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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Why] "검사의 소신과 正義는 구별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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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 검사' 김웅이 말하는 正義

조선일보

김웅 검사는 스스로를‘조직에 맞지 않는 타입’이라고 말하며 ‘또라이 검사’를 자처하지만, 자신과 같은 사람도 일할 수 있는 곳이 검찰이라고 했다. / 이진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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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檢事)는 스스로를 칼잡이라 부른다. 정권 실세나 재벌, 고위 공직자 등을 수사하며 부르는 '칼의 노래'가 이들의 훈장이다. 잘나가는 검사들의 공통점이라면 좋은 칼잡이라는 점과 자신이 정의(正義)를 구현한다는 신념으로 무장했다는 것이다. 김웅(48) 검사를 만난 것은 올 초 펴낸 베스트셀러 '검사내전'에서 '생활형 검사'를 자처했고, 주변에선 이런 신념과 정의를 반대하는 사람이라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생활형 검사라니?

"법과 규칙, 원칙에 따라 매일 사건을 처리하지만 정의를 구현하겠다는 생각 같은 건 없다. 검사를 하다 보니 부장도 됐지만, 권력의 끝을 보고자 하는 생각도 없다. 검사 중에 그런 생각을 하는 이는 많지 않다. 월세가 안 올랐으면 좋겠고, 딸 성적이 올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큰 정의를 얘기하는 검사도 많다.

"일부 검사가 대한민국을 정화하겠다는 정의감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힘이 있는 사람이 자신을 정의라고 규정하기 시작하면 잔인해진다. 누군가를 죄인이다 나쁜 놈이다 하는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그는 사람이 아니고 박멸 대상이 되는 것이다."

―검사가 정의와 멀어질 수 있을까.

"자기가 생각하는 게 정의라고 어떻게 단정할 수 있겠나. 전에 진리라고 여겼던 것이 10년만 지나도 진리가 아닌 경우가 많다. 정의가 하나라면 당이 여럿 있을 필요가 무엇인가. 여러 목소리를 보장하자는 전제가 있는 것이다. 형사소송법이 만들어진 이유도 같다. 개인의 정의감이나 소명 의식보다는 절차에 따라 사람의 기본권과 방어권 보장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권한이 센 직업일수록 직업윤리가 중요한 셈이다."

―검사의 직업윤리는.

"개인의 소신은 있을 수 있다. 예비군 훈련을 가지 않았다고 해서 처벌하는 것은 반대한다. 명예훼손죄를 형사처벌하는 것도 반대한다. 그러나 그 사건이 배당되면 내 신념대로 처리할 수 없다. 맞는 기준대로 다뤄야 하는 것이다. 개인의 정의감이 앞서면 곤란하다."

―소신을 앞세우는 법조인도 많다.

"고소장을 보면 고소당한 사람은 정말 세상에 없는 나쁜 놈이다. 그러나 피고소인이나 목격자 이야기를 듣다 보면 달라진다.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사실이나 진실이라는 것은 늘 한계가 있다. 감안하면서 생각하는 것과 무작정 정의 관념을 앞세우는 것은 천양지차다. 우리 사회가 검찰에 원하는 것도 이런 정의감은 아니다."

―뭘 원한다고 보나.

"불공정하게 대우받지 않는 것. 내가 어떤 일을 저지르고 어떤 일을 당했을 때 공정하게 처분받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것이 사회적 신뢰이며 법치주의 원동력이다."

그가 평검사 시절 야근하던 때. 차장검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회식하던 차장이 법원 수석 부장판사와 부하 직원들을 호출해 어느 쪽이 더 많이 나오는지 내기했다는 것이다. 그는 책에 일화를 소개하면서 '부르기만 하면 마냥 달려오는 것을 바랄 거면 개를 기르면 된다'고 썼다.

―회식 자리에는 나갔나.

"안 나갔다. 한번은 다른 회식을 하는데, 술잔 돌리면서 내 차례가 다가오자 '검사가 잔을 받아야지'라며 나를 빼고 넘어가더라. '또라이 검사'로 불렸다."

―검찰을 욕하는 말인가.

"역설적으로 또라이 검사도 다닐 수 있는 곳이 검찰이란 조직이다. 평검사 의견을 함부로 배척하지 못하고, 삐딱한 소리를 해도 경청해주고 기회도 준다. 검사 대부분은 우병우 전 민정수석처럼 눈에서 레이저가 나가는 사람이 아니다.

―검찰 문화가 바뀌어야 하는 것인가.

"후배들이 이야기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부장검사가 돼 검사실에 들어가면 다 벌떡벌떡 일어난다. 후배들이 일어서지 않고 앉아 말하는 문화를 만들려 했는데 시켜도 안 되더라. 그래서 아예 안 들어간다. 대신 밥 먹으러 갈 때 얘기를 많이 한다. 밥 먹는 자리에서도 상석엔 안 앉는다. 자꾸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야 이야기를 하고 아이디어를 더 내더라. 조직 안부터 특권 의식이 옅어지면 바깥을 향한 권력 사용도 영향을 받게 된다. 이들이 부장이 되면 절반은 또 그렇게 할 것 아닌가."

[김아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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