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19 (화)

[밀착마크]이인영, "586이 기득권? 칼자루 쥐어본 적 없다"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동대구역 철길엔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역사(驛舍)를 나와 햇빛을 마주하자 “헉”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헛웃음이 나왔다. 18일 대구의 최고 기온은 섭씨 35.6도.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란 별칭답게 이날 대구는 전국에서 가장 뜨거웠다.

중앙일보

KTX에서 내리기 전, 일정을 확인하는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얼굴도 살짝 달아올랐다. 그는 지방선거 때 대구에서 당선된 이들을 상대로 특강을 하러 내려온 참이었다. 몇몇 대구시당 관계자들과 1인분에 7000원 하는 ‘복매운탕’으로 점심을 먹은 뒤 강연 장소인 YMCA 강단에 섰다. 그때까지 그는 감색 양복 상의를 벗지 않았다.

강연 시작 전, “상의를 벗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청중이 웃으며 “네”라고 하자 그는 고개 숙여 인사를 마친 뒤 재킷을 벗고 셔츠 소매를 걷었다. 이후 30여분간 국회의 개헌 논의 과정, 전망을 설명했다. 그는 국회 개헌특위 여당 간사를 지냈다.

“지금은 일하기 시작할 때다. 경기는 하강 국면이고 2~3년 후면 침체기일 수 있다. 이런 국면에서 개헌을 얘기하면, 모든 걸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된다.”

중앙일보

대구지역 당선자들을 대상으로 개헌을 주제로 강연하는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청중은 열심히 적었고, 때론 고개를 끄덕였다. 강연 중 웃음은 단 한 차례도 나오지 않았다. 강연을 마칠 즈음 돼서 이 의원이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에 출마한다. 응원해 달라”고 머쓱하게 얘기하자 비로소 웃음이 터졌다.

앞서 서울에서 대구로 향하는 KTX에 나란히 앉아 1시간 40분가량 묻고 답했을 때도 그는 시종일관 진지했다.



Q : 지방선거 압승은 민주당의 공인가, 문재인 대통령의 공인가.

A : “‘잘하는 문재인 대통령 힘 실어주자’와 ‘평화를 선택하자’, 그리고 ‘홍준표 전 대표와 자유한국당은 좀 찌질하다’는 세 가지 변수가 대승을 안겨줬다.”


Q : 민주당은 역할이 없었다?

A : “이제 민주당 차례다. 다음 총선 때면 대통령도 평가받는 위치로 바뀐다. 그런데 세계 경제가 하강기로 들어가고, 구조적으로 더 어려워져 있을 상황이다.”


Q : 문 대통령과 인연이 있나.

A : “(고개를 끄덕이며) 그런 편이다. 사적으로 대통령 되기 전에 여러 번 만난 사이다. 공적으로는 개헌 논의할 때 보조를 같이 맞췄으니 충분한 신뢰는 있다.”


Q : 지연이나 학연은 없어도 업연(業緣)은 있는 셈이네.

A : “내가 측근이나 친문으로 분류되는 사람은 아니니까. 그런데 친문이냐 아니냐를 딱 나눠서 볼 필요 있나. 대통령 되시기 전에는 소주도 같이 좀 마신 편이다. 코드가 맞았는데 나보다 품성이 좋더라. 더 담백하고, 경청은 하되 주관은 확실한 분이더라.”


Q : 소주 한 잔 하고 싶겠다.

A : “에이, 포기하고 산다. 대통령 후보 되신 이후부터는. 후보 되기 직전 개헌을 화두로 한 병쯤 서로 마신 뒤로는 못 했네.”


이 의원은 향후 2년간 집권 여당을 이끌 당 대표를 선출하는 8ㆍ25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공식화한 상태다. 2015년 2월 전당대회 때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는데, 그때는 3위였다. 1위가 문 대통령이었다.



Q : 전당대회 전망 좀 해보자.

A : “친문이냐 비문이냐 하는 구분을 없애버려야 한다. 당이 어떤 가치와 방향으로 나갈 건지 치열한 논쟁이 있어야 한다.”


Q : 형이상학적이다. 사람들은 이런 걸 안 좋아한다.

A : “2010년엔 ‘복지를 통한 진보의 길’이란 화두가 있었고, 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의 논쟁으로 번졌다. 이런 논쟁이 필요하다.”


Q : 이번엔 뭐가 화두가 되어야 하나.

A : “선생님은 괜찮고 전교조는 안 된다는 식의 편견을 넘어서는, 노동이 있는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대기업의 약탈적 마진을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에게 나눠줘야 한다. 적어도 경제 분야에선 남북이 하나 되는 쪽으로 나가야 한다.”


Q : 전당대회 주자들 모두 ‘70만 권리당원’을 얘기한다.

A : “권리당원이 많아지는 건 바람직하다. 더 성숙하고 깊이 있는 토론이 벌어지면 좋은 거다. 다만 ‘너는 친문재인이냐 아니냐’ 그런 거로만 하지 말고 ‘다 문재인이다’는 전제로 향후 20~30년을 어떻게 갈 것인가를 논의해야 한다.”


이 의원이 애착을 갖고 활동하는 의원 모임이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다. 고(故) 김근태 전 의원을 중심으로 한 개혁 성향의 의원 모임으로, 노무현 정부 당시 집권 여당의 주류였다. 여기에 속한 의원들은 소위 ‘GT’계라고 불린다.



Q : 권리당원 중 다수는 이른바 ‘문파’들이고 이들은 민평련을 좋아하지 않는다.

A : “민평련 안에서 문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많다. 줄을 안 선 사람은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데 김근태 선배 가신 이후 ‘누구를 위한 정치’는 안 한다는 생각이어서 그렇게 안 했을 뿐이다. 문 대통령의 복심이라는 노영민 주중 대사 같은 경우도 민평련이다. 편 나누기 좋아하는 일부의 언어도단이다.(※조용히, 조곤조곤 얘기하던 그의 목소리가 이 대목에서 조금 커지고 빨라졌다.) 권력이 어디에 있는지는 나도 안다. 당시 누가 1등 할지 나도 알았고. 그걸 몰라서 안 한 게 아니다. 권력을 탐하는 건 내 정치의 과제가 아니다. 끊임없이 진보의 가치를 추구하는 게 내 과제다.”




중앙일보

80년대 전대협 활동 당시의 이인영 의원. 전대협 1기 의장을 지낸 그는 대표적인 '운동권'이자 '586' 정치인이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의원은 우리나라 첫 ‘세대 담론’의 주인공인 386세대의 대표 격이다. 386들은 시간이 흘러 586이 됐다. 50대면, 적어도 세대 상으론 우리 사회의 주역이고 역할이 많다. 그래서 물었다.



Q : 586은 기득권이 됐다는 목소리가 크다.

A : “겸손하게 경청해야겠지만, 기득권이란 비판이 진심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기성세대는 맞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비정규직과 최저임금을 얘기한다.”


Q : 누렸을 뿐 후진을 안 키웠다는 비판도 있다.

A : “우리가 직접 칼자루를 쥐어 보지 못했다.”


Q : 칼자루는 누가 쥐나. 당 대표가 쥐나.

A : “그렇다. 그런 면에서 세대교체가 안 됐다. 후배들을 진출시키려 해도 최종 결정은 우리 몫이 아니었다. 언제든 비켜줄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우리의 그것보다 더 좋아서 밀어낸다면 기쁠 거다. 그런데 무슨 권력 싸움하듯 할 문제는 아니다.”


Q : 586이 우리 정치의 주역이 아니라는 건가.

A : “문재인 정부는 ‘3철(양정철ㆍ이호철ㆍ전해철)’의 정부일 수는 있지만 586의 정부는 아니다. 지금은 우리 세대의 맛을 보여주고 있는 거다. 더 담대한 평화 통일, 시장을 하나로 통일하는 정도까지는 우리 세대가 해야 할 일이다.”


중앙일보

서울시청 앞 서울 광장을 찾은 이인영 의원. 왼쪽은 그와 함께 586을 대표하는 정치인인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대화를 마무리할 무렵, 그의 휴대전화가 눈에 들어왔다. 부인 이보은(50)씨 사진이 배경화면이었다. ”앳돼 보인다“고 하자 표정이 밝았다.

“작년 요맘 때 심장 마비가 와서 한 달쯤 있다가 깨어났다. 그 후 같이 외출했을 때 찍은 사진인데, 이렇게 예뻐졌더라. 그런데 1년쯤 지나니 다시 예전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웃음) 지금은 ‘마르쉐’라고 농부 시장 관련 활동을 한다. 나보다 10배는 좋은 사람이다.”

권호 기자 gnomon@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