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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먹자GO]'내장 먹는 언니'가 힙하다…한여름 곱창구이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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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불 앞에서 구워 먹는 곱창의 인기가 대단하다. 가수 그룹 '마마무'의 멤버 화사의 단골 곱창집으로 방송을 탄 '대한곱창'에서 곱창을 굽는 모습. 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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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낮 최고 기온이 33도에 달했던 18일 오후 2시. 장안동의 한 곱창집 앞 의자에는 젊은 여성 두 명이 부채질을 하며 앉아 있었다. 가게 문은 닫혀 있다. 오픈 시간은 오후 3시. 가평에서 왔다는 양예빈(21)씨는 “오픈과 동시에 자리를 잡기 위해 한 시간 일찍 왔다”며 “저녁 시간엔 더 오래 기다릴 것 같아 낮 시간을 택했다”고 말했다. 이곳은 그룹 '마마무' 멤버인 화사의 단골 곱창집으로 화제가 된 ‘대한곱창’이다. 대기자는 오픈 직전 10명까지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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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곱창'이 문을 여는 시간은 오후 3시다. 하지만 이미 1시간 전부터 가게 앞에는 미니 선풍기로 더운 날씨와 싸우며 대기 중인 손님들이 눈에 띈다. 백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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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이열치열 대표 음식은 뜨끈한 탕이 아니라 불 위에서 노릇노릇 구워지는 곱창이 될 전망이다. 지난달 8일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화사가 곱창 먹방을 선보인 이후 ‘곱창대란’이 일었다. 방송에 나온 장안동 ‘대한곱창’은 물론, 안 그래도 줄 서서 먹던 유명 곱창집들에 손님이 몇 배로 몰렸다. 최대한 줄이 짧은 시간을 노리는 손님들이 이른 시간부터 곱창집을 찾으면서 대표적인 퇴근 후 술안주였던 곱창이 낮에 먹는 음식이 됐다. 이른 저녁 시간이 아니면 주문조차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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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마마무'의 화사는 지난달 방송된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곱창집 야외 테이블에 앉아 소 곱창 2인분에 뚝배기 전골, 볶음밥까지 해치우는 먹방을 선보였다. [사진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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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후 한 달이 넘었지만 곱창집에 곱창이 없는 품귀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직장인 윤모씨는 얼마 전 단골 곱창집인 ‘합정동 원조 황소곱창’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주문을 받는 직원이 “곱창을 한 테이블당 1인분 이상 판매하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그러니 나머지 양은 다른 부위로 채우라는 뜻. 서울 시내 대부분의 곱창집이 같은 전략을 써서 간신히 물량을 맞추고 있다. 주문 제한을 두지 않는 곱창집은 오픈 시간을 줄였다. 이 역시 화사가 다른 부위를 섞지 않고 ‘순 곱창’만 먹어서 생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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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곱창의 메뉴판. 순 곱창이 메인이 되는 메뉴는 아예 판매하지 않고 있다. 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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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곱창의 모둠곱창 2인분 한상 차림. 곱창·대창·막창·염통과 함께 각종 채소와 부추무침·김치를 철판에 올려준다. 치즈·양파·카레 가루와 과일·청양고추를 갈아 만든 특제 소스까지, 소스의 선택권이 많다는 점이 특징이다. 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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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곱창’은 아예 메뉴판에 흰 종이를 붙여 ‘곱창’이라는 글을 가렸다. 곱창 주문을 들어오는 대로 다 받으면 도저히 정상 영업을 할 수 없어서다. 대신 대창·막창·염통과 곱창이 함께 나오는 모둠곱창을 주문하도록 유도한다. 김훈 대표는 “최근 한 달 사이 시장에서 곱창 가격이 20~30% 정도 올랐다”고 말했다. 한 직원은 “화사씨가 모둠곱창을 드셨으면 더 좋았을 텐데”라며 웃었다.

이 모든 상황을 두고 ‘화사가 쏘아 올린 작은 곱(곱창 내부에 채워진 소화액)’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정말 연예인 한 사람의 '먹방'으로 지금의 곱창 열풍이 시작된 걸까. 업계는 수 년간 곱창 대중화가 이뤄지던 중 화사가 불을 붙인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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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양념, 각종 채소와 버무려 익히는 양념곱창과 달리 곱창구이는 내장의 생김새가 그대로 드러나 호불호가 갈리기도 한다. 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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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창은 소나 돼지의 작은 창자다. 과거 소 곱창에 비해 가격이 저렴했던 돼지 곱창은 양념구이나 전골 재료로 인기를 끌었다. 1인분에 1만원 후반대를 훌쩍 넘는 소 곱창은 젊은 층의 접근이 어려웠다. 내장 부위에 거부감을 가진 이들도 많았다. 거북곱창·교대곱창 등이 자리 잡은 서초동 곱창 골목은 주로 직장인 남성들의 회식 장소로 여겨졌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 본격적인 대중화가 시작됐다. 냄새가 덜하고 씹는 맛이 있는 소 곱창을 찾는 사람들이 늘면서다. ‘곱창백화점’(2003년)·‘곱창이야기’(2004년) 등 곱창 체인 브랜드가 생겨난 것도 이때부터다. 양(소의 첫 번째 위), 대창(소의 큰창자), 막창(소의 네 번째 위) 등 다른 내장 부위도 함께 떴다. 보다 신선하고 곱이 꽉 찬 곱창을 찾아다니는 매니아층이 형성됐다. 마포 ‘장가네 곱창구이’ 대표는 “최근 갑자기 젊은 여성 손님이 늘어난 건 아니고, 10여년 전부터 중년 남성보다는 20~30대 젊은 여성 손님들이 꾸준히 늘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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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강동 '장가네 곱창구이'. 곱이 가득 찬 신선한 곱창으로 유명하다. 최근 1인분 가격이 2만8000원에서 3만원으로 올랐다. 백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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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가 늘어난 만큼 많이 팔 수는 없을까. 업계는 “그럴 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다”며 울상이다. 시장에 풀리는 곱창 물량은 제한적이다. 소 도축량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내장 등 부산물에 대한 수요는 커졌지만 소 도축 물량은 오히려 줄어드는 추세다.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2015년 국내 소 도축 수는 100만 마리가 넘었지만 2016년과 지난해 약 86만 마리로 줄었다. 올해는 지난 5월까지는 겨우 36만 마리에 그쳤다. 소를 적게 잡는데 내장만 구해올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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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곱창집이 양·대창·막창 등 다른 부위를 함께 판매한다. 간·천엽 등 부산물을 사이드 메뉴로 제공하기도 한다. 백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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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냉동 곱창에 의존할 수도 없다. 지드래곤·한고은·차승원 등 스타들의 단골집으로 알려진 30년 전통의 ‘삼성원조양곱창’ 서복지 대표는 “곱창집의 맛을 결정하는 건 곱창을 보는 안목”이라며 “요즘 호주 등에서 수입산이 많이 들어 오지만 냉동은 구웠을 때 맛이 크게 떨어져 사용할 생각도 안 해봤다”고 말했다. 삼성원조양곱창은 전라도에서 당일 도축한 내장을 매일 오후 동서울터미널에서 받아와 판매하고 있다. 대한곱창의 김훈 대표도 “곱창의 고소한 맛은 기름에서 오는데 냉동 곱창엔 기름이 잘 안 붙어 있어 생물을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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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자 안에 곱이 꽉 차 있는 삼성원조양곱창의 곱창. 곱은 곱창의 고소한 맛과 부드러운 식감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지만, 소의 내장 지방을 통째로 먹는 것이므로 과도한 섭취는 자제하는 게 좋다. 백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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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선 과도한 곱창 섭취가 건강을 해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 건강지에서 의사·약사·영양학자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건강을 생각해서 되도록 피하는 음식' 3위에 곱창이 올랐다. 2위는 육가공품, 1위는 탄산음료였다.

비만 전문가인 오상우 동국대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곱창은 포화지방 덩어리여서 몸에 좋을 수가 없는 음식”이라고 말했다. 지방은 식욕을 자극하지만, 포만감은 적은 특징이 있다. 기름의 고소한 향에 취해 배부를 때까지 곱창을 먹다 보면 고칼로리 함정에 빠지게 된다. 오 교수는 “지방 과다 섭취는 복부 비만은 물론 고지혈증·동맥경화·당뇨병을 유발하기 때문에 가끔 맛을 보는 정도로만 먹기를 권장한다”고 당부했다.

글=백수진 기자 peck.soojin@joongang.co.kr, 사진=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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