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9 (금)

이한열의 운동화부터 이순신 동상까지…미술품 치료하는 복원전문가 김겸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의사로 치면 내과, 외과, 정형외과를 다 한다는 얘기인데···사실 부끄러운 얘기죠”

‘김겸미술품보존연구소’의 김겸 대표는 국내 미술품 복원 최고 전문가 중 한명이다. 대학에서는 예술학을, 대학원에서는 서양미술사를 전공한 뒤 1997년 처음 들어간 직장이 삼성문화재단 보존연구소였다. 이어 일본과 영국에서 본격적으로 복원을 공부한 뒤 국립현대미술관 등을 거쳐 연구소를 차린 지 올해로 7년째다. 2015년 이한열기념관의 요청으로 바닥이 거의 바스라진 고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를 복원하면서 미술계 밖으로도 널리 이름이 알려졌다. 최근에는 복원전문가가 된 계기, 복원작업의 가치 등을 담은 에세이집 <시간을 복원하는 남자>(문학동네)를 썼다.

지난 18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있는 연구소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연구소는 골목에 나란히 있는 옆집과 다름없는 일반 주택이었다. 별도 간판도 없어 정확한 주소를 모르면 찾을 수가 없었다. 김 대표는 “보안문제를 생각하면 고가의 미술품을 보관하고 있다고 굳이 알리지 않는 것이 좋다”며 “그래도 찾아올 사람은 다 오더라”고 말했다.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부터, 서울 청계천 광장의 ‘스프링’,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등 숱한 유물과 작품이 김 대표의 손을 거쳐 ‘회복’했다. 전시를 앞둔 작품이 ‘사고’를 당하면 가장 먼저 찾는 ‘응급실’도 김 대표의 연구소다. 김 대표는 평면으로 된 회화부터 조형물까지 거의 모든 종류의 미술품을 복원한다. 원래 주전공은 조각품이지만 여러가지를 다 해야 하는 ‘한국적 상황’에 맞추다 보니 이렇게 됐다. 최근에는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 복원을 계기로 근현대 기록물도 ‘치료’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고 문익환 목사의 피아노를 비롯한 유품 보수를 마쳤다.

김 대표는 복원전문가를 의사에 빗대어 설명했다. 의대를 졸업했다고 바로 환자를 볼 수 없듯이 복원전문가도 학교를 마친 뒤 5~10년은 어시스턴트를 해야 유물이나 작품에 혼자 손을 댈 수 있다. 현재 김 대표의 연구소에도 어시스턴트로 2명이 일하고 있다. 한명은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나 독학으로 미술을 배워 복원에 뛰어들었고, 다른 한명은 오스트레일리아 유학을 다녀온 뒤 김 대표 문하로 왔다.

유물이나 작품은 환자에 비유했다.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으면 훨씬 더 좋은 상태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터뷰 당일에도 김 대표는 서울 중구와 종로구에 있는 ‘건축물 미술작품’의 건강검진을 진행했다. 문화예술진흥법은 1만㎡ 이상 신·증축하는 건축물에는 건축주가 건축비용의 1% 이하 범위에서 회화, 조각, 공예 등의 미술작품을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서울 중구와 종로구에 있는 작품만 600점이 넘는다. 김 대표는 “대부분 야외에 있어 비나 먼지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며 “색이 바래거나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긴 하지만 미술작품이 보기 흉하다면 그것도 손상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전시를 위해 유럽에서 명화가 들어오면 사람들이 상태가 좋다고 칭찬하기 마련인데, 그건 보관을 잘 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전문가들이 꾸준히 돌봐주기 때문”이라며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 보관된 유화도 20~30년이 지나면 울퉁불퉁해지고 윤기가 사라진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가 추구하는 복원은 ‘시간’까지 반영하는 것이다. 작품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모습 그대로 복원을 했다면 그것은 ‘실패한 작업’이라고 단언했다. 김 대표는 “작가가 50년전에 창작을 했다면, 이 작품이 50년간 건강하게 관리를 잘 받았다는 전제하에 그 모습을 상정해서 복원한다”며 “작품을 막 마쳤을 때의 모습으로 복원한다면 시간성이 사라진다”고 말했다. 작가가 직접 ‘재창작’을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김 대표는 “복원 전문가가 아니라 작가가 손을 대면 그건 복원이 아니라 2018년에 재창작한 다른 작품이 되는 것”이라며 “소장자가 작가에게 (복원을)의뢰하고 싶다며 의견을 물어올 때가 있는데, 그때는 ‘구입하실 때의 모습을 좋아해 손에 넣으신 것이라면 한번 더 생각해 보시라’고 권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도 서양화가인 아버지처럼 ‘창작’을 꿈꿨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복원을 하다보면 창작이 어려워진다. 무엇보다 ‘자기검열’이 심해진다. 김 대표는 “그림도 해보고 점토도 주물럭거려봤는데, 이건 누구의 것 같고, 이건 또 누구의 것 같아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며 “나는 창작할 사람이 아니란 것을 일찌감치 알았다”고 말했다. 또 “지금도 창작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기는 하지만, 복원을 하는 시간이 너무 만족스러워 아쉽지는 않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인터뷰 말미에 1998년 어느날 서울 광화문에서 본 이순신 장군 동상의 모습을 이야기했다. 당시 삼성문화재단 보존연구소를 다니던 김 대표는 페인트 작업 중인 이순신 장군 동상 근처를 지나다 ‘내가 해보면 어떨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확히 10년 뒤인 2008년 직접 이순신 장군 동상을 복원했다. 김 대표는 “그래서 인생이 너무 재밌다”고 말했다.

<홍진수 기자 soo43@kyunghyang.com>

▶ 경향신문 SNS [트위터] [페이스북]
[인기 무료만화 보기]
[카카오 친구맺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