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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축산농가 비상… 돼지에 얼음 먹이고, 소·닭은 물대포 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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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폭염에 벌써 110만마리 폐사… 농민들 잠 못 이루고 축사 살펴

"대형 환풍기·에어컨도 속수무책" "손해 보더라도 닭 출하 앞당겨"

20일 낮 12시 30분쯤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한우 축사 온도계는 섭씨 36도를 가리켰다. 8~31개월 된 한우 62마리를 사육하는 990㎡ 축사 천장에 달린 대형 선풍기 6대가 최대 풍속으로 쉴 새 없이 윙윙거리며 돌아가고 있었다. 30년째 소를 키우는 김달호(56)씨는 "새벽에도 축사 온도가 25~27도에 머문 적은 처음"이라며 "소는 추우면 감기를 앓고 지나가지만, 더우면 열사병으로 폐사하기 때문에 걱정이 태산"이라고 말했다. 축사 온도를 낮추려고 수도에 호스를 연결해 물을 뿌리기도 한다. 이날 북구청 소속 가축방역차는 물 800L를 20여 분 동안 2~3개월 송아지 23마리가 있는 또 다른 축사 지붕에 살포했다. 한낮 지붕 온도를 1도라도 낮추려는 조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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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해져라~ - 20일 오전 광주 북구 충효동의 한우 축사에서 방역차를 동원해 지붕에 물을 뿌려 열을 식히고 있다. 불볕더위에 일부 축사 온도는 새벽에도 27도를 넘나든다. /김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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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솥더위가 한반도를 연일 덮치면서 전국 축산농가에 '온도 낮추기' 비상이 걸렸다. 농림축산식품부 집계에 따르면, 이날 현재 전국적으로 돼지·닭·오리 등 가축 110만5800여 마리가 폭염으로 폐사했다. 피해액은 62억원에 이른다.

특히 닭 사육 농가가 '폭염과의 전쟁'에서 고전하고 있다. 전국 폐사 가축의 94%(104만마리)가 닭이었다. 닭은 체온이 41도로 높고 땀샘도 없어 폭염이 덮치면 쉽게 폐사한다. 이날 오후 전남 나주시 반남면 청송리 5610㎡ 양계장에는 생후 25일짜리 치킨용 육계 10만마리가 대형 환풍기 56대가 내뿜는 바람을 향해 연신 입을 뻐끔거렸다. 안개 분무기에서 나온 연무가 바람과 함께 흩어지자 이를 들이마시는 것이다. 양계장주 정종식(65)씨는 "닭들이 물기가 있는 바람을 쐬어가며 간신히 버틴다"고 말했다.

폐사가 염려돼 출하를 서두르는 농가도 늘고 있다. 나주 반남면 양계장(3630㎡)에서 육계 7만1500마리를 키우는 김요안(53)씨는 지난 18일 평소보다 이틀 당겨 출하했다. 김씨는 "요즘 같은 더위엔 몇 분 만에 닭 수천마리가 폐사할 수 있다"며 "미리 시장에 내놓는 게 상책"이라고 말했다. 대신 병아리를 들이는 시기는 최대한 늦추는 고육지책을 세웠다. 그는 "출하 후 보통 1주일 뒤에 병아리를 들이는데 폭염 때문에 3~4주 뒤에 들이려고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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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경북 안동시 일직면의 양돈농가에서 농가 관계자가 불볕더위에 지친 돼지들을 위해 얼음을 주고 있다. /권광순 기자


불볕더위에 최신 냉방 장치도 제 기능을 못한다. 충북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에서 토종닭 3500마리를 키우는 김걸회(51)씨는 "이번 더위에 닭 800여 마리가 죽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날 낮 최고기온이 36도까지 치솟자 고가의 대형 선풍기 5대를 풀로 가동했으나 온도를 떨어뜨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어미 돼지 4마리가 폐사한 청주의 한 돼지 농가 농장주는 "올해는 최신 에어컨을 설치했는데도 온도가 29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다"며 "적정 온도 23도는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폭염에 노출된 소들은 입맛이 뚝 떨어져 건강이 나빠졌다. 하루 적정 사료 섭취량은 8㎏인데 요즘은 절반만 먹는다. 이 때문에 식수에 면역 기능을 촉진하는 비타민C 용액을 넣어 먹인다. 광주 충효동의 김씨는 "올해는 유독 더위가 심해 소들이 더 바짝 마를 게 불 보듯 하다"며 "여름에 먹이를 잘 먹지 않으면 가을 무렵 몸무게가 50㎏쯤 빠진다"고 말했다.

경북 안동시 일직면에서 돼지 1만5000여 마리를 사육하는 권기택(62)씨는 대형 제빙기에서 만든 얼음을 아침과 저녁 두 차례 사료에 넣는다. 하루에 얼음 500㎏ 정도가 들어간다. 권씨는 "더위를 이기라고 비타민과 미네랄이 든 특별식을 만들어 먹였지만 벌써 70마리가 죽었다"고 말했다.

폭염 피해가 속출하자 지자체별로 피해 복구비 등을 투입하며 폭염 피해 대책을 내놓고 있다. 전남도는 30억원을 들여 스프링클러·차광막·안개분무기·환풍기·차광페인트 등의 폭염 장비를 축산농가에 지원한다. 배윤환 전남도 축산정책과장은 "지붕에 물 뿌려주기, 차광망 설치, 환풍기 가동, 송풍망 확충 등으로 축사의 온도를 낮춰야 한다"며 "또 가축의 면역력 향상을 위해 비타민·미네랄 등이 함유된 물을 수시로 공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주=조홍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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