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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페미니스트는 왜 혐오의 대상이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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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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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 남성들 사이에서 페미니스트에 대한 반감은 수위가 높아졌다. 인터넷 곳곳의 남성 중심(남초) 커뮤니티에서 페미니스트 관련 글의 대부분은 비판적인 내용이다. 혜화역 3차 시위에서 터져나온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재기해’ 발언이나, 극단주의 성향의 웹사이트 워마드에 올라온 소위 임신중절 인증샷 사건 등으로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반감은 커졌다. 혜화역 3차 시위 이후 워마드가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기 이전에도 페미니스트는 이들 남성에게 혐오의 대상이었다. 올해 4월 한 게임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에서 페미니스트는 한남(한국남성)과 갓양남(GOD+서양남자)을 구별하는 인종차별주의자, 가족마저 남자라는 이유로 비난하는 패륜아로 묘사된다. 페미니즘을 주체사상에 견주는 글에 80명 이상이 추천 버튼을 누르기도 했다.

“워마드는 페미니즘 방식 중 하나”

실제 남초 사이트를 이용하는 남성들의 생각을 들어봤다. 남성들은 페미니즘 운동의 방식을 가장 먼저 문제삼았다. 스포츠, 게임 관련 커뮤니티를 자주 이용하는 30대 자영업자 ㄱ씨는 “혜화역 시위에서 여성들이 몰카범죄에 대해 분노하는 것에는 어느 정도 공감한다. 하지만 대통령이 홍대 몰카사건 수사가 편파수사가 아니라고 말한 것은 상식적인 말이다. 그 말을 했다고 물에 빠져 자살하라는 뜻을 가진 ‘재기해’ 구호를 외친 것만 봐도, 페미니즘이 잘못 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30대 직장인 ㄴ씨는 “‘문재인 재기해’를 분명히 외쳐 놓고선 언론에 나와서는 ‘문제를 제기한다’는 뜻이었다는 식으로 변명을 하는 걸 보고 기가 찼다”고 말했다.

페미니스트 혐오는 인터넷 공간의 메아리에만 그치지 않는다. 페미니스트라는 의혹을 제대로 ‘해명’하지 못하면 일자리를 잃기도 한다. 2년 전 한 성우는 메갈리아 티셔츠 인증샷을 올렸다가 게임 녹음에서 하차당했다. 해당 게임사를 비판한 정당에나 언론에는 어김없이 ‘메갈○○’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일부 게임사는 ‘불법이 아닌 이상 개인적 활동엔 관여하지 않는다’며 남성 소비자들의 요청을 무시했지만, 많은 게임사들은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주장을 받아들여 페미니스트로 의심받은 이들의 목소리나 원화를 게임에서 제외시키기도 했다. 심지어는 ‘메갈 게임 목록’이라는 문서가 게임 커뮤니티에 퍼지기도 했다.

페미니즘 활동가들은 페미니스트에 대한 불공평한 낙인찍기가 벌어지고 있다고 항변한다. 불꽃페미액션의 활동가 선물씨는 혜화역 시위에서만 극단적 구호가 나온 것처럼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 시절 촛불시위 때도 단두대 처형 퍼포먼스 등 과격한 행동이 많았지만 지금과 같은 반응이 아니었고, 오히려 정의로운 일처럼 인정을 받았다. 이번에 문재인 대통령을 욕했다고 해서 ‘시위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네티즌들의 반응은 여성들의 주장을 듣고 싶지 않으니 그에 대한 핑계를 대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물씨는 모든 페미니스트들이 극단주의적 방식에 다 동의하는 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페미니즘엔 다양한 방식이 있고 워마드는 그 중 하나일 뿐이다. 저희가 그들의 의견에 전부 동의하는 건 아니다. 혜화역 시위 카페 주소가 ‘홍대남’인 것 역시 몰카 피해자에 대한 폭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위의 방식이 아니라 내용을 봐야 한다며, 한국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의 인권이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남성 입장에서는 자기 권리를 빼앗긴다고 생각해서 페미니즘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페미니스트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기 위해 여성인권을 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남녀 인권은 ‘기울어진 운동장’인가

페미니스트를 싫어하는 남성 네티즌들은 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전제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김수아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는 지난 4월 국가인권위 토론회에서 남성들이 페미니즘에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김 교수는 인터넷 커뮤니티나 뉴스 댓글란 등에는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기는커녕 오히려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담론이 우세하다고 분석했다. 미투운동 등 페미니스트들이 제기하는 운동에서 가해자 위치에 있는 것은 자신들이 아니라 ‘소수의 권력자 남성’이며, 자신들은 여성들에 비해 딱히 우월한 입장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남성 내부의 서열경쟁에서 밀린 남성들이 ‘페미니즘은 여성들이 우리를 밟고 올라서려는 주장’이라고 본다는 게 김 교수의 분석이다. 선물 활동가는 “우리의 주장에 그들이 무조건 공감하라는 게 아니다. 사이버 성폭력 문제에 대해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해보라는 취지다. 과격하게 해야 좀 더 우리의 목소리가 저들에게 잘 들린다”고 말했다.

워마드의 공격대상은 모든 남성이다. 장애인, 성소수자 등 사회적으로는 소수자이더라도 남성으로 태어난 이들에 대해서는 거침없는 혐오발언이 나온다. 워마드의 혐오발언을 지켜보는 남성들은 일반적 의미의 페미니스트와 극단주의 워마드가 다른 존재가 아니라 한 몸이라고 보고 있다. ㄱ씨는 “워마드가 페미니즘 안의 과격한 한 분파라는 것을 알지만, 일반적으로는 페미니스트와 메갈, 워마드는 같은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워마드가 아닌 페미니스트도 워마드와 한 몸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페미니스트 전반에 대한 거부감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무조건 정당한 사회운동은 없는데, 같은 ‘페미니즘’이라는 명목으로 침묵하고 있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ㄴ씨는 “‘여자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메갈리아 티셔츠 문구)란 말의 의미는 참 좋다. 앞에서는 좋은 말을 내세우지만 뒤에선 ‘한남충 재기하라’ 등 남성에 대한 혐오적인 발언을 한다. 왜 그런 표현을 쓰냐고 하면 여성차별주의자로 단정을 하니 지금은 아예 페미니즘을 갖고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싫다”고 말했다.

윤김지영 교수는 “워마드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고심하고 있다. 전체 페미니즘에서 워마드가 과잉 대표되고 있는데 언론에서 워마드의 자극적인 콘텐츠를 가지고 보도하는 것도 큰 기여를 했다. 저와 같은 기성 페미니스트들이 역할을 못한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윤김 교수는 학계 페미니스트 중에서는 급진적인 의견을 가진 편이다. 윤김 교수는 워마드식 극단주의가 페미니스트 커뮤니티에서 힘을 얻은 사건으로 지난해 4월 2030 페미니스트 캠프에서 벌어진 성추행 의혹사건을 든다. 당시 캠프에 참여했던 트랜스젠더 여성 ㅇ씨가 캠프에 참여한 다른 (생물학적) 여성들에게 성추행을 했다는 논란이 있었다. ㅇ씨가 자신에 대한 의혹을 성소수자 혐오로 규정하고 반발하자, 페미니스트 커뮤니티 안에서도 생물학적 여성을 중심으로 하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것이다. 혜화역 시위 주최 측도 생물학적인 여성들만 집회에 참여할 수 있다고 공지한 바 있다. 윤김 교수는 “성소수자 남성 그룹에도 남성 중심적인 문화와 여성혐오가 있을 수 있다. 그에 대한 정당한 분노와 비판에 대해서는 기성 페미니스트들이 힘을 실어주고,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에 대해서는 적절히 중재를 했었어야 했다”고 말했다.

손희정 문화평론가는 페미니스트에 대한 반감은 인터넷 공간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청소년들 사이에서 ‘메갈 찾기’와 같은 일들이 꾸준히 벌어진다는 것이다. 손 평론가는 안티페미협회 등의 페미니스트에 대한 비난이 10대 남성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남성 청소년들이 페미니스즘 활동가들의 SNS에 찾아와서 악플을 달거나 혐오발언을 하는 일들도 있다고 한다. 손 평론가는 “안티페미니스트들이 ‘여성들은 자기들 의무는 하지 않고 권리만 말해서 이기적이다’라는 취지의 말들이 청소년들에게 생각보다 큰 영향을 준다. 심지어 성폭력 예방교육을 받으러 온 엄마에게 어린 아들이 ‘엄마도 혹시 메갈이냐’고 묻는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오프라인에서의 교육을 통해 조금씩 현실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봤다. 10대 여성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겪은 여성차별 안에서 현실을 생각하고, 반면 10대 남성들은 성차별로 인한 혜택은커녕 오히려 역차별을 받았다는 식으로 자기 속에서 현실을 구성한다. 교육을 통해 청소년기부터 남성, 여성 공통의 이해기반을 늘려가야 서로 간에 대화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게 손 평론가의 생각이다. 그는 “공교육뿐만 아니라 현실의 먹고 사는 문제와 불평등도 바뀌어야 한다. 당장 먹고 살기가 어렵다면 아이들을 앉혀 놓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식의 교육을 하는 건 먹혀들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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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공간에서도 청소년들의 반감

물론 단기간에 페미니스트에 대한 혐오정서가 바뀌기는 어려워 보인다. 자영업자 ㄱ씨는 페미니스트들이 과거 진보세력이 ‘종북좌파’ 프레임에 빠진 것과 마찬가지 상태라고 봤다. 그는 “오랫동안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진보세력은 ‘종북좌파’로 인식되어 왔다. 종북좌파 프레임이 잘못됐다는 걸 아는 사람들도 그 프레임을 극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페미니즘이 반인륜적인 혐오에 대해 분명히 말하지 않고 묵시적으로 동조하는 것처럼 보이는 한 젊은 남성들이 무의식 속에 갖고 있는 페미니즘에 대한 이미지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김지영 교수는 페미니스트에 대한 혐오가 ‘예전부터 있었던 일’이라고 봤다. 혜화역 시위가 기존 질서를 흔들면서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들도 불편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윤김 교수는 “오래전부터 페미니스트라는 말은 멸칭으로 사용되어 왔다.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들 사이에도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이 있다. 오랫동안 꼴페미가 아닌 개념녀가 되길 요구받고, 엄마로서의 모성본능을 요구받으며 살아왔는데 페미니즘은 이런 기존 질서를 부정한다. 여성들에게도 페미니즘이 불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이버 성폭력이라는 단일 의제로 여성이 주도하는 시위에 6만명이나 나온 것 자체가 기존 체제엔 위협적이다. 특정 용어를 갖고 혜화역 3차 시위를 공격하고,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을 정당화시키는 것은 이후 시위에 참여하려는 이들에게 심리적 부담을 안기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불꽃페미액션 활동가 선물씨는 페미니즘이 말하는 미러링의 취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설명했다. 미러링은 우리 사회에 거울을 비추는 행위이며, 그 거울에 오물이 비친다면 거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문제라는 것이다. 남성들이 말하는 ‘운동의 방식’에 대해서는 똑 부러지는 대답은 듣기 어려웠다. 여전히 남성들과 페미니스트들의 인식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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