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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디지털스토리] 폭염에 차량 온도 70도까지…아이 방치 잠깐도, 그늘도 안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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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뜨거운 차량 방치돼 사망한 어린이, 연평균 37명

'이 정도면 괜찮겠지'하는 안전 의식 결여가 문제

"학원 교사·부모·운전기사 모두 크로스 체크해야"

잇단 어린이집 차량사고 "솜방망이 처벌도 개선해야"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 = A(34) 씨는 며칠 전 일만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 5세 아들을 승용차에 태우고 외출했던 날이다. 문제는 잠시 은행에 볼일이 생겨 아이를 차에 두고 왔을 때 생겼다. 뒷좌석에서 얼굴이 상기된 채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던 아들을 발견하고 근처 병원으로 옮겼다. 다행히 위험한 상태는 아니라 간단한 치료만 받고 퇴원했다. 그는 "10~20분 정도고, 그늘에 주차해서 괜찮을 줄 알았다"며 "그 이후로 아이를 차에 두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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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이 이어지면서 차 안에 남겨진 아이들이 정신을 잃거나 다치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한 연구 조사에 따르면 최근과 같은 무더위에 주차해 놓은 차량 내 온도는 최고 70도 가까이 치솟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해당 사고를 방지할 제도적인 마련과 함께 자동차 기술 지원 등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개선할 문제점은 또 있다. '잠깐은 괜찮겠지' '창문을 열어 뒀으니 됐다'라고 여기는 안전 인식 부재다.

◇ 본격 무더위…차량 내 아이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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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계, 안전벨트, 연료계… 수많은 체크 사항이 차량 계기판에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뒤에 있다."

미국 비영리 단체 '키즈 앤드 카즈'(kids and cars)가 차량에 방치된 채 사망한 아이들을 방지하자는 취지로 발표한 캠페인 문구다.

이 단체에 따르면 미국에서 뜨거운 차량에 방치돼 사망한 어린이는 연평균 37명에 달한다. 2015년 25명, 2016년 39명, 2017년 43명 등 최근 들어 매년 증가하는 모양새다. 2000년대 들어 지난해까지 이와 같은 사고로 사망한 어린이는 700명에 육박한다.

우리나라 역시 폭염 속 아이가 홀로 차에 갇혀 사망하는 사고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지난 17일 경기 동두천시에서는 4세 여아가 통학 승합차에 7시간 방치 됐다 사망했고, 4일에는 경남 의령군에서 3세 남아가 외할아버지 차량에 4시간가량 방치돼 숨졌다. 2016년 7월 광주광역시에서도 4살 아이가 통학버스에 8시간 정도 방치됐다 구조됐으나 2년이 지난 현재도 의식불명 상태다.

어린이 통학 차량과 관련해 하차 후 차량 내부 점검 등을 의무화한 일명 '세림이법'이 시행된 지 3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차량 내에 방치된 채로 사망하는 아이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2일에는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이 차량 등에 아동을 홀로 방치하는 것을 금지한 아동복지법 개정안을 발의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 뜨거운 여름날, 차 안은 더 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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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3일 이후로 서울 일 최고 기온은 30도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19일에는 34.1도까지 올랐다. 이런 날씨에 차량 내 온도는 얼마나 상승할까.

지난해 5월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학교 연구진이 여름철 차량 내 기온 변화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바깥 온도보다 자동차 내부 온도는 2배 가까이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령 외부 기온이 37도 이상인 날, 햇볕 아래에 차량을 1시간가량 정차해 뒀다면 앞 열 대시보드는 69.4도, 운전대는 52.8도, 앞 열 좌석은 50.6도로 올라갔다. 만약 뒷좌석에 어린이가 탔다면 체온은 39.1도까지 올라간다고 연구진은 발표했다.

그늘에 주차했다고 해서 안전한 것은 아니다. 앞 열 대시보드는 47.8도, 운전대는 41.7도 등으로 햇볕 아래보다는 낮았다. 그러나 뒷좌석에 탑승한 어린이의 경우는 38.2도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연구진은 "뜨거운 차량에 방치된 아이는 땀 분비가 빨라진다"며 "이 때문에 차량 내 습도가 높아지면서 숨쉬기 어려워지는 상황에 닥친다"고 분석했다.

미국 뉴욕주의 아동가족서비스실 측은 "유아나 어린이들은 열기에 민감하며 뜨거운 차량에 방치했을 경우, 체온이 성인보다 3~5배 빨리 올라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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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정도면 괜찮겠지'라는 안전 의식 부재가 사고 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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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자 이 모(33) 씨는 종종 반려견과 함께 드라이브하는 것을 즐긴다. 이 씨는 "동물 출입금지를 써 붙인 카페도 많아 차에 두고 내릴 때가 있다"며 "그늘에 세워 두고 창문만 조금 열어 두면 괜찮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각종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잠깐이라도 위험하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뜨거운 차량에서 아이가 사망하는 사고가 잇따르자 2015년 7월 "열사병은 구름이 낀 날이나 낮은 온도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며 "단 10분 만에 자동차 실내 온도는 20도 상승할 수 있으며, 창문을 내려도 쉽게 식힐 수 없다"고 경고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 교수는 "여전히 '창문만 조금 열어 놓으면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는 운전자가 많다"며 "기온이 상승하는 속도만 조금 늦춰질 뿐 위험한 건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반려견이나 아이 등 살아있는 생물은 무조건 차량에 혼자 남겨 두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운전자의 안전 인식 부재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호주 최대 자동차 보험회사 NRMA는 차량 내 아이 사망 사고를 막기 위해서 두 가지를 당부했다. 차를 잠시라도 떠나야 할 경우도 아이들을 데려가고, 차를 베이비시터 대용으로 여기지 말라는 것이다.

실제로 카즈 앤드 키즈가 1998년부터 2015년까지 미국에서 발생한 차량 내 아이 방치 사건을 토대로 조사한 결과, 보호자가 아이 홀로 차량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경우가 13%에 달했다.

◇ 차 안에 아이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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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기술적인 지원과 함께 어린이집 승합차의 경우, 운전기사에 대한 교육 강화가 급선무라고 지적한다.

김진형 도로교통공단 교수는 "어린이집 통학버스 운전기사에 대한 관리가 열악하다"며 "운수업자나 화물차 기사 등은 1년에 1회 이상 의무적으로 안전 교육을 받지만, 어린이집 운전기사는 2년에 1번이 고작이며 이마저도 관리가 부실해 건너뛰는 것이 태반"이라고 말했다.

박용훈 교통문화운동본부 대표 역시 "어린이집 승합차 운전기사는 어린이 생명을 다루고 있다는 소명 의식을 가져야 한다"며 "이들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안전 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재경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에서는 스쿨버스가 부모의 승용차보다 더 안전한 교통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우리도 유치원 승합차나 스쿨버스가 가장 안전한 교통수단이 되도록 법 제도를 강화해야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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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장치 마련에 대한 목소리도 높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슬리핑 차일드 체크'(Sleeping Child Check) 제도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 시행되는 이 제도는 통학차량 맨 뒷자리에 버튼을 설치해 운전자가 시동을 끄기 전 반드시 버튼을 누르도록 하는 것이다. 차량 기사가 버튼을 누르러 가면서 아이들의 하차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박병일 카123 대표는 "자동차 시동을 끈 뒤, 탑승자가 남아있는 경우 자동으로 경보음이 울리는 기능을 장착해야 한다"며 "어려운 일 아니다. 큰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니다. 지금이라도 충분히 설치할 수 있는 기능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 초 출시한 현대차의 싼타페에는 실내에 사람이 남아있다면 경적을 울리고 운전자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기능이 장착됐다.

김필수 교수는 "미국 등 교통 선진국에서는 아이가 차량에서 내리면 바로 부모에게 문자 메시지가 전송된다"며 "학원(교사)과 집(부모), 운전기사가 크로스 체크해야 이 비극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5년 전 유치원 승합차 운전기사로 일한 경험이 있는 B(45) 씨는 "문제에 대한 심각성은 인정한다"면서도 "현실적인 부분에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B 씨는 당시 오전, 오후 20여 명의 아이들을 태우고 내린 경험이 있다. 그는 "조금만 늦어도 학부모들에게 걱정 섞인 전화가 오니 지체할 수가 없을뿐더러 수십 번 문을 여닫으니 나중에는 누가 내리고 탔는지 매일 꼼꼼히 따지기 힘들었다"며 "기사 혼자서 모든 아이를 챙기기에는 사실상 힘들었다"고 말했다.

◇ 부주의한 사고 잇따르는데…'솜방망이 처벌'도 개선해야

제재 수위가 낮아 규제의 실효성이 떨어져 비슷한 사고가 되풀이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도로교통법에 의하면 운전자는 운행을 마친 뒤 모든 아이가 하차했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규정을 경우 범칙금 12만원과 벌점 30점이 부과될 뿐이다. 통학차량 이용 아동의 출결 여부 확인 등에 관한 지침을 어긴 경우에는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을 뿐 별다른 처벌이나 과태료에 관한 규정이 없다.

법규와 지침 위반이 이번처럼 사고로 이어진 경우 책임이 있는 보육교사나 운전자 등은 업무상 과실치사 혹은 과실치상 혐의로 형사처분을 받을 수 있다. 어린이집은 사고를 일으킨 행위가 아동학대 범죄 처벌 특례법상 유기·방임에 해당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시설 폐쇄 등의 행정처분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명확한 판단기준이 없어 대부분 해당 교사가 자격정지 처분을 받는 것으로 끝난다.

의식불명인 최군이 다니던 광주의 한 유치원은 최근 유치원 폐쇄명령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했다. 재판부는 유치원을 폐쇄하면 어린이집 원장이 큰 경제적 타격을 입게 되고 학생과 학부모가 전학 등으로 피해가 크다고 판단했다. 당시 유치원 버스기사, 주임교사, 인솔교사 등이 아동 보호의무를 다하지 않은 혐의로 금고 5~8개월 형을 받는 데 그쳤다.

해외는 법이 엄하다. 부주의로 인해 아이가 사망했을 경우 호주에서는 형법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는다. 영국에서는 아동청소년법이 적용돼 10년 이하의 징역형이 선고된다.

(인포그래픽=장미화 인턴기자)

shlamaz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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