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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역할 뒤바뀐 슈퍼히어로 가족의 ‘생활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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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인크레더블 2>

픽사의 ‘키치’스러운 애니메이션

14년만의 속편에도 기발함 여전

‘모텔 난민’ 전락한 히어로 가족

워킹맘·육아대디 설정에 공감

1편보다 커진 액션의 강도에도

예측 가능한 스토리 전개는 흠

18개월짜리 막내 히어로 ‘잭잭’

기획의도 살려낸 속편의 수확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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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유행했던 ‘키치’라는 단어를, 그 유행에 단단히 한몫했던 인물인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똥(흠. 죄송하다)의 존재에 대한 부정.

<인사이드 아웃>과 함께 픽사 최고의 ‘성인에게도 걸작’으로 손꼽힐 <인크레더블> 1편의 핵심 중 하나는 바로 이 ‘똥’에 대한 긍정이다. ‘똥’이라는 단어가 함축하고 상징하는 것, 즉 살아가려면 누구든 매일매일 하지 않을 수 없지만 굳이 영화의 소재로까지 삼고 싶지는 않은 것에 주목한 점, 그리고 이를 키치 중의 슈퍼키치라 할 슈퍼히어로 장르에 성공적으로 접목해낸 점이야말로 <인크레더블> 최고의 기발함 및 쾌감이었다 하겠다.

무려 14년 만에 돌아온 2편에서도 변함없이 이 포인트가 유지되고 있다. 단, 성역할을 서로 바꿔서. 즉, 바깥양반-안주인 구도에서 워킹맘-육아대디의 구도로.

영화는 1편이 엔딩부에 던진 속편용 밑밥인 두더지형 나쁜 놈 ‘언더마이너’(그리고 그의 ‘제트 모구라 탱크’풍의 지하굴착 드릴전차)와 인크레더블씨 가족의 대치상황에서 다시 출발함으로써, 14년 전 밑밥을 회수해주는 기초상도의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준다.

워킹맘과 육아대디

인크레더블 가족과 언더마이너가 도시 하나를 거의 들었다가 놓으며 벌이는 액션의 규모와 화려함은 1편의 도입부 액션을 능가하는데, 그러나 화려액션도 잠시. 이 대규모의 액션 끝에 인크레더블씨 가족은 또다시! 기물파손 및 공공민폐의 멍에를 쓰고 또다시! 슈퍼히어로 행각 금지령에 발 묶인다. 게다가 이번엔 마땅한 직업도 없이 2주간 체류가 허락된 모텔 방에서 온 가족이 지내야 하는 신세, 즉 슈퍼히어로 난민 신세가 된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이런 열악한 상황은 물론 본격적인 사건 전개를 위한 발판일 뿐. 위기의 인크레더블 가족에게 통신재벌 남매가 접근해 오고, 엄마인 ‘일래스티걸’에게 그녀를 원톱으로 하는 ‘슈퍼히어로 행각 1인칭 생중계’를 제안한다. 물론 막대한 연봉과 함께.

바로 이것이 아빠 인크레더블이 가정남편(하우스 허즈번드)으로서 집안일과 아이들을 돌보는 임무를 담당하게 된 사연인바, 이렇듯 1편과 정반대로 뒤바뀐 부부의 역할은 2편의 주요 개그 포인트로 적극 활용되고 있다. 즉, ‘그 정도도 못할쏘냐!’라며 기염 화끈하게 토하고는 집안일과 육아에 건장한 역삼각형 몸을 던진 인크레더블씨는, 딸의 연애 문제에 어설피 개입했다가 원금조차 회수치 못한 채 차갑게 내쳐진다든지, 아들의 수학교과서를 앞에 두고 ‘수학이 언제 이렇게 변했냐?’식의 면피 방어막을 치는 등, ‘지구 구하기보다 더 어려운 아이 키우기’를 몸소 보여주며 이 시대 육아대디들의 심금을 울린다.

그중 백미는 눈 밑 짙게 다크서클 내려앉은 인크레더블씨가 가히 육아의 꽃이자 정수라 할 기저귀형 영유아인 막내 ‘잭잭’을 돌보려 동분서주 좌충우돌 분골쇄신하는 장면일 텐데, 잭잭을 재우려고 책 읽어주다가 아이보다 먼저 곯아떨어져 버리는 인크레더블씨의 무너짐은 예고편을 통해 익히 예습한 것임에도 다시금 절절하다.(이런 걸 한번이라도 실제로 경험해본 관객에겐 특히나)

한편으로, 이번 2편에서 본격 사회생활 및 액션생활에 돌입한 일래스티걸 역시, 1편에서 인크레더블씨가 잠시 맛보였던 폭주열차 세우기 액션의 본격판을 전개하는 다이내믹한 와중에도 “엄마, 내 농구화 어디 있어요?” 같은 전화를 받는 등, 워킹맘의 일상다반사를 대변해주고 있다. 이렇듯 그 어떤 슈퍼파워에도 육아중력권을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인크레더블 부부의 모습은, 아니, 그에 앞서,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아이들과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는 일래스티걸의 모습은, 육아 부담(금전적/시간적/육체적/정신적)부터 사교육 부담, 그리고 이미 사회시스템으로서 고착되어가고 있는 불공정경쟁의 부담까지 모든 부담을 부모 개개인의 짐으로 떠안아야만 하는 한국 사회에서 아이를 키워야 하는 부모들에게는 그야말로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적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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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눈치채셨겠지만, 큰 틀로 보면 2편이 보여주는 이런 설정과 전개는 부부의 남녀 역할이 바뀌어 있을 뿐 거의 1편과 다르지 않다. 우선 두 주인공이 속편에서 서로 역할을 맞바꾸는 ‘역할 스와핑’ 자체부터가 익숙함과 새로움을 동시에 취하려는 할리우드 속편들이 흔히 보여온 수법이다. 더불어 슈퍼리치의 유혹과 그 달콤함(높은 수입을 보장하는 화려한 일자리, 사회적 자부심, 호화 저택 등등), 그리고 결국 비뚤어진 나쁜 놈 행각을 통해 그것의 허망함(그리고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이 드러나는 줄거리만으로도 2편은 1편의 큰 흐름을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이는 물론 모든 할리우드 ‘가족’ 액션들의 표준사양이기도 하다.

더불어 2편이 보여주고 있는 왕년의 007, 그러니까 숀 코너리가 007이던 시절인 1960년대 007 시리즈의 감수성 재현 및 오마주(호화 보트 위의 액션, 수륙양용 특수차량, 브라스를 강조한 빅밴드 재즈), 그리고 보통의 픽사 애니메이션에선 찾기 힘든 어두운 미스터리 또는 누아르적 요소의 가미 등등 역시 이미 1편이 선보였던 것들이다.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것인가. 물론 그렇다. 2편에서 새로이 등장한 일래스티걸의 전용 바이크를 이용한 깜짝 고무줄 액션은 매우 웃기고도 기발하며, 1편과는 달리 숨어 지내던 또 다른 슈퍼능력자들이 대거 등장하여 액션 운동장의 면적을 넓히면서, 액션의 강도와 규모를 더욱 끌어올린 것도 2편의 강점이다. 아니, 그 이전에, 슈퍼히어로+육아일상+007+누아르+가족 모두를 아무런 위화감 없이 공존시키는 <인크레더블>만의 세계 자체부터가 놀라운 것이다. 여전히.

하지만 안타깝게도 2편은 예측 가능하다. 휴가철에 발맞춰 여행적 메타포로 말하자면, 1편이 코너를 돌면 뭐가 나올지 전혀 알 수 없는 구시가지의 아기자기한 골목을 탐험하는 것 같았다면, 2편은 앞이 훤히 보이는 신시가지의 뻥 뚫린 길을 따라 일직선으로 걷는 느낌에 가깝다.

그중 가장 예측 가능하고도 평이했던 대목은, 모든 할리우드 액션의 성공의 분수령인 나쁜 놈이다. 배후에서 얼굴 없이 알 수 없는 꿍꿍이로 인크레더블씨를 점점 덫으로 끌고 들어가서는, 열등감과 질투심, 그리고 정신적 미숙함의 끝장을 보여줬던 1편의 나쁜 놈 ‘신드롬’은 그 자체로서도 상당히 기발했지만, 미숙한 정신이 과학기술 및 돈과 결합했을 때 가져오는 천박한 결과에 대한 비유로서도 무척 예리했다. 그러나 2편의 나쁜 놈 ‘스크린슬레이버’는 등장과 동시에 동기부터 배후까지 거의 모든 걸 예측해낼 수 있다. 물론 스크린슬레이버가 세상을 향해 발표하는 ‘나의 나쁜 놈질에 부쳐’ 성명서는 시니컬하기는 하나 상당히 예리하고도 설득력 있는지라, 솔직히 그 성명의 내용만 놓고 보면 이게 나쁜 놈의 성명서인지 착한 편의 성명서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그리고 영화 속 1960년대적 분위기를 한껏 드높이는 옵아트(Op art)스러운 나쁜 놈의 최면 영상 비주얼 역시 매우 세련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나쁜 놈은 우리의 예측을 벗어나기에는 역부족이다. 더구나 나쁜 놈이 나쁜 놈질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 핵심장치 역시 핵심장치치고는 너무 허술했고 말이다.

그리하여 2편의 가장 큰 수확은 결국 18개월짜리 막내 아기 ‘잭잭’이지 싶다. 잭잭은 주최 측의 공감형성-일상위안이라는 기획 의도에 충실한 것 외에도, 캐릭터 자체로서 2편의 중추가 되고 있다. 사춘기 맏딸 ‘바이올렛’의 투명인간화+접근금지 방어막 초능력처럼, 난동 치는 남(男) 초딩 둘째 아들 ‘대쉬’의 고속이동 초능력처럼, 잭잭에게는 영유아 고유의 특성을 그대로 가져온 초능력이 있다. 예컨대 천사에서 악마로의 순간변신 같은.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니다. 그런 잭잭의 대표 장면이라 할 ‘너구리 vs 잭잭’ 장면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듯, 이는 1편에는 없던 2편만의 독자적 액션이고, 이는 충분히 성공적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불편한

뭔가. 결국 결론은 아이들이 우리의 미래이자 구원? 그렇다. 그리고 이는 슈퍼히어로가 뛰노는 세계만이 아니라 우리 세계의 결론이기도 하겠다. 물론 ‘태생부터 슈퍼한 인간’의 존재를 확정지음과 동시에 그들의 우월함에 대한 존중에만 초점을 맞춘 1편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2편의 메시지는 여전히 불편함과 동시에, 우리의 미래에 전혀 도움 안 되는 것이라 사료되긴 하지만 말이다.

덧붙여서, 2편에서 유일하게 14년의 세월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은 인크레더블 부부 역을 맡은 배우들의 음성이다. 특히나 <빅 식>에서의 홀리 헌터를 보신 관객이라면, 일래스티걸의 목소리 위에 그녀의 얼굴이 자꾸 겹쳐 보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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