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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His 스토리] “믿을 수 없는 비극”…데니스 텐, 25세 짧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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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데니스 텐(가운데)와 그의 부모 /조선DB


한국계 카자흐스탄 피겨스케이팅 선수 데니스 텐(25·사진)이 19일(현지 시각) 괴한의 피습을 받고 25세의 짧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 충격을 주고 있다. 괴한의 공격 이유가 텐의 차 백미러를 훔쳐려다 적발됐다는 사소한 것이어서 허탈함이 더하다.

그는 구한말 강원도 일대에서 항일의병장으로 활동한 민긍호 선생의 고손자로 한국과의 인연이 남다르다.

◇ 피겨 불모지서 탄생한 피겨 스타

1993년생인 텐은 주니어 시절에 많은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다섯 살 때 피겨스케이팅 불모지 카자흐스탄에서 어머니의 권유로 피겨를 시작했다. 주변에 실내 아이스링크가 없어 야외에서 훈련했다. 너무 추운 날씨 탓에 두꺼운 옷을 겹겹이 껴입은 채로 스케이팅 훈련을 했다.

쇼핑몰에 있는 작은 링크를 전전하며 기량을 키웠던 그는 열 살 때인 2003년 러시아로 떠나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했다. 기량 면에서 두각을 나타내자, 2010년 미국으로 건너가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그가 처음 존재감을 드러낸 대회는 카자흐스탄에서 개최된 ‘2011 아스타나·알마티 동계아시안게임’이었다. 그는 이 대회 남자 싱글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카자흐스탄에서 국제 수준의 기량을 가진 선수는 텐이 사실상 유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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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 텐과 김연아 /인스타그램


2013년 3월 캐나다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텐은 남자 싱글 부문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때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다. 각종 국제대회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스타 반열에 오른 뒤에도 그는 한국을 잊지 않았다. 그는 2014년 소치올림픽이 끝난 뒤 김연아의 소속사인 올댓스포츠와 올해까지 4년간 매니지먼트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이는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출전을 염두에 둔 결정이었다.

텐은 평창 겨울올림픽을 앞두고 오른발 인대를 다치는 불운에 시달렸다. 그러나 통증을 참고 출전을 강행했다. 부상 탓에 메달을 얻지는 못했으나, 그는 경기 후 평창올림픽에 참가한 것만으로도 감격스럽다며 활짝 웃었다.

◇ 구한말 의병장 민긍호 선생의 고손자

텐의 할머니는 민긍호<사진> 선생의 외손녀인 김 알렉산드라다. 민긍호 선생은 일제가 1907년 원주진위대 해산을 시도하자 300명의 병사를 이끌고 의병을 봉기해 원주와 춘천, 횡성, 충주, 홍천에서 일본군과 격전을 벌여 전공을 세웠다. 그는 이듬해 원주에서 붙잡혔고, 탈출 도중 치악산 강림촌에서 일본군의 기습으로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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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선생의 부인은 남매를 데리고 북만주를 거쳐 연해주로 피신했는데,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 이주 정책 때문에 카자흐스탄으로 옮겨갔다.

텐은 기회 될 때마다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렸다.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선수 이력엔 ‘한국 민긍호 장군의 후손’이라고 표기했고, 한국 역사책을 읽으며 공부하기도 했다. 지난해엔 생애 마지막으로 출전했던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위해 한국을 다시 방문했다. 2010년 민 선생의 묘를 직접 방문해 논문을 작성하기도 했다.

◇ 알마티서 불의의 사고로 숨져

텐은 19일 카자흐스탄 수도 알마티에서 강도살인 사건으로 사망했다. 자신의 자동차 백미러를 훔치려는 남성 2명과 다투는 과정에서 흉기에 찔렸다.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3시간 만에 숨졌다.

예르잔 쿠트고진 중앙병원 부원장은 텐의 사망 경위에 대해 “우측 상부 세 번째 갈비뼈 부근의 자상이 깊어 온갖 응급조치에도 끝내 사망했다”고 밝혔다.

20일(현지 시각) AFP통신과 타스 통신은 카자흐스탄 경찰이 이날 텐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용의자 2명중 누랄리키야소프(24)를 체포했다고 보도했다. 또 키야소프가 변호사 앞에서 범행을 자백했다고 현지 매체인 카진포름이 검사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경찰은 다른 1명의 용의자 신원도 밝혀내고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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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는 20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데니스 텐과 찍은 사진을 게재하며 “데니스 텐의 비극적인 소식을 들어 너무 충격적이고 아직 사실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텐의 빛나는 업적은 카자흐스탄에 영광을 안겼다. 많은 나라에서 인정을 받은 선수였고, 우리에겐 진정한 애국자였다”고 애도했다.

[남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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