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4 (수)

[Her 스토리] 구글에 6조원 벌금 부과한 ‘세금의 여인(tax lady)’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선일보

구글 로고 /조선DB


유럽연합(EU)은 지난 18일(현지 시각) 미국의 대표 정보기술(IT) 기업 구글이 시장 지배력을 남용했다며 이 회사에 과징금을 부과한다고 밝혔다. EU가 지난해 6월 구글이 온라인 검색시 자사 및 자회사 사이트가 우선 노출되도록 조작했다며 부과한 과징금 24억유로의 2배에 육박하는 규모다. 이번 결정으로 EU 경쟁당국은 역대 최고 과징금 기록까지 갈아치웠다.

EU가 지난해부터 애플, 구글 등 미국 대표 IT기업에 천문학적인 과징금을 물리면서 이 결정을 진두지휘한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사진> EU 경쟁담당 집행위원(50)에게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유럽의 공정거래위원장’으로 불리는 베스타게르 EU 상임위원은 가즈프롬, 애플, 스타벅스 등 다국적 대기업에 철두철미하게 규제법을 적용하면서, ‘세금의 여인(tax lady)’ ‘철의 여인’ 등 다양한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 “시장과 경쟁의 효율성을 믿는 원칙주의자”

“유럽연합(EU)의 반독점 과징금을 단순한 회계장부의 숫자로 머물지 않게 하겠다.”

지난 2014년 10월 경쟁담당 집행위원 지명자로 유럽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남긴 소신발언은 ‘시장의 투명성 침해’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말로 지금까지 회자된다.

‘시장과 경쟁의 효율성을 믿는 원칙주의자’ 베스타게르는 소신대로 시장의 효율성과 투명성에 장애가 되는 부분에는 가차없이 철퇴를 가했다. 때문에 베스타게르는 ‘철(鐵)의 여인’이나 ‘EU에서 가장 강력한 여성’으로도 불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G7 정상회의에서 베스타게르 위원을 ‘세금의 여인’이라 부르며 “그녀는 미국을 정말로 싫어한다”고 비꼬기도 했다. 이에 베스타게르 위원은 “팩트 체크를 하자면 내가 세금을 다루고 내가 여자인 것은 100% 맞는 말이지만, 내가 미국을 싫어한다는 말은 틀린 말”이라고 재치있게 맞받아쳤다.

베스타게르 위원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16년 애플이 아일랜드에서 받은 세제혜택을 불법으로 규정하면서부터다. 당시 팀 쿡 애플 CEO는 “정치적 의도가 담긴 헛소리”라고 반응했으나, 그는 소신대로 애플에 145억달러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조선일보

지난해에는 아일랜드와 룩셈부르크 정부가 각각 애플과 아마존에 세제상 특혜를 줬다는 이유로 이들 회사에 각각 110억유로(약 14조원)와 2억1800만유로(약 2800억원)의 세금 환수를 지시하기도 했다. IT기업뿐 아니라 러시아 가즈프롬, 스타벅스 등 로비력이 강한 기업에도 잇따라 철퇴를 내려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구글 모기업 알파벳엔 반독점법 위반을 이유로 벌금 27억 달러를 부과했다.

◇ MS 등 주요 기업 합병은 모두 승인

베스타게르 위원의 행보가 반(反)기업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가 취임하기 전까지 EU 경쟁담당 집행위원에게는 ‘차르’라는 별명이 붙곤 했다. 거의 마무리 단계의 대규모 인수합병(M&A)이 반독점을 이유로 경쟁 당국의 벽에 막히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반면, 베스타게르 위원은 마이크로소프트(MS)의 링크트인 인수안, 미국 화학업체 다우케미컬과 듀폰의 합병안을 모두 승인했다.

베스타게르 위원의 ‘시장주의자’적 면모는 정치적 시비가 그칠 날이 없었던 EU 경쟁담당 집행위원 자리에서 정치색을 덜고 형평성을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임자는 정치적 민감성을 고려해 과징금을 부과하는 대신 모종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집중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IT기업에 워낙 많은 과징금을 매겨 ‘반(反) 실리콘밸리’라는 지적도 제기되지만, 그 역시 아이폰 사용자이며 트위터 활동에 적극적이다. ‘세상을 바꾸는 기업’일지라도 모든 기업에 동일한 규제를 적용한다는 게 그의 원칙이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선례를 남기면서, 인도·브라질·미국 등 전 세계 정치인과 규제 당국이 그의 논리를 참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정치인 출신의 덴마크 관료

코펜하겐대 경제학과 출신인 그는 21세 때 중도 좌파 계열인 사회자유당 집행위원이 됐다. 33세이던 2001년 국회의원, 2007년 당대표가 됐다. 43세이던 2011년 부총리급인 경제·내무장관에 올랐다. 트위터 팔로어도 24만명에 이르러 덴마크에서는 ‘트위터의 여왕’으로 불린다.

베스타게르 위원은 EU에서 활동하기 전 덴마크에서 경제개혁을 이끌어내며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011년 부총리 겸 경제·내무장관에 오른 그는 덴마크 정부의 복지지출을 줄이고 2020년까지 기업 비용을 40억크로네(약 6990억원) 감축하는 친시장 정책으로 주목됐다. 그가 경제정책을 이끌기 시작한 2011년 10월 5.9%였던 덴마크 실업률은 현재 4.1%로 떨어졌다.

헬레 토르닝슈미트 전 총리는 베스타게르 위원을 “정말 원하는 일은 반드시 진척시킨 사람”이라고 회고한다.

최근에는 공항에서 뜨개질하는 모습이 포착되는 등 일상에서는 탈권위적이고 소탈한 모습을 보여준다. 고교 수학·철학 교사인 남편과 사이에 세 딸을 두고 있으며, 주중에는 EU 본부가 있는 브뤼셀에서, 주말에는 코펜하겐에서 가족과 함께 지낸다.

◇ 차기 EU 수장에도 거론

베스타게르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EU 최초의 여성 수장(首長)에 도전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내년에 임기가 끝나는 장클로드 융커 현 집행위원장의 후임을 노린다는 것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최근 차기 EU 집행위원장으로 베스타게르를 지지할 수 있다고 거론한 이후, 베스타게르는 유력 후보로 급부상 중이다. 베스타게르도 폴리티코 인터뷰에서 “아직 모른다는 것이 진실이며 후보보다 중요한 건 EU 개혁”이라며 출마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남민우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