 기분이었다"면서 "동료들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사법 농단' 사태가 조금도 해결되지 않았고, 아직 코레일관광개발에 있는 승무직을 코레일로 가져오는 작업도 해야 한다"면서 "아직 할 일이 많아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각오를 다지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앞으로 바라는 점을 묻자 김 지부장과 정 실장 모두 "우리 말고도 정리해고되신 분들, 장기 투쟁 중인 분들이 많다"면서 "우리를 보고 희망을 품으셨으면 좋겠다. 얼른 복직되시도록 우리도 계속 함께 싸우겠다"고 말했다.

김 지부장은 2015년 대법원 판결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승무원을 언급하며 "사법 농단이 명확히 규명되도록 힘을 보태서, 사법부가 신뢰를 회복하는 날 그 친구 앞에 다시 당당히 서고 싶다"고 덧붙였다.

정 실장은 "새 정부 들어서 비정규직이 정규직 전환된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 노동자분들 만나보면 자회사를 통한 고용이어서 달라진 게 없다고들 하신다"면서 "정부가 더 진정성 있는 노동 정책을 펼치도록 우리가 발판이 되겠다"고 말했다.

hy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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